기사 메일전송
아라비아 반도의 복병 예멘과 사막 유목민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6 18:00:04

나는 2001년도에 아라비아 반도 지역, 무함마드가 태동한 가문인 쿠라이쉬 가문의 초기 역사를 레포트로 제출하기 위해 8월인가? 9월인가? 예멘을 방문한적이 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여행금지 국가는 아니었고 단 규제가 심한 국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술, 담배나 포르노 잡지 도입 금지, 반팔, 반바지차림 입국금지, 지정된 장소에만 촬영할 수 있고 이 또한 국가에서 제공하는 가이드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의무적으로 투르크메니스탄처럼 가이드와 함께 다녀야 하며 혼자 여행을 불법이고 현지 여성에게 접근 뿐 아니라 악수도 금지되었다. 내전이 발생하기 전의 예멘은 공산국가보다 더한 통제가 자행되는 국가였다. 

예멘 후티(Houthi) 반군 지지자들의 시위, 출처 : Agence France-Presse

예멘을 돌아다녀 본 결과, 이 나라는 관개 농업이 발달하고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어 외래 종교도 쉽게 수용되는 등 의외로 상당한 문명이 발전했던 나라였다. 그러나 홍해와 인도양이 만나는 반도의 서남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정학적 위치, 인도와 중국은 물론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로부터의 해상무역 그리고 반도의 남부와 북부를 왕래하는 육로 및 낙타 대상여행의 교차점이 되는 중개무역지였으며 해상 및 육로 상품을 전시하는 중요한 시장으로 평가받으면서 이웃 강대국들의 수탈 대상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의 인종은 다양했고 부족의 개수 다양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목사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혈통의 순수성과 가문, 가계의 건전성 등은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뒤섞여 있었고 이슬람교 수니파와 시아파가 동등한 숫자로 분포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였다. 

그러한 영향 때문에 종교적인 문제, 부족적인 문제는 예멘에서 일상적인 사회 문제였고 게다가 왕당파와 공화파 간의 내전은 이미 1960년 중반부터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내가 갔을 때는 예멘 남부지역에서 분리주의 운동이 불붙고 있었을 때였다. 당시 수도 사나(Sana)만 해도 불안은 했지만 돌아다니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예멘은 아라비아 사막에 맞닿아 있어 다들 사막기후로 생각하겠지만 북쪽은 사막이고 남쪽은 온대 기후로 강수량도 제법 있어 여름에도 30도를 넘지 않는 따뜻한 기후에 있다. 당시 내가 사나 공항에 도착했을 때에도 비가 오고 있었던 것만 보면 알 수 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전으로 인해 상당한 수의 난민이 생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예멘 난민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것은 이들의 종교성, 시리아와는 다른 이면의 종교적 문화 때문이다. 

시리아는 흔히 이슬람 국가로 생각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은, 터키와 같은 종교 자유의 국가다. 그 이유는 시리아가 기독교나 유태교 성지가 많다. 시리아의 기독교는 예수 이후 그리스도교부터 쭉 믿음을 이어온 전통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이라 이들은 이슬람과의 사이에서 늘 공존해왔다. 지금도 시리아 영내에서는 유태교와 기독교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엄연한 종교 자유의 국가다. 그런데 예멘은 다르다. 절대적인 무슬림 국가지만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하고 또 다르다. 사우디는 수니파 국가지만 이란은 시아파 국가다. 그러나 예멘은 둘 다 거의 같은 %로 공존하고 있다. 이슬람을 보면 수니파의 교리는 이슬람 내에서 개방적인 곳은 개방적이고 보수적인 곳은 심하게 보수적이지만 시아파의 교리는 모든 시아인들이 금욕 생활을 해야하는 수도사 같은 느낌이 강하다. 두 종교 뿐 아니라 아라비아 유목성 풍속이 짙게 깔려 있는 곳 또한 예멘과 그 옆에 오만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유목성 풍습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라시아 초원 유목 풍습과 전혀 다르다. 초원은 여러 부족이 운집하여 더 큰 체계를 만들 수 있고 개방적이며 포용성이 있다. 그래서 흉노, 몽골 등의 집단성 짙은 집약체가 나타나 대륙을 쓸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사막은 다르다. 초원과 환경 자체도 엄연히 다르다. 사막 유목체는 부족이 아니라 씨족 중심으로 생활한다. 부족 중심 공동체의 초원 유목체와는 사뭇 다른 풍경인 것이다. 사막 유목체의 씨족 중심은 뭐든 친족 중심으로 돌아가며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적 관념, 예(禮)의 관념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삼촌과 여조카가 결혼하는 것은 뭐 당연한 일이고 여자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혼처가 정해지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무함마드가 자신의 아내 하디자가 죽자 친구의 딸인 5살짜리 아이샤를 아내로 맞이하고 9살 때 성적인 행위를 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은 예멘이나 오만, 사우디 같은 사막 유목민만큼은 있을 수 있고 당연한 일이다. 

물론 우리나 다른 국가들 입장에서 보면 야만성의 극치라 비난하지만 이들은 이것이 사막 유목의 전통이자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 자체가 인류학적인 용어로 인용하자면 씨족 보존(Clan Preservation)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사막은 초원보다 훨씬 더 험난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사막에서 살아보고 체험해 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러한 환경조건은 부족이 먼저가 아니라 씨족이 먼저가 될 수밖에 없다. 나와 내 부모, 형제, 자식이 살아남아서 가족이 보전이 되야하기 때문이고 각 사막의 오아시스끼리 연결망도 부족하기 때문에 타 씨족에게서 결혼할 남녀를 데려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자기 가족은 연명을 해야하겠고 키워온 양과 말, 낙타 등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것은 도시에 정주하는 사람에게 돈이나 금덩이가 재산이듯이 사막인들에게는 가축은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이 어느 큰 오아시스에 모이면 도시가 되고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의 가족을 거느린 수장이 그 도시의 대표가 된다. 

그게 바로 아라비아의 메카라는 도시가 탄생하는 배경이다. 물론 만들어진 이후의 메카는 대상 무역의 중심이 되어 사막 오아시스 중에 가장 발달한 도시가 되었지만 사막 씨족 부존 풍습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 남자가 아내를 4명까지 취하되, 똑같이 재산을 분배하는 풍속도 사막 유목 씨족 보존 풍속이다. 그래야 씨족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두 말할 필요 없다. 그런데 이들이 정복전쟁에 나서면서 세상 밖으로 나와 정주사회에 사막 유목 보존 풍습을 그대로 간직하고자 하니 반발 안할 정주민, 피지배인들이 누가 있었을까? 그리고 그 풍속은 무려 이슬람이 생긴지 1,3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이것을 각 정주 사회, 현대 사회에 접목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예(禮)나 도덕적 관점을 소중히 다뤄왔던 우리 대한민국은 기독교와는 달리 이슬람과 기본적으로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유교적 관점에 입각해 개방적인 오늘날까지도 그 뿌리가 유전적으로 이어온 우리가 생각할 때, 사막 씨족 보존 풍습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유럽에서 난민 수용 정책이 실패했다는 보고가 오고 있고 현지인 반발하고 있다. 게다가 각 아랍 난민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심이다. 이슬람을 제대로 알고 대응하는 것과 모르고 대응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단순히 문화적인 교류로도 인식해서는 안된다. 무슬림들은 이미 단순한 문화적인 교류 차원을 넘어서 접근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0
유니세프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