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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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는 1799년 프랜시스 뷰캐넌해밀턴(Francis Buchanan-Hamilton)의 저서에 루잉아(Rooinga)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는 자들이다. 이러한 로힝야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분분하다. 오랫동안 뱅골 일대와 시킴, 미얀마의 라카인 주를 지배한 아라칸 왕국에 그 영향을 미쳤다거나 미얀마로 들어온 무슬림 아랍인 선원들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지만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무슬림 아랍인 선원들의 후손 설은 14세기 이슬람의 탐험가인 이븐 바투타의 기록과 대조해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맞지만 상반되는 내용도 많다는 것에 있다.

미얀마의 로힝야 난민들, 출처 : 미얀마 라카인 주에서 필자의 직접 촬영
"우리는 정크선을 타고 15일간 항해한 끝에 미얀마 네그라이스(Negrais) 곶 부근의 아라칸 지방인 바라흐나카르 지방에 도착하였다. 이곳 사람들의 입은 흡사 개의 입같이 생겼다. 그들은 미개인으로서 힌두교건 다른 어떠한 종교건 믿지 않으며 해변가에 갈대를 세우고 풀로 이엉을 얹은 집에서 살고 있다. 남자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벌거숭이다. 그러나 간혹 한두 사람은 음경과 고환을 감싼 갈대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있다. 그들과 함께 벵골이나 자바섬에서 온 일군의 무슬림들은 특정한 구역에 살고 있다."
로힝야인들의 외모는 아랍인이 아니라 전형적인 방글라데시인과 유사한 뱅골족이 상당수 존재한다. 아라칸 지역에 소수의 파르시족이나 무슬림이 전근대부터 소수 방문하거나 거주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대다수 로힝야의 선조들은 순수 벵골인이라 보기 어렵고 19세기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당시, 미얀마까지 통합하여 영국령 인도를 완성하고 인도 각지에서 저항하던 종족들을 벵골인들과 함께 마구 뒤섞어 미얀마로 밀어냈다. 따라서 로힝야는 그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그 뿌리를 단정 짓기 힘들다. 워낙 뒤섞어 놓은 상태인데다 벵골인이 다수이긴 하지만 인도 각지의 민족들과 혼혈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인공적인 씨-부족의 결합체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기록에 따르면 1872년 기준으로 58,000명이던 무슬림의 수는 1911년에 3배 이상 증가했다. 다만 이 숫자 대부분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벵골과 미얀마를 왕래하는 사람들이고 기록에서는 이들을 거주하는 인구로 보지 않고 있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 이후에도 1970년대까지 당시 동파키스탄으로 불리는 방글라데시로부터 미얀마로 벵골족의 이주가 계속되었다. 이는 파키스탄과의 전쟁으로 인해 난민이 발생했고 이들이 미얀마로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에 다시 미얀마로 25만여 명에 이르는 2차 난민이 있었다. 현재 로힝야족의 인구는 약 25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로힝야족이 자신들의 언어를 아랍 문자, 혹은 아랍 문자에서 파생된 하니피 로힝야 문자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과거에 로힝야족이 영국 치하에서 서면으로 통신을 할 때 우르두어를 파키스탄의 일족으로써 사용했던 것의 영향때문이지, 아랍권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다.따라서 미얀마로 들어온 중동계 및 중앙아시아계 무슬림의 후손들은 미얀마 현지에 동화되어 상좌부 불교 신자가 되었고 이슬람교를 그대로 믿었던 자들도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인종적으로 황인화가 되어진 상태에 있다.
한편 동남아시아에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의 중동계 및 중앙아시아계 무슬림 이주민들의 후손들 역시 오랜 혼혈화로 인해 현지 말레이인이나 자바인 등 현지 주류 민족들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을 정도로 동화되고 혼혈화되었다. 물론 로힝야인들이 그 기원을 언급하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과 같이 아랍계 후손이었다고 해도 이미 언어, 문화적으로 볼 때 벵골화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당장 옛 무굴 제국 북부 지역이었던 북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에 남아있는 무굴 제국의 주류인 투르크인, 페르시아인 지배층의 후손들도 언어와 문화, 인종적으로는 현지 토착민에 거의 동화되어 이슬람교 신앙만 겨우 지켜내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전근대 미얀마는 생산성이 매우 낮은 낙후 된 지역이 많았고 주요 도시들도 해안 지대보다는 내륙에 위치해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로힝야족, 로힝야어라는 별개의 명칭으로 볼 때 전혀 다른 혈통과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있지만, 이는 일개 모험가인 이븐 바투타의 일대기에서 나타난 단어를 토대로 20세기 초 로힝야인이 자신들에 대한 민족주의를 대두시키면서 발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을 두고 1990년대 초만 해도 항상 벵골족이라 불렸으며 치타공 벵골인이라고도 불렸다. 그들의 얼굴이 검갈색인 이유는 강한 햇볕에 타서 그러한 것이고 인종적으로 볼 때 전형적인 몽골리안으로 나타난다. 이들 인종은 흑발, 직모, 피부색, 이목구비 등으로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의 인종과 구분이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다고 해도 그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벵골인은 흑백혼혈, 정확히 코카소이드와 네그리토의 혼혈이라 곱슬 머리카락에 피부색, 안와상융기 등 생김새부터 달라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이들은 인종적으로는 확연한 벵골인과 가깝고, 언어도 벵골어의 남부 방언인 치타공어 갈래다. 동남아시아 계통의 미얀마인의 미얀마어와, 인도 계통의 벵골인이 사용하는 방글라어 사이의 차이가 매우 뚜렷이 나타나며 이들을 대개 로힝야어라고 명명은 해주고 있지만, 실상은 치타공어와 단어 몇 개, 그리고 사용하는 문자가 다른 수준일 뿐 억양까지 동일한 수준이다. 그나마 표준 벵골어와 다르게 표준 벵골어가 쓰이는 수도 다카어와는 크게 다르지만 이는 로힝야어와 방글라데시 치타공어 모두 해당하기 때문에 사실상 무의미한 비교라 볼 수 있겠다.
로힝야어는 당연히 미얀마어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서, 미얀마인과는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 미얀마에 멀리 보면 3세대, 100년이 넘는 기간이나 거주하면서 로힝야어와 치타공어가 큰 차이가 없고, 미얀마어와 기초적인 의사 소통이 안 되는 것은 미얀마 정부의 책임이 크다. 이는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인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고 교육복지도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인에게 미얀마어를 가르칠 생각이 없다보니, 로힝야인의 입장에서 미얀마어를 굳이 배워야 할 필요도 없고, 로힝야인이 독자 언어로 토착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렇게 된 것이 그다지 오랜 세월이 흐르지 않았다. 이와 같은 언어의 변화는 매우 보수적으로 불과 수십 년 동안의 단절만으로 언어가 고유 언어로 될 만큼 바뀌지는 않는다. 만약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인들에게 미얀마어를 적극적으로 가르쳤다면 로힝야어는 미얀마어의 차용어들이 유입되어 치타공어 및 표준 벵골어와는 더욱 많은 차이가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힝야 난민과 방글라데시의 사람들은 말로는 자유롭게 의사 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간에 필담은 불가능한데, 방글라데시에서 벵골어를 동부 데바나가리 문자로 표기하는 반면에 로힝야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아랍 문자나 하니피 로힝야 문자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로힝야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이 부분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 이유는 로힝야가 다수의 여러 민족이 섞인 집단과 주 종족이 벵골인이고, 억양도 벵골어와 유사한 언어를 구사한다는 점을 각국 언론이 잘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글라데시가 난민 캠프의 출입을 차단해도 로힝야가 도시에 몰래 들어가 취직해서 일하고 섞이는 것을 방글라데시 경찰이 단속을 하고 있지만 이를 잡아내는 것 또한 사실상 불가능하다. 방글라데시에서 계속 살아온 치타공인과 미얀마에서 온 로힝야인을 구별하려면 글을 써보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로힝야인이 자신이 글을 쓸 줄 모른다고 하면 그만이다. 이는 방글라데시 또한 문맹률이 높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와 같은 방식의 단속을 일일이 하는 것도 큰 어려움과 번거로움이 따르며, 오히려 방글라데시 치타공 사람이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우르두어 등 아랍 문자로 표기되고 있는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각 언어의 단어나 문장을 아랍 문자로 쓰다가 그 모습을 본 누군가에게 로힝야인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따라서 스스로가 방글라데시 치타공 사람인지 로힝야인인지 직접 말하지 않는 한, 사실상 난민 캠프를 몰래 탈출하여 불법으로 입국한 로힝야인을 방글라데시 사회에 동화되도록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 한편 로힝야인의 문화로 전통음악과 전통춤 또한 방글라데시나 인도 서벵골 주와 큰 차이가 없으며, 특히 방글라데시 본토 치타공 시민들의 전통음악과 전통 춤은 로힝야인의 전통과 매우 유사하다. 로힝야인들 조상들의 고향이라 일부 주장하는 아랍권의 전통음악과 전통 춤을 비교한다면 매우 이질감이 있다. 로힝야나 로힝야어라는 단어는 인류학, 문화학, 언어학적인 학문적 의미를 가진 단어라기보다는 근래에 생긴 정치적이고 정체성도 명확히 알 수 없는 인공적인 단어이고, 그렇기 때문에 미얀마인들은 '로힝야'라는 단어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미얀마인들은 로힝야인, 로힝야어를 부정하고 일관적으로 그들을 벵골인, 벵골어로 부른다. 그러나 정작 방글라데시나 인도의 서벵골인들은 로힝야인을 같은 벵골인으로 취급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로힝야인의 입장에서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정체성이 불분명한 민족이 된 셈이다. 물론 반대로 방글라데시나 인도의 벵골인들을 자신들과 같은 민족으로 취급하지 않는 로힝야인들 또한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는 편이다. 로힝야인들이 공식적으로 자신들이 벵골인의 지파로 인정하게 되면, 이들의 정체성이 불분명한 상태로 로힝야 민족주의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 상황이 된다. 따라서 로힝야인의 민족정체성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은 그만큼 난관이 따른다. 그래서 로힝야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