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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소수민족 모로족과 민다나오, 루손 섬의 필리핀 정부와의 관계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6 18:20:09

-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 이슬람 반군이 세력을 형성한 계기에 대해 

모로인은 필리핀의 민다나오와 술루 제도에 사는 이슬람교를 믿는 민족들을 말한다. 모로인의 인구는 약 500만 명이다. 모로라는 단어는 무어인의 변형으로 알려졌다. 14세기부터 말라카 및 보르네오 섬으로부터 이슬람교가 술루 제도를 통해 민다나오 섬, 세부 등 현재 필리핀 남부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 때 이슬람교를 믿기 시작한 다양한 민족 및 무슬림들을 통칭하는 단어가 모로족이다. 모로라는 단어의 어원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베리아 반도 및 북서 아프리카의 무슬림을 뜻하는 무어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당시 스페인이 민다나오 지역뿐만 아니라 필리핀 열도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을 통칭할 때 사용했던 단어였다. 현재는 마긴다나오(Maguindanao), 마라나오(Maranao), 타우수그(Tausūg)가 대표하고 있고 필리핀 도독령 이전에 이슬람을 신앙했던 세부아노 인도 모로족으로 간주되고 있다. 17세기 이후로 술루 술탄국이 팔라완 섬 남쪽에서부터 세력을 확장하면서 팔라완 섬 남부에는 무슬림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마닐라 정부의 카톨릭화 정책으로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반면 팔라완 섬 북부는 스페인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부에 비하면 모로족이 적은 편이지만 이슬람을 신봉하며 마긴다나오 어나 타우수그 어를 구사한다. 물론 영어나 타갈로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2015년 10월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원주민인 루마드(Lumad)족과 여러 활동가들이 수도 마닐라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벌인 항의 행진인 '마닐락바얀(Manilakbayan ng Mindanao 2015)'의 모습, 출처 : Global Voices

이들은 2013년에 방사모로 공화국이라는 미승인국을 건국할 정도로 필리핀과는 종교적, 문화적으로 매우 거리가 멀다. 애초에 대다수가 카톨릭 신자인 필리핀인들과 달리 이들이 사는 민다나오 지방은 카톨릭과 이슬람교가 공존하고 있는 지역이다. 다만 이들이 잠보앙가(Jamboanga) 쪽은 이슬람이 좀 우세한 편이어서 미승인국까지 세우고 전쟁을 벌인 것이다. 사실 민다나오에서도 무슬림과 카톨릭 신자들은 웬만하면 정쟁을 벌이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만약 갈등이 생기면 민다나오 쪽에서 있는 내전이 더욱 커져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사모로는 2013년 7월부터 9월까지 2개월 동안 필리핀에서 존속했던 미승인국이다. 방사모로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 계통으로 나라를 뜻하는 방사와 모로의 조합, 그리고 모로국으로 편역 할 수도 있다. 원래는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이 강력해져 세운 국가였다. 당연히 필리핀 정부가 이를 공격해왔는데 처음에는 필리핀군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대부분 승리를 하여 2013년에 독립을 선포했다. 처음에는 강력해지는 것 같지만 필리핀 정부가 다시 대규모 병력으로 반격을 하여 결국 8월 말부터 서서히 밀리다가 같은 해, 9월 말에 결국 멸망했다.

2012년 필리핀 정부와 자치구 설립에 합의했으나 그에 대한 반발로 인해 독립한 것 같다. 방사모로 공화국이 붕괴한 이후 2014년에 정부군과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 양측이 다시 협상에 들어갔고, 폭넓은 자원 채굴권 보장을 기반으로 한 방사모로 자치구가 설립되었다. 2012년 1월 27일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 술루 지역에 있는 한 성당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23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다. 이와 같은 테러의 배후로 술루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슬림 테러조직 아부 사야프(Abu Sayyaf Group, ASG)이 있다고 발표되었다. 이어서 같은 해, 1월 30일에는 인근 잠보앙가 시에 있는 한 모스크에 폭탄이 투척되어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지난 50여 년간 지속되며 120,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필리핀 무슬림 분쟁의 종식에 대한 기대가 높은 시점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영향을 끼칠까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14년 아키노(Benigno Aquino III) 정부와 필리핀 무슬림 최대 반군 조직인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Moro Islamic Liberation Front, MILF)과 맺은 평화 협정을 실현할 실행법이 오랜 진통 끝에 의회를 통과하고 이를 확정하기 위한 국민 투표가 지난 2019년 1월 21일에 실시되었다. 

이러한 실행 법들에 근거해 기존의 민다나오 무슬림 자치구(Autonomous Region in Muslim Mindanao, ARMM)는 방사모로 무슬림 자치구(Bangsamoro Autonomous Region in Muslim Mindanao, BARMM)로 대체될 예정이다. 당시에 실시된 국민 투표는 기존의 ARMM 포함 지역과 참여 의사를 밝힌 인근 두 도시(Cotabato City, City of Isabela)에서 실시되었다. 따라서 그 투표 결과가 발표되던 1월 27일에 폭탄 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 술루 지역은 이번 투표에서 방사모로 조직법(Bangsamoro Organic Law, BOL)에 반대하는 표가 더 많이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폭탄 테러 사건이 이제 첫 출범하려는 BARMM과 민다나오 무슬림 지역의 평화에 혹시나 악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과거에도 무슬림 반군과의 다양한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이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들의 저항이 이어지면서 제대로 결실을 거두지 못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필리핀 무슬림 분쟁은 소수 민족 분쟁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물론 필리핀 무슬림이 인종적으로 다른 필리핀 국민들과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카톨릭이 지배적인 국가에서 소수인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으로 인해 문화적 소수 민족으로 구분될 수 있다. 소수 민족 분쟁은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에 에스테반 레이(Esteban Ray)는 분쟁의 발생 원인에 관해 차별적인 정부 정책과 이에 대한 소수 민족의 저항으로 판단했다. 특히 소수 민족 내부의 불평등한 구조도 분쟁을 촉발하는 원인으로 주목했다. 이는 소수 민족 내부에 투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물질적 자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부유한 계층이 존재하고, 더불어 경제적인 상황이 절망적이었기 때문에 전쟁터라도 마다하지 않고 들어갈 다수의 빈곤층이 존재할 때 이들 간의 연계를 통해 분쟁이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에스테반 레이의 이론은 필리핀의 무슬림 분쟁 발생 배경을 설명하는 것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필리핀 무슬림 사회는 필리핀 국가 전반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일부 전통적인 상류층들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다수의 무슬림 민중들은 빈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분쟁의 발생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며 빈부격차는 모든 것의 근원적인 원인이 된다. 한편 로버트 구어(Robert Gurr)는 1993년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소수 민족 분쟁이 촉발하는 배경으로 정치적 권리, 경제적 권리, 그리고 사회, 문화적 권리에 대한 불만의 고조를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분쟁으로 이어지기 위한 또 다른 조건으로 네 가지를 들었다. 우선 소수 민족의 불만이 극도로 고조되어 있으며, 둘째로 중앙 정부가 이를 억제할 정도의 능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셋째로 소수 민족에 대한 외부의 지지와 지원이 존재하며, 마지막으로 이러한 환경을 활용하려는 정치적 야심가가 존재해야 한다고 했다. 로버트 구어의 소수 민족 분쟁의 발생 배경과 조건에 관한 이론도 필리핀의 사례에 적용될 수 있다. 필리핀 무슬림 분쟁이 본격화되던 1970년대 초기의 상황은 로버트 구어의 소수 민족 분쟁 발생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 로버트 구어에 의하면, 소수 민족 분쟁에 대한 중앙 정부의 정책은 크게 무력 진압과 타협으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이는 분쟁을 일으킨 소수 민족의 요구 사항과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중앙 정부의 태도 여부에 따라 분쟁이 지속되기도 하고, 또한 합의에 도달하여 분쟁이 종결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소수 민족 분쟁의 이슈로 자주 등장하는 분리 독립 주장은 특수한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실현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개별 사안에 따라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필리핀의 경우 무슬림 분쟁이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온 것에 대해 주요 반군 단체인 MILF가지속적으로 분리 독립을 요구해 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전개되고 있는 평화의 움직임은 MILF가 그 동안 고집해 왔던 분리 독립이라는 목표를 포기하고 대신 실질적인 자치를 요구함으로 인해 가능할 수 있었다. 이는 필리핀 정부와 MILF 사이에 상호 정체성을 인정하는 한도 내에서 공동 번영을 모색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 수차례의 평화 협정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는데, 이번에 추진하는 BARMM은 과연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 연구에서는 필리핀 무슬림 무력 분쟁의 성격과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새롭게 출범하는 BARMM이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진정한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파악해보고자 한다. 특히 무력 분쟁의 지속 현상을 필리핀 무슬림의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BARMM이 이와 같은 분쟁의 내외적 요인들에 대한 적절한 처방이 될 수 있을지를 평가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지난 수년 간 필리핀 무슬림 문제를 파악하여 이미 여러 차례 연구 결과를 도출한 바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차례의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많은 무슬림 관계자들의 자료들을 파악하였다. 이러한 본 연구자의 연구 경험이 본 연구의 주요 자료와 논점을 제공하였으며, 최근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필리핀 현지 언론 보도와 분석 자료를 활용하였다. 필리핀의 무슬림 반군 문제는 표면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종교적 분쟁으로 보여 질 수 있다. 이는 서구와 아라비아 세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그러한 현상적 근원은 멀리 <구약성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중세 시대 십자군 전쟁도 두 종교 간 갈등을 심화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대에 와서 중동 국가들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스라엘의 배후로 지목되는 미국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간의 충돌에 종교적 신념이 관여되어 있다. 필리핀 무슬림 분쟁을 종교적인 이유에서 찾는다면 그 근원은 스페인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718년부터 1492년까지 무어(Moor) 족 아라비아계 무슬림에 대해 벌였던 재정복전쟁(Reconquista)을 들 수 있다. 

스페인은 본토에서 수백 년 동안 무슬림들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필리핀에 와서 마주하게 된 또 다른 무슬림도 정복의 대상으로 삼음으로 인해 시작된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종교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필리핀 무슬림 반군 문제는 종교적인 원인보다는 세속적인 원인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언제부터 필리핀에 이슬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인된 기록에 의하면 14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인 전파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1450년경에는 일부 민다나오 중서부 지역에 이슬람 술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슬람은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 1521년에는 그 세력이 이미 마닐라까지 미칠 정도로 널리 전파되어 있었다. 필리핀 무슬림들은 스페인의 정복 전쟁에 지속적으로 저항했으며, 이는 필리핀의 주권이 미국으로 이양된 1898년까지 이어졌다. 미국의 식민 통치 하에서 필리핀 무슬림들은 최초로 필리핀 정치 공동체의 일부로 포함되었다. 이는 당시 술루의 술탄이 자치권과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는 조건 하에서 미국과 맺은 베이트 협약(Bates Treaty)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 협약을 파기하고 1902년 직접 통치를 위한 법안을 공포했다. 

이후 필리핀 무슬림들은 카톨릭이 지배적인 필리핀 사회에 소수 민족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오랜 고립의 시기에서 벗어난 필리핀 무슬림 사회의 근대적 전환을 의미했으며, 그 과정에서 일부 전통적 지배 계층은 새로운 정치 체제의 지도층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이들은 오늘날까지 필리핀 무슬림 사회의 지배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다. 필리핀 무슬림 사회는 미국 식민 통치 시기부터 정치적인 소외와 경제적 주변화를 경험한다. 이 때부터 시작된 타 지역 사람들의 민다나오 이주 정책은 1946년 필리핀 독립 이후에도 지속되었으며, 이는 많은 무슬림들을 자신의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땅에서 몰아내는 원인이 되었다. 새롭게 무슬림 지역에 이주하여 정착한 사람들과 현지 무슬림 간의 갈등이 점차 격화되었고,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무장하기 시작하면서 분쟁은 사병 집단을 동원한 유혈 충돌로 발전했다. 이처럼 사적이며 간헐적으로 발생했던 분쟁이 전면적인 반정부 투쟁으로 변화하게 된 주요 사건은 1968년 3월에 발생한 자비다(Jabidah) 학살사건이었다. 이는 필리핀 군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무슬림 병사 30명이 병영에서 집단으로 학살당한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민다나오에서는 최초의 무슬림 반군이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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