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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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중심가에서 동북 방향으로 약 40분 거리의 한 골프장 클럽하우스는 1990년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한국 대기업으로서는 최초로 베트남에 진출했을 때 건설한 골프장이존재하고 있다. 지금도 하노이에는 건설, 레저, 자동차 제조업을 포함한 여러 산업 분야에서 김우중 회장이 남긴 족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현재 하노이에서는 "글로벌 청년 사업가 양성 과정(GYBM, 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 대학 졸업자들을 선발해 베트남을 포함하는 해외 현지에서 그 나라 말을 익히고, 그곳의 경제와 기업을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김우중 전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착안되었다.

베트남 하노이 대우호텔, 출처 : Golf asian
당시에 김회장님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이 프로그램은 ‘김우중 사관학교’라고 부르고 있다. 1990년대 중후반 하노이의 대우자동차 조립 공장에서는 작업장 벽 한쪽에 늘 작업복이 줄지어 걸려 있었는데, 퇴근할 때 깨끗한 작업복을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대우’ 마크를 보고 모두 부러워했기 때문이라 했을 정도로 대우에 대한 베트남 노동자들의 자부심은 어마어마 했다. 당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현지인들의 마음에 한국에 대해 강한 인상을 심어줬음을 알 수 있다. 한국-베트남 간의 이와 같은 교류는 김우중을 비롯해 베트남에 진출했던 1세대 기업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1980년대 말 동구권 공산주의 체제의 해체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적 경제 운영 원리를 앞세운 세계화가 전 세계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같은 한국의 기업인들은 해외 시장 개척에 앞장섰던 대표적 선두 주자였던 분들이다. 그리고 1990년대 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금융 위기가 몰아닥치면서 한국 기업의 해외 시장 개척이 잠시 주춤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국제 금융 위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혼란에 빠졌던 세계 경제는 어떤 대안적 경제 운영 원리에 따라 변화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체제에서 좀 더 점진적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베트남 진출에 한정해서 보더라도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7,0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 기업의 진출과 개인 투자는 제조업과 건설, 도소매업, 과학기술과 R&D, 차량 수리와 같은 서비스 부문을 포함해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도 하노이와 하이퐁, 타이응우옌을 중심으로 하는 북쪽 지역에서부터 호치민과 빈 즈엉을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전역에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베트남 현지 지자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한국 기업이 이미 참여하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베트남 전국에 걸쳐 있다. 삼성은 전자, 반도체, 휴대폰 생산을 위해 베트남 노동자 16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의 수출은 베트남의 총 해외 수출액의 24~28%에 이를 정도다. 이와 같은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은 가속화되고 있지만 최근 들어 다시 주춤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베트남 시장에서 판매를 확대하기 위해서 만이 아니라 자동차 생산을 위해, 이미 6만 대를 조립할 수 있는 현재 설비에 더해 공장을 증설함으로써 생산 능력을 10만 대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그 뿐만 아니라 현대 건설은 하노이 구 시가지 중심 지역인 호안끼엠 일대를 관통하는 3호선 지상철 건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LG전자 또한 베트남 하이퐁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LG전자가 주력 상품인 TV, 휴대폰, 세탁기, 청소기, 에어컨 등의 생산 라인을 하이퐁 지역 공단으로 통합 이전했다. 이는 베트남 내수 공급 차원을 벗어나 베트남을 글로벌 생산 거점으로 삼기 위해 이를 확대 개편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 기업들이 막대한 투자를 실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국영 철도 기업 중국 중차(CRRC, 中国中车) 대표단은 제15회 세계 경제 포럼 연례 회의를 계기로 베이징에서 열린 ‘베트남-중국 교통 인프라 개발 협력 회의’에서 베트남 남북 고속철도를 비롯한 철도 인프라 사업에 대한 투자 참여 의사를 베트남에 타진했다. 베트남은 고속도로와 남북 고속철도, 도시 철도, 항만, 공항 등 2045년까지 5개 부문 교통 인프라 확충 사업에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업 규모는 베트남 정부로서는 매우 도전적인 과제로 남아 있지만 베트남 기업 뿐 아니라 중국 기업들에게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올해 베트남-중국의 수교 76주년을 맞고 있다. 반도체,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사물 인터넷, 광전자, 양자 기술, 생명 공학, 신소재, 디지털 결제 등의 기술들이 중국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중국 대형 자동차 기업이 베트남에 1조원을 투자, 전기차 공장을 짓고 베트남의 유일한 국산 전기 자동차 제조사이자 전기 스쿠터 제조사인 빈 패스트(Vin Fast)와도 손을 잡았다. 그리고 미국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 회피 전략으로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올인하고 있다. 제품의 질을 중국 것을 어떻게 믿냐고 질문할 수 있지만 동남아시아나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경제력이 떨어진 국가들에게 중국제는 극한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물량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기에 물건의 질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90~2000년대의 중국제 물건보다 현대 생산되는 중국제 물건은 질적인 면과 디자인에서 많이 나아졌다. 그동안 막대한 물량으로만 승부 했던 중국은 질적인 면에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노려왔다. 서방 선진국에서 전문가도 모셔오고, 공학 쪽에 우수한 인재들은 서방에 유학 보내고 이들이 돌아오면 이들을 중심으로 질적인 변화와 신제품 개발을 계속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산업스파이로 들어가 남의 기술들을 빼오는 등, 질적 향상을 위해 별 짓거리를 다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인해 중국제는 90~2000년대처럼 허접한 물품에서 현재 나름 쓰기에는 꽤 괜찮은 제품으로까지 기술력이 올라왔다. 물론 아직까지 질적인 면에서 우리와 서방 선진국이 약간 우위에 있지만 이제는 이조차도 곧 있음 우열을 가릴 수 없게 될듯 싶다.
게다가 값도 저렴하게 양적으로 대량 생산을 해버린다면 우리나 서방 선진국들이 어떻게 그 물량과 대적할 수 있을지 암담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을 인정하여 받아들이고 어떻게 승부해서 질적, 양적으로 중국에 우위를 점할지 끝없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막연한 중국제 불신은 이같은 상황 해결에 조금도 도움이 안 된다. 현실은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에서조차도 중국의 막대한 투자에 서서히 밀리고 있다는 것이고, 삼성 공장이 있던 박닌 또한 중국의 텃밭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몽이 아니라 진짜 현실이다. 동남아시아에 놀러만 오면 이런 현실은 끝없이 도외시 된다. 놀러만 오지 말고, 이런 현실도 좀 제대로 목도하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