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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되는 이란-미국 전쟁, 마치 베트남 전쟁과 판박이로 진행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6 18:29:22

현 이란-미국 전쟁과 트럼프의 상태를 보면 마치 베트남 전쟁 당시 "구정 대공세"라 불리는 "뗏(Tet) 전투"가 생각난다. 호치민(1890~1969) 초대 주석과 보 응우옌 잡(1911~2013년) 장군이 주도한 이 작전은 마치 대 프랑스 독립전쟁의 "디엔비엔푸 전투"와 매우 유사했다. 1968년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게릴라전의 고전인 야간기습을 중심으로 공격했다.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을 포함한 남베트남 전역에 걸쳐 100개 이상의 도시를 기습 공격했다. 이들이 3단계 전체에 걸쳐 동원한 병력은 323,000~595,000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소규모 화기만 지닌 대규모 베트콩 게릴라 병력이 도시의 정규군을 공격하는 작전 자체가 처음부터 승산이 없었다. 그러나 모두 죽을 줄 알면서 이 작전을 개시한 것은 호치민과 보 응우옌 잡의 더 큰 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5년 10월 16일, 미국 보스턴의 커먼웰스 애비뉴(Commonwealth Avenue)에서 여러 인근 대학의 학생들이 보스턴 커먼(Boston Common)으로 행진하며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여를 반대했다. 출처 : St. Albert Gazette 

이는 디엔비엔푸 전투 당시에도 계획했었던 "강대국 내부부터 흔드는 전략"이다. 미군과 한국군은 의외의 기습 공격에 허를 찔렸지만 곧바로 대오를 정비하고 이내 전투를 주도했다. 전투 결과는 북베트남에 절망적인 패배였다. 9월까지 진행된 전투에서 무려 북베트남군은 45,000명 정도의 병력을 잃었으며 특히 남베트남에 침투했던 베트콩 병력은 거의 궤멸했다. 전투에서는 북베트남의 처절한 패배로 막을 내렸지만 역설적으로 이 전투를 기점하여 전세는 미군에게 불리해지기 시작한다. 이후의 역사는 1954년 기습 공격으로 벌어진 디엔비엔푸 전투의 승리가 결국 협상으로 이어져 제네바 협정과 프랑스군 철수로 이어지면서 베트남이 독립한 것과 유사하다. 이전까지는 모든 것이 평화로웠던 설날 새벽부터 공격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남베트남군과 연합군, 그리고 남베트남 국민들을 심리적인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일찌기 적어도 설 명절 기간에는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불문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설 명절만큼은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는 전통적인 베트남 문화가 기초했기 때문이다. 군사력이 우수한 남베트남과 미국에서 먼저 전쟁이 아닌 평화라는 구호가 쏟아지면 미국이 먼저 협상을 제의해 올 것이라는 전략에서 펼쳐진 전투가 바로 "구정 대공세" 였다. 이 전투를 계기로 특히 미국에서는 전쟁에 싫어하고 염증을 내는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반전을 말하지 않으면 아니면 지성인이 아닌 역적이 되는 분위기가 팽배하기 시작한다. 많은 젊은이들을 징집해 베트남에 파병하고 항공모함과 전폭기, 폭격기 등 고가의 첨단 무기체계까지 동원해 북베트남을 폭격했는데도 그들의 군사력을 궤멸하지도 못했고 전쟁의 의지를 꺾지도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이전까지 미국에서는 승전하고 있으며 북베트남이 계속 패배하여 밀리고 있다는 가짜뉴스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는 지금 같이 인터넷이 없던 시절, 수만리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에서 그렇게 방송하면 대개 다 믿었다. 미국의 사상자가 축소 보고되거나 방송되어도 정말 그런 줄 알고 다 믿었던 시절이었다. 미 정부의 대대적인 언론 보도 통제가 있었어도 다른 채널 확인하기 불가능했기에 대개 다 믿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데 세계 최강의 미군이 기습 공격까지 당한 모습이 보도되자 미국 국내에서는 각종 비난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미국은 구정 대공세라는 전투에 이기고 내부의 적으로 돌변한 시민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허를 찔린 형국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환멸감이 확산되면서 반대 시위가 널리 퍼져 대학가를 중심으로 성토가 이어졌다. 그리고 병역기피가 만연했으며 미군 사기도 떨어져 불복종과 탈영이 줄을 이었다. 린든 B. 존슨 대통령조차도 대선 불출마를 선포했고,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왔던 조지 맥거번 사우스다코다 주 연방 상원의원은 미군의 즉각적인 베트남 철수를 요구했다. 더 이상 내부에서 견디지 못한 미국은 북베트남과 평화협상에 나섰다. 그리고 1969년 베트남 주둔 미군 감축에 나섰고, 1973년 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북베트남, 남베트남 임시정부(베트콩의 정치조직), 남베트남, 미국 사이에 ‘파리 평화협정’이 조인됐다. 그리고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전 종전 선언’ 을 일방적으로 해버리며 철수해버렸다.

지금 미국 내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한다. 복수의 소식통들에 의하면 그렇다 들었다. 나는 미국 전문이 아니기에 뭐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노 킹스 시위(No Kings protests)가 이어지고 있으며 트럼프는 여기저기서 종전 압박을 받고 있다 한다. 마치 조지 맥거번 의원이 베트남 철수를 요구한 것처럼 말이다.  노 킹스 시위(No Kings protests)를 보면 구정 대공세 이후, 미국 내 반전 시위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나서 미국은 이란과 협상에 들어갔다고 한다. 물론 이란 측은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물밑 협상까지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베트남 전쟁 때처럼 그렇다면 그렇게 알고 있어야지.. 식의 방법 밖에 없다. 우리는 협상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협상이 성사되고 있다면 트럼프는 닉슨의 "베트남전 셀프 종전"처럼, "이란 전쟁 셀프 종전"을 계속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철수해 버리면 중동 내 미국 패권은 현저히 약화된다. 호르무즈도 알아서 뚫으라고 하니, 목 마른 자들이 먼저 물을 찾는다고, 이란과 싸움보다는 다들 협상 테이블로 돌진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트럼프는 베트남 전의 실패를 어느 정도 복기했던 것 같다. 곧바로 타코(TACO) 하는 것보다 2~3주 동안 강한 공격을 하겠다는 것이다. 어디 한 번 해보거라. 석기 시대 만들 정도로 강한 타격을 하겠다면 그 장면이 미국 시민들에게 생중계 될 것이고, 아마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 시위보다 몇 배의 강한 시위와 친트럼프를 외치는 자들이 그 자리에서 돌 맞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K-MAGA 작자들은 그와 같은 미국 내 뉴스들조차도 "가짜뉴스"라며 부들거리겠지만 배트남 전쟁 반전 시위는 가짜뉴스가 아니며 50여 년이 지나가 벌어지는 시위들 또한 가짜뉴스가 아닌 역사로 남게 된다. 현실 왜곡은 망상을 만들고 그것은 곧 정신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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