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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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여 년 전에도 이어진 하마스보다 앞선 PLO에 대한 이스라엘의 인종청소, 현재에도 진행 중
최근 이스라엘군이 가자시티 점령을 위한 '기드온의 전차 작전' 2단계에 돌입했다 한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20일 가자지구 북부의 인구 밀집 지역인 가자 시티 외곽을 점령했다. 이스라엘군은 이 지역에 추가 병력을 투입한다고 발표해 가자 시내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살육"이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지난 1982년 레바논 전쟁 당시 갈릴리의 평화 작전(Operation Peace for Galilee)이라고 불리는 작전에서 "샤브라사틸라 대학살"이 발생한다. 당시 갈릴리의 평화 작전(Operation Peace for Galilee)은 예수의 탄생지인 나사렛이 있는 갈릴리라는 지명에서 평화라는 단어를 조합했다. 1982년 6월에 시작된 이 레바논 전쟁은 10주를 이어가다가 8월 12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LO)의 베이루트 철수를 위한 최종 조건이 성사되면서 8월 말부터 9월 1일 사이에 PLO 전사들 수천 명이 베이루트에서 철수하여 종결되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중심부에서 열린 사브라·샤틸라 학살(Sabra and Shatila massacre) 추모 행사 사진, 출처 : Al Jazeera
1982년 6월 6일, 이스라엘군 3만 명은 마침내 레바논 국경을 넘어 침공을 개시했다. 보통 제5차 중동 전쟁에 해당되는 이스라엘-레바논 전쟁 개시일을 6월 6일로 보고 있으나, 실제 전쟁은 이스라엘군이 남부 레바논 지역에 대해 집중적인 포격을 감행했던 6월 4일에 시작되었다. 당시 영국에 주재하고 있던 이스라엘 대사를 암살하려 했던 사건에 PLO가 관련되어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로 이 암살 미수 사건의 주체는 PLO에 매우 적대적으로 나타나면서 이스라엘이 뒤에서 몰래 지원하고 있던 급진 무장조직인 아부니달(Abunidal)이었다. 이스라엘은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PLO를 더 위협적으로 보고 이들을 토벌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 사건의 주범이라 몰아세우며 이를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진범이 누군지 알고 있었음에도 PLO를 제압하기 위한 명분으로 내세운 것을 보면 이는 매우 이스라엘다운 비열한 태도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후 이스라엘의 수상이 된 아리엘 샤론(Ariel Sharon, 1928~2014) 당시 국방장관이 레바논에 대한 침공을 지휘했다. 레바논 남부 지방은 PLO의 거점으로 PLO가 상당수의 팔레스타인 난민과 반 이스라엘 성향이 강한 레바논 주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대 이스라엘 투쟁을 해 오던 거점이었다. 이스라엘의 전략적인 목표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의 대 이스라엘 투쟁이 벌어지는 전략 사령부인 PLO를 레바논에서 축출하여 사실상 와해시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군은 레바논 남부의 PLO와 교전을 하면서 레바논 남쪽 영토를 침공했다. 이스라엘 영토와 레바논 영토 양쪽에서 다수의 민간인 사망자들이 발생했으며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하여 시리아 주둔군의 대공미사일 포대를 포격해 파괴해버렸다. 이스라엘은 베카 계곡의 시리아 군 기지를 공습해 파괴하고 PLO와 전투를 벌이면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포위했다. 이스라엘은 군사시설이 아닌 민간인 거주지역이 주를 이루는 도시 전체에 대해 무차별적인 포격을 가했다. 이와 같은 무법적인 행동은 제네바 협약과 헤이그 협약으로 성문화 된 국제 인도법의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폭격은 전쟁범죄였다. 당시 이스라엘의 메나힘 베긴(Menachem Begin, 1913~1992) 수상은 1981년 7월의 대규모 공습으로 인해 베이루트의 건물 한 채가 파괴되고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이스라엘은 더 이상 민간인 지역에서 게릴라 목표물을 공격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선언한 적이 있다. 이어 당시 8월 5일 로널드 레이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베긴은 강력한 군대가 무고한 민간인들 사이에서 히틀러와 그의 심복들이 지하 깊숙한 벙커에 은신해 있는 베를린을 상대하고 있는 느낌이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베긴을 비롯한 이스라엘 수뇌부들은 민간인들을 상대로 히틀러와 나치가 자신들에게 행했던 행동들을 그대로 팔레스타인인에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베이루트 포위 공격이 끝나갈 무렵인 8월 6일에는 베이루트의 한 아파트에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이 다녀간 이후, 이스라엘의 폭격기들이 잇달아 공습을 했고,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던 1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살해되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 당시 시리아는 이스라엘과 단독으로 휴전을 하였고, PLO는 레바논 내전 중에 PLO의 우호적 조직이 되었던 같은 이슬람 조직인 레바논 민족운동(NLM, National Liberation Movement)의 동맹자들과 함께 전장에 남았다.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포위 공격의 중단을 위해 PLO의 레바논 철수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스라엘 군이 수도 베이루트를 포위한 이후, 레바논의 경제는 크게 악화되었다. 전쟁은 6월 6일부터 7주 동안 이어지면서 PLO가 레바논에서 철수한 8월 12일에 휴전 조약이 체결되면서 종결되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집요하게 압박하자 아랍의 각국 정부들은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불리한 상황에서 PLO는 어쩔 수 없이 베이루트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미국은 동맹국인 이스라엘에게 1981년과 1982년에 걸쳐 14억 달러에 이르는 군사원조를 제공하게 된다. 이 14억 달러라는 돈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하는데 사용한 미국산 첨단무기들과 군수물자를 축적하기 위한 금액으로 이용되었다.
이스라엘이 행한 베이루트 포위 공격 기간에 요르단 강 서안의 절반 지역이 이스라엘 군의 포격으로 인해 파괴되고 넓은 지역이 황폐화되었으며 5만여 명 이상 사상자들이 발생하였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강한 무력을 가진 이스라엘 군의 레바논 철수를 관철시키면서 PLO가 염려한 민간인 학살을 예방하기 위한 조항을 문서로 보장하지 않았다. 이는 민간인들을 상대로 공격을 가하더라도 이스라엘의 책임이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한 안전보장을 요구한 미국 관리들에게는 구두로 난민들에 대한 공격이 없을 것이라는 하나마나한 약속을 보장했다. 그러나 미국 관리들이 약속한 안심은 결국 사브라샤틸라(Sabra Shatila)의 대학살로 인해 철저히 어겨졌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협의를 거쳐 1985년 2월 레바논에서 철수했지만 남부 레바논 지역에는 팔레스타인 PLO 게릴라들의 침공에 대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2000년까지 일부 병력을 잔류시키고 있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국경을 넘어 리타니 강과 접하는 지역들을 이스라엘 군은 남부 레바논군과 함께 지배하게 된다.
레바논 전쟁의 최대 비극은 이스라엘과 PLO의 전투 가운데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는 이스라엘 군이 보호하고 있었던 극우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Falange)의 샤브라사틸라 난민촌을 습격한 사건으로 이어진 대학살로 나타났다. 샤브라사틸라 학살 이전에 개전 초기에는 이스라엘 군이 4만여 명이 거주하는 레바논 최대 규모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인 시돈 근처를 공격하였고, 난민들이 격렬히 저항하였지만 난민촌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1976년에는 텔 알자타르(Telaljatar) 난민촌에서 팔랑헤 집단들이 난민 2천여 명을 학살한 적이 있다. 이는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금지한 국제 인도법의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전쟁 범죄라 볼 수 있다. 팔랑헤 집단은 이스라엘이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레바논 민병대이다. 이들은 절대 다수가 기독교인으로 1982년 레바논 전쟁에서 샤브라사틸라 난민촌을 공격해 엄청난 수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학살했다. 9월 16일부터 18일 아침까지 민병대원들은 1,3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후일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이스라엘 군은 야간에 조명탄까지 쏘아 난민촌 일대를 밝히면서 팔랑헤 집단의 학살을 적극 지원하고 철저히 묵인했다. 당시 팔랑헤 집단을 통제할 수 있는 책임자는 이스라엘 국방장관으로서 전쟁을 지휘한 아리엘 샤론이었다. 샤론은 예루살렘에 있는 알 아크사 사원을 방문하여 이슬람에 대한 모욕적 행위를 했던 인물이다.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해 제2차 인티파다의 계기를 만들었다. 샤론은 팔레스타인 인들에게 있어 최악의 학살자이자 현재 네타냐후보다 더한 인물이다. 샤론의 행위는 오히려 네타냐후가 천사로 보였을 정도다. 아리엘 샤론은 전쟁 범죄자지만 후일 이스라엘의 수상이 되어 대 팔레스타인 강경정책을 밀고 나갔다. 이스라엘 대법관인 이츠하크 카한(Izkhak Kahan)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가 샤브라사틸라 학살을 집중적으로 조사했을 당시, 아리엘 샤론과 메나힘 베긴, 기타의 고위 장성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후에 더 밝혀진 기록들에 따르면 아리엘 샤론을 비롯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대량 학살과 팔레스타인인들을 중동에서 추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팔랑헤 집단에서 학살에 숙련된 자들을 난민촌에 투입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린 사실이 드러났다.
레바논 전쟁에서는 이스라엘 군 8개 사단, 12만 명이 넘는 병력이 참여했고 이스라엘 군은 657명이 사망하고, 3,887명이 부상을 입었다. 레바논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대부분 민간인들이 팔레스타인인과 레바논인으로 19,000여 명이 살해되었으며 30,0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게다가 레바논 전쟁은 현재 이스라엘 국민들로부터 가장 인기가 없는 전쟁으로 불리고 있다. 20세기 최대의 전쟁광인 이스라엘 국민이 볼 때도 1982년 레바논 침공 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으로 인정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PLO의 레바논 철수라는 그들의 목표를 달성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한 레바논 국민들이 반이스라엘 전선을 형성하게 했고 헤즈볼라가 창설되어 대 이스라엘에 대한 투쟁을 야기한 사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