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고 심원 김형효 선생을 기념하는 모임인 심원 포럼에 다녀왔다. <에세이철학회>의 웹 마스터인 최은경 선생님이 그 포럼에 깊숙히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서 어제 모임에 함께 참석을 했다. 모임 장소는 청량리 역 앞에 있는 세미나 룸 <청량 스팟>이다. 이 자리에는 심원 선생의 사모님이 멀리 원주에서 올라오셔서 함께 하셨다.
어제 모임에는 인류학과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저술 100여권 이상을 저술한 박정진 선생님, 주자학을 위시해 동서양 철학에 두루 밝은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인 최진덕 선생님, 이날 심원 선생의 사상 발전을 중심으로 간단한 발제문을 준비한 한국철학 전공의 세명대 장승구 교수, 그리고 미국 텍사스에서 오랫동안 목회를 하다가 잠시 귀국한 임찬순 목사님, <에세이철학회> 웹마스터인 최은경 선생과 에세이철학자인 저 이종철이 참석을 했다. 이분들은 대부분 심원 선생 생전에 가까이 하면서 철학 수학과 학문적 교류를 해오시던 분들이다. 최은경 선생은 선생의 지난 학문적 이력과 논문, 그리고 저술 등 관련해서 웹사이트를 구축한 인연이 있다. 사정 상 이 사이트는 아직 공개는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박정진 선생은 내가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빛의 철학 소리철학>(소나무, 2013)의 저자였다. 이 책은 선생이 '문자' 이상으로 '소리'를 중심으로 존재론을 전개한 점에서 아주 특이하다. 선생은 소리가 존재이고, 삶이라고 하면서 이 소리로부터 포노로지(Phonology)라는 개념까지 창조했다. 당시 이 책을 끙끙대며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기존의 철학자나 사상가 중심으로만 연구하던 한국철학계의 분위기와 크게 달라 감탄한 적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나 창의적인 선생의 발상을 따라가기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책의 저자인 박정진 선생을 적접 뵈고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 자체가 큰 인연이요 영광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겉으로 풍기는 선생은 모습은 고 이어령 선생처럼 재기가 넘쳐 보였다.
최진덕 선생은 이름은 오래 전부터 들어왔지만 뵙기는 처음인 듯 싶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임식진 선생이 이끌던 헤겔 학회에 오래 전부터 드나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아는 연대의 유모씨와 박모씨 등과도 잘 알고 있었고, 내가 번역한 이폴리뜨 책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헤겔학회에서 논문도 발표를 하셨다고 했다. 마침 그 당시는 내가 철학에 회의를 느껴 대학을 떠나 있었던 상황이라 직접 조우를 했는 지는 기억이 가물했다. 아무튼 오래 전 헤겔학회를 매개로 한 인연이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의 인연을 허물없이 나누다 보니 오랜 지기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어제 세미나는 심원 선생의 <마음혁명>(살림출판, 2007년) 중 '이성을 넘어서'라는 장을 함께 읽으면서 시작했다. 이 책은 철학과 세계, 인간 등에 관한 심원 선생의 사색이 잘 드러나 있는 책이다. 나는 이전에 이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대략 목차만 보고서도 선생의 사유를 따라갈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제 읽은 '이성을 넘어서'는 이른바 합리성을 추구하는 이성과 논리만으로 인간을 이해하기는 역부족이고, 보다 근원적으로 감정과 정서, 마음 등에 관한 통찰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마음과 태도의 전환을 통해 세상을 대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지혜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태도의 전환은 일찍이 로마의 스토아주의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그들의 기본 전제는 운명(fortuna)과 같은 정치, 거대한 로마 제국의 현실을 내가 바꿀 수는 없지만, 이 세계에 대한 나의 태도와 자세를 바꿈으로써 그것들의 나의 마음의 행복을 깨뜨릴 수 없다고 한 데 있다. "삼계는 오직 마음이요, 마음은 오직 아는 것에 있음을"이라는 장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화엄경의 핵심 사상에 닿아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태도 전환은 어제 이야기 중에도 나왔듯 궁극적으로 '죽음'에 대한 사유를 통해 인간의 삶을 겸허히 반성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이 시대에 대한 경종이기도 했다.
이어서 한국철학자인 세명대학의 장승구 교수의 발제를 들었다. A4 용지 4-5매 정도의 짧은 발제문이지만 선생의 사상적 이력을 따라 정리를 깔끔하게 잘 해주었다. 벨기에 루뱅에서 가브리엘 마르셀(Gabriel Marcel)의 '구체성의 철학(Philosophy of Concreteness)'으로 학위를 받은 심원 선생은 서양사상에 밝은 한편 그와 대비해 대한민국의 낙후된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선생이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에 사회와 정치에 발을 들였던 이유도 철학이 이런 현실에 대해 무언가 발언을 하고 지혜의 등불을 밝혀야 하지 않는가라는 지식인의 소박한 문제의식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시가 유신독재의 시절이었고, 전두환 군사정권이 등장한 시대였기 때문에 아마도 선생의 현실 참여는 득보다는 실에 가까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선생의 문제의식과 그것을 펼칠 수 있는 현실 공간의 괴리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무튼 선생은 프랑스 구조주의와 하이데거, 데리다의 해체주의 등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폭넓게 소개를 하셨다. 나도 당시 선생이 쓰신 <데리다의 해체철학>(민음사, 1993)을 페이지가 너덜해질 정도로 탐독하기도 했다. 그 이후 선생은 동양으로 관심폭을 넓히면서 노장과 불교 등 다양한 문헌등을 섭렵하면서 많은 논문들과 책들을 내셨다. 그런 면에서 선생이야말로 동서 고금을 두루 연구하신, 진정한 의미의 비교철학자라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선생을 직접 뵌 적이 있다. 특히 이규호 선생 출판 기념회에서는 바로 앞에 선생이 앉아 계셨다.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책이나 논문들을 통해 상당한 철학적 자극을 받았기 때문에 그떼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다. 선생의 글들을 보다 보면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학구파 였는 지를 알 수가 있다. 모든 학문은 기초 및 성장 단계에서 철저한 독서와 연구가 가장 기본적이다. 제대로 읽지도 않고 아는체하는 학자들이 부실하다는 것은 한 두 마디만 이야기를 나눠도 알 수가 있다. 19세기의 천재 사상가이자 지금까지 여전히 세계 철학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F. 니체가 '문헌학'에서 학문적 경력을 시작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문헌학은 인문학의 노가다 판이라고 할만큼 문헌에 대한 끈질기면서도 정교한 읽기에서 시작한다. 천재적 사상가라고 하면 그저 뛰어난 직관만으로 쉽게 철학을 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니체는 그런 노가다 판을 거치면서 아주 철저하게 훈련을 받은 철학자이다. 이런 철저한 독해와 연구의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직관과 상상력 발동도 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철저한 연구를 일찍이 심원 선생의 책과 논문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 선생에게서 '정치색'을 가지고 흠 잡으려는 것은 몰라도 한 참을 모르는 무지라고 할 수가 있다.
이 자리에는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나중에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러 갔다가 그곳에 눌러 앉아 목회를 하는 임찬순 목사도 함께 했다. 이분은 이 자리의 다른 한중연 출신들과 동문수학한 사이라 그런지 서로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외국에서 활동하다가 이렇게 잠시 귀국해서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도 대단한 행운이다. 끝날 때 쯤 4월 발표는 임찬순 목사가 맡고 5월 발표는 내가 맡기로 했다. 3월 부터 5월 까지 매월 발표를 맡은 셈이니, 이래 저래 올 해는 일복이 터진 것 같다.
세미나가 끝난 다음 길건너 롯데 백화점 내의 한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사모님은 기차를 타고 다시 원주로 내려 가시고, 우리들 일행은 그곳 커피 샵에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그 와중에 최은경 선생과 나는 <에세이철학회> 사이트 설명을 열심히 하면서 즉석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시겠다는 정회원 두 분을 등록시켰다. 남은 두 분도 곧 가입 후 칼럼을 쓰시겠다고 했다. 나는 평소 사람을 만나는 것은 길을 걷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없던 길도 생기고, 나쁜 사람을 만나면 있던 길도 없어진다는게 나의 지론이다. 어제는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좋은 길들을 열 수 있을 것 같다는 좋은 느낌을 받았다. 참으로 반갑고 기쁜 경험을 했다. 새벽에 일어나 이런 소회를 몇 자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