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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어떤 곳일까?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7 20:44:03

고대 당나라의 장안부터 로마까지의 직선거리는 9,000Km이지만, 실제로는 12,000Km에 달하는 장대한 길이다. 하루에 30-40Km를 가는 낙타를 타고 1년 이상 걸리는 거리다. 몽골시대에는 촘촘하게 짜인 역참제를 이용해 유럽에서 북경까지 3개월에 주파했다고 한다. 과거의 동서양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글로벌한 세계였다.

키르기스스탄 천산산맥과 실크로드,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이 길을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간 법현과 현장법사, 왕오천축국전의 혜초 등 동양인뿐만 아니라, 마르코폴로, 이븐 바투타와 같은 이름난 여행가들이 지나갔다. 또한 이 길에는 다리우스 2세, 알렉산드로스, 칭기즈칸, 티무르 같은 영웅들의 흔적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다.


실크로드는 중앙에 있는 파미르고원을 중심으로 좌우에 타클라마칸 사막과 키질쿰 사막 등 큰 사막들을 횡단하는 길이어서 낙타를 이용한 카라반 대상이 주로 활동했다. 장안에서 비단을 산 소그드 상인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파미르 고원을 지나 사마르칸트, 부하라에서 비단을 팔았다. 아랍상인들이 바그다드를 거쳐, 콘스탄티노플로 향했다. 그들이 가져간 물건은 로마 등 지중해 각지로 팔려나갔을 것이다. 


마치 이렇게 이동하니 현대판 실크로드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불편하기도 이를데 없고 장사를 하기 위한 짐들이 엄청난 수레와 낙타, 말들을 대동케했다. 잠도 말이나 낙타 위에서 설잠을 잤을 것이다. 과거 중국 비단이 로마에 도착하면 수익률이 1만%에 이르렀다고 하니, 사막의 뜨거운 열기와 모래폭풍, 강도들로부터 목숨을 걸고 실크로드를 횡단할 가치가 있었다.


B.C 3000년 전부터 중국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비단은 그 제조방법을 누설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는 국가적인 첨단산업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로마제국이 막대한 금, 은 화폐가 비단수입으로 빠져나가서 국가재정이 파탄됐다는 얘기도 있다.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지배한 페르시아가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비단 등의 교역을 조절하여 경제적 이득을 얻기도 했다고 한다.


저성장의 시대, 특히 신분 이동의 제한이 심했던 시절, 열정과 꿈이 있는 사람들은 상인이 되었을 것이다. 실크로드의 대상들은 요즘 시대로 치면 벤처기업인이었던 것이다. 목숨을 걸고 수십 배, 수백 배 장사를 노리며 실크로드를 오가면서 문명교류를 만들어냈다. 보통 200-300마리의 낙타로 한 카라반이 편성되고 그 중 4분의 3 정도는 교역품을, 나머지는 식량과 물 등을 실었다. 기록에 남은 최대의 카라반은 낙타만 10,000마리였다 하니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의 규모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카라반의 우두머리는 길이 없는 사막에서 별을 보고 길을 찾아야 했으며, 미세한 발자취를 찾아내 길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했다. 또한 여러 언어를 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우물과 오아시스의 위치도 잘 알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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