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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혁명이 3차례 감행되었어도 정치권은 여전히 그대로인 키르기스스탄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7 20:57:39

키르기스스탄의 야당 대표인 쿠르만베크 바키예프(Курманбек Бакиев)가 2005년 대통령에 당선하면서 튤립 시위는 성공했다. 처음으로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결정했지만 그 후가 문제였다. 다른 인근 국가들처럼 독재가 비운 자리를 다시 독재가 채웠다. 바키예프 대통령은 집권 초기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했다. 하지만 서서히 언론과 야당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키르기스스탄의 색깔혁명인 튤립시위의 현장,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키르기스스탄 국민은 실망했다. 거기다 공공요금과 물가가 미친 듯이 오르는 등 정부가 경제정책에 난맥상을 보이자 국민의 불만은 다시 커졌다. 키르기스스탄의 한 언론인은 “국민은 배신감을 느꼈다. 혁명은 국민이 했는데 바키예프 대통령은 그 열매만 따먹으려 했다. 이미 한 번 대통령을 바꿨던 국민은 다시 바꾸고 싶어 했다(Эл өзүн чыккынчылык сезди. Революцияны эл жасаган, бирок президент Бакиев анын үзүрүн көрүүнү гана көздөгөн. Буга чейин президентти бир жолу алмаштырган эл кайра өзгөрткүсү келген.)”라고 말했다. 결국 ‘2차 튤립시위’가 발생했는데, 이 때는 불행하게도 많은 피를 흘렸다. 


2010년 4월, 수도 비슈케크에 반정부 시위대 3000~5000명이 모였다. 이들은 대통령 청사로 행진했고 경찰이 최루탄과 고무탄을 발사하며 진압에 나섰다. 키르기스스탄 보건부는 이 때 47명이 사망하고 4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야당은 최소 100여 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바키예프 대통령은 소형 비행기를 타고 수행원들과 수도 비슈케크를 탈출해 고향인 남부 도시 오시로 향했다. 야권은 의회를 해산하고 과도정부를 구성했다. 새로운 과도정부 수반은 로자 오툰바예바 사회민주당(SDP) 대표였다. 


그녀는 바키예프와 함께 1차 튤립 시위를 이끈 영웅이었다. 그녀는 기자회견장에 항상 노란색 튤립 모양의 브로치를 꽂고 나와 자신이 혁명의 중심에 있음을 과시했다. 바키예프는 수도를 비운 지 열흘 만에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부인과 두 자녀만 데리고 카자흐스탄으로 도주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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