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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의 시신 도난 사건의 전말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7 21:49:46

알렉산더는 B.C 323년 6월, 33세 나이로 세상과 사망했다. 마케도니아로 돌아가자던 장군들의 요청을 물리치고 다음 정복 대상을 고려하던 중  바빌론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알렉산더의 사인은 현재까지도 독살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알렉산더의 서자에 의해 헬레니즘 대제국이 이어지는 듯했지만, 결국 광활한 알렉산더 정복지는 4명의 장군에 의해 4개 지역으로 나눠진다.

Alexander Sarcophagus, Istanbul Archaeological Museums 2024,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1)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왕국 

2) 소아시아와 트라키아의 리디아 왕국

3)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의 셀레우코스 왕국

4)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는 프톨레마이오스 왕국


이 헬레니즘의 4개국 모두 자신이 차지한 왕국의 정통성을 모두 알렉산더와 연결했다. 물론 이와 같은 정통성의 핵심은 유해다. 죽은 알렉산더의 시신을 가진 인물이 알렉산더의 정통 후계자로 인정받는다. 알렉산더 유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서로 간의 전쟁과 정치적, 외교적 술수가 난무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알렉산더는 고향인 마케도니아에 묻히는 것이 순리다. 아버지 필립 2세가 묻힌 마케도니아 아이가이(Aegae)가 그의 유해의 최종 목적지다. 4왕국의 합의로 알렉산더의 유해는 바빌론에서 아이가이로 이동된다. 그런데 도중에 알렉산더 유해의 도난 사건이 발생한다.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을 차지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이 도난 사건의 진범이다. 그 과정에서 바빌론을 지배한 셀레우코스와 충돌한다. 알렉산더 시신 도난 사건을 계기로 이후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 사이에 끝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더의 시신을 나일 강 중류 멤피스로 옮긴다. 이후 지중해로 통하는 나일 강 하류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장지로 정한다. 알렉산드리아는 오늘날 고대 7대 불가사의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도시다. 대규모 도서관과 초고층 파로스 등대는 번영의 상징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대규모 사원을 건설한 뒤 자신의 유물과 알렉산더 무덤을 동격으로 전시하면서 신격화했다.


알렉산더의 시신을 도적질한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더를 가장 위대한 파라오로 선포하고 스스로 그의 뒤를 승계했음을 알린다. 그 때문일까?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는 알렉산더 사후, 4개 왕국 가운데 가장 오래갔다.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에 의해 멸망된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마지막 여왕이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클레오파트라 이집트를 멸망시킨 뒤 알렉산더의  무덤을 참배한다. 


당시 이집트 고위 관료는 아우구스투스에게 ‘프톨레마이오스 무덤도 보겠느냐’고 물었다 한다. 그러자 아우구스투스의 답은 간단했다. “나는 공동묘지에 들린 것이 아니다. 영웅 알렉산더를 만나기 위해 왔다.” 알렉산더에 대한 로마인들의 남다른 자세는 종신 독재자 카이사르의 행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카이사르는 “알렉산더는 내 나이에 그토록 많은 나라를 정복했는데, 나는 이 나이까지 기억에 남을 일을 한 것이 없다”며 알렉산더 흉상 앞에서 눈물 흘리기도 했다.


알렉산더 시신은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를 지키는 헬레니즘 제국 절대적 계승 가문이라는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됐다. 그러나 대제국 로마가 들어서면서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알렉산더 신전은 로마 제국 역시 헬레니즘 정통성 계승의 상징으로 변해간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헬레니즘 계승성은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와 비교할 때 크게 다른 부분이 있다. 


카이사르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알렉산더와 동격으로 취급하면서 정통성을 다지는 형식의 정통성 확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프톨레마이오스를 빛내기 위한 계승자의 수단으로써 알렉산더가 아닌, 로마 전체의 영광과 함께 가는 목적성을 지닌 계승 정당성 확보에 있었다. 황제 스스로가 신으로 추앙되던 시대가 로마 제국의 시대이다. 알렉산더 권위와는 별개로, 자신만의 색깔 만들기에 전력한 나라였던 것이다. 


존경과 기억으로서의 정통성 계승 정치는 존재하지만, 자신들만의 정치와 권위 그리고 정통성에 집착했던 국가가 로마 제국이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존경한 알렉산더의 무덤은 이후 로마 황제나 지도자들의 필수로 방문하는 성지로 떠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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