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최초의 철기 문명을 이끌었던 히타이트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7 21:54:18

히타이트인들이 최초로 철기를 만들었다고는 해도, 당시에는 아직 철의 이용은 초보적인 단계였기 때문에 히타이트도 철기를 마구마구 찍어낼 수는 없었다. 용광로에서 철을 녹일 정도로 온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산소를 공급할 풀무가 필요한데, 당시 히타이트에는 풀무가 없었다. 때문에 히타이트 문명은 풀무의 역할을 자연의 바람으로 대체하였다. 

히타이트 시대  철을 제련하는 제련소,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 페이스북


특정한 시기에 하투샤 부근의 황야에 맹렬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히타이트인은 바로 이 시기에 황야에 용광로를 설치하고 맹렬한 황야의 바람을 풀무 대용으로 써서 용광로가 철을 녹일 수 있는 높은 온도를 가까스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히타이트의 신(神)들은, 곧 바람과 동일시되어 표현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바다 민족'이라고 불리던 해양 민족들(성경의 블레셋 등 / 페니키아인)의 등장으로 철기가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넓게 퍼져나갔다고 한다. 이들의 등장으로 인해서 무역로가 끊기고 문명이 파괴되어, 비싼 청동기는 만들기 힘들고 값싼 철기가 널리 퍼져나갔다고 한다. 즉 철기가 널리 퍼진 건, 바다 민족의 침공 때문에 청동기를 만들기 힘들어진 히타이트 사람들이 철기를 더 많이 사용하면서 퍼졌다는 뜻이다. 


히타이트어는 인도유럽어족으로 분류되는 언어들 중 사멸된 고전어를 포함해서 해독된 가장 오래된 언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원시인구어(인도-유럽어족)를 재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 역할을 한다. 히타이트어의 가장 큰 특징은  명사의 성 구분, 동사의 접속법이나 기원법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히타이트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은 그들의 정치체계와 법률이다. 히타이트의 정치체계는 타바르나(Tabarna, 왕), 타와난나(Tawanana, 대왕비), 판쿠(Panku, 귀족회의) 세 주체에 권력이 분산되어 있어서 상호 견제하게 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타바르나의 여성형인 타와난나는 대왕비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지만, 왕비와 타와난나는 별개의 지위였고 왕의 정비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타와난나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타와난나는 여제사장 겸 왕비였고, 왕위가 아들에게 계승되고 나면, 왕의 어머니로서 권한을 행사했다. 이 티완난나(대왕비)의 존재는 왕위를 둘러싼 권력다툼에 막기 위한 것이었다.

















0
유니세프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