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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계의 분화와 돌궐 제국 및 위구르, 셀주크로 변천 과정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7 21:56:29

돌궐 제2제국의 패망 이후 한쪽 분파는 위구르로 변화하는 과정이 진행되었으나 서돌궐의 분파는 오우즈와 오구즈 계통의 민족들이 이합집산을 하고 있었다. 모리야쓰 다카오(森安孝夫)와 코마츠 히사오(小松久男)의 일본 투르크 연구자들은 오우즈, 오구즈의 민족들이 돌궐 제2 제국의 패망에서 그 연맹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이전의 오우즈, 오구즈는 세키즈(Sekiz 터키어 숫자로 8, 도쿠즈(Dokuz 터키어 숫자로 9), 온(On, 터키어 숫자로 10) 등으로 부족들이 늘어나고 변화하면서 기존의 돌궐 제국으로부터 독립된 개체로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제2 돌궐제국 퀼테긴 카간의 두상,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그리고 그러한 정의가 1972년에 국제학계에서 정식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오우즈, 오구즈 연합들의 생성은 돌궐 제2제국의 패망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가장 중점적인 부분은 돌궐 제2제국에 속해 있던 오우즈(Oğuz)가 카파간 카간에게 반기를 들면서 오우즈에 속해 있던 셀주크 가(家)를 비롯한 각 오우즈의 가문들이 돌궐에서 이탈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715년 아즈(Aze)족에 이어 이즈길(E, zgil)이 반란을 도모했고 카파간 카간은 이를 진압하였으나 이어 오우즈 가문이 헤라트(Helat) 인근에서 반란을 도모했다.오우즈는 일테리쉬 카간과 함께 돌궐 제2제국의 복국(復國)에 가장 크게 일조한 가문이었다. 


오우즈는 본래 돌궐의 가문으로 알려졌으나 오우즈 가문에 대해 연구한 스튜어트 제임스(Stuart James)의 주장에 따르면 거란과 키르기스의 혼혈로 모계가 거란인으로 조사되었다. 거란인과 키르기스인의 혼혈이라는 것은 돌궐의 직접적인 혈통은 아니었으나 돌궐 제2제국을 건국하는 것에 협조했다는 것은 오우즈 가문이 당나라에 대한 적개심이 심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우즈가 전형적인 돌궐인과 혈통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언어학적인 부분에서도 일갈하고 있는데 오우즈가 사용하는 언어의 음운 형태가 기존의 투르크어가 아닌 거란어에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거란인들의 언어적 특성은 서방적 언어가 가미된 투르크어보다는 오히려 현재의 만주어와 발음형태와 음운 형태가 유사하다. 


서방식 언어인 투르크가 아닌 동방식 언어를 쓰고 있는 가문인 것이다. 현재 오우즈가 투르크 계로 분류된 이유는 돌궐 제2제국을 배신했어도 이후에도 돌궐인과 행동을 함께 했고 오히려 이들에게 돌궐인들이 부족들과 같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오우즈가 투르크와 함께 함에 따라 키르기스인들 모두가 투르크 계통으로 편입된 것이다. 오우즈의 반기는 돌궐 제국의 중심 세력으로 참여했던 부족 사이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묵철가한이 전시 중에 암살되자 제국의 안정과 결속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부분에서 돌궐에 예속되어 있던 위구르 집단과 소그드 집단이 이탈했고 돌궐 제2제국은 붕괴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특히 오우즈의 반란이 돌궐인에게 준 충격은, 오르혼 비문에 다음과 같은 구절로 안타까움을 시사하고 있다. 


“도쿠즈 오우즈 부족은 바로 우리의 부족인데, 하늘과 땅이 서로 섞이니 우리의 적이 되었구나.”


714년 가을에 시작된 오우즈족의 반란은 돌궐의 통치력에 한계를 주어, 트렌스옥시아나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의 서부 지대가 제국의 권역 밖으로 이탈되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715년 오우즈 반란 세력들은 톤유쿡(Tonyoucuk)에 의해 거의 평정되었으나 많은 오우즈 부족이 물자를 가지고 당나라 영토로 잠입해갔다. 톤유쿡의 대공세로 인하여 오우즈 부족 일부는 서방 이란 지역으로 들어가 소그드와 합류했다. 716년에는 앞서 서술했던 것과 같이 묵철가한이 암살되면서 돌궐 제국이 붕괴되는 해였다. 묵철가한은 오우즈 토벌에서 돌아오던 중 오우즈 부족에 속한 바이르쿠(Baircu)족의 계략으로 인하여 진중에 들어서는 도중 살해되었다. 


바이르쿠 씨족은 당나라와의 모종의 계획을 세웠으며 이러한 전략을 전혀 모르고 있던 묵철가한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결과가 되었다. 오우즈 가문이 전체적으로 묵철가한을 배신할 수 있었던 것은 카파간 카간이 오우즈 가문을 학대한 것이 발단이었다. 스튜어트 제임스(Stuart James)는 이러한 오우즈의 배신의 원인을 대대적인 오우즈 가문에 대한 탄압으로 보았다. 묵철가한의 아들인 이넬(Inel)이 오우즈가 다스리던 헤라트와 사마르칸트 지역을 통치하면서 오우즈 가문의 여성들을 모두 생포해갔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여자가 부족해 더 이상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없었던 오우즈 가문의 대대적인 반발을 사게 되었고 이러한 반발을 이넬은 무력으로 탄압했다. 그러한 원인으로 인하여 오우즈는 묵철가한에 대한 원한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묵철가한의 머리는 참수되어, 당나라의 사신 호영전(郝靈佺)에 의해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 보내졌다. 묵철가한에 이어 아들 이넬(Inel)이 카간을 계승했다. 그러나 이넬은 극도의 혼란과 무질서 속의 돌궐 제국을 안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우즈 가문 반란은 더욱 거세졌고, 돌궐 백성들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강력한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었다. 혼란을 평정하는 실제적인 역할이 일테리쉬의 아들들인 빌게(Billge)와 퀼테긴(Qiltegin)에게 주어졌다. 716년, 퀼테긴은 빌게와 함께 5차례의 오우즈 원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 해 심각한 가뭄이 들어 목축 자원이 고갈되었다. 그리고 오우즈의 역공세도 차츰 강화되어 제국의 중심지인 외튀켄(Weytigen)이 대대적인 오우즈의 공세에 놓이게 되었다.


오우즈는 도쿠즈 타타르(Dokuz Tatar)족과 연합하여 돌궐을 공격했으나 퀼테긴에게 패배하여 당나라 영내로 도주했다. 그러나 돌궐군은 오우즈의 계속되는 공세와 내란으로 인하여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었다. 돌궐 백성들은 혼란과 기근의 원인을 카간의 권위를 텡그리가 회수해 갔기 때문으로 믿고 있었고 이를 계기로 하여 카간의 교체를 위한 내외적인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 때 국가의 실제적 통치자인 빌게와 퀼테긴 두 형제가 왕위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카간의 계승 혁명에 반대하는 이넬 카간과 형제, 친척, 그의 신하와 추종자들은 무자비하게 제거되었다. 그리고 톤유쿡을 재상으로 한 새로운 정권이 탄생되었다.


오우즈는 톤유쿡을 기습하여 투르크 세계를 지배하려 들었으나 톤유쿡은 오우즈를 빌케(Billce)계곡으로 유인하여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주었다. 오우즈는 톤유쿡에게 패배하여 일부 씨족은 당나라로 들어가 귀순했고 일부는 이란 지역으로, 다른 일부는 압바스 왕조에 투항하여 톤유쿡의 대대적인 공세를 피했다. 톤유쿡은 오우즈를 격파한 이후, 퀼테긴 카간의 통치체제를 확고히 했다. 톤유쿡으로 인하여 돌궐 제2제국의 정세는 빠르게 안정되었고 전체적으로 성숙되어졌다. 돌궐이 안정을 찾을 무렵, 이란 지역으로 도주했던 오우즈의 일부 세력이 발하슈 호 북서 지방의 초원 지대에 정착했다. 이 때 오우즈의 민족을 구즈(Ghuz)라 하였는데 훗날 투르크 계 유목민족으로 셀주크투르크 이후에 활약한 유목민족인 오구즈(Oghuz)를 표현한 민족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셀주크 가(家)도 오구즈의 일원인 것으로 볼 때 오구즈는 해체된 오우즈를 승계했다고 보는 것도 일반화적인 연구 방법이다. 이러한 오우즈의 패잔병들을 수습하여 발하슈 호 북서 지방의 초원 지대로 인도했던 인물이 오구즈 칸이기 때문에 이 민족을 오구즈라 부르기도 한다는 견해도 존재했다. 10세기 아랍 역사 지리서인『세계의 경계(Hudud al-Alam)』는 오우즈 족을 구즈(Ghuz)로 표기하면서 발하슈 호 북서 지방의 초원 지대에 기거하던 종족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오우즈는 무슬림에 속하지 않고 돌궐에 속한 별도의 기마민족으로 인식했다. Golden, Peter는 돌궐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오우즈와 오구즈의 구별 및 오구즈에게서 셀주크와 오스만 가(家)의 분리에 대해서 오구즈는 톤유쿡에 의해 해체된 오우즈의 적통을 승계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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