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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에서 50년 동안 철권 통치한 카부스 빈 사이드 알 사이드(Qābūs bin Sa’īd Āl Sa’īd, 1940~2020, 재위 : 1970~2020)의 6년 전인 2020년초, 사망과 관련하여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7 21:58:33

故 카부스 빈 사이드 술탄은 오만 이맘 술탄국의 14대 술탄으로 오만에서 대대로 술탄을 배출한 명문가인 알 사이드(Al Said) 가문 출신이다. 내가 작년에 갔을 때만 해도 지병은 있었지만 사망까지 이를 정도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다. 2019년 6월 11일, 오만 국영방송인 Oman Al-Zajira TV에도 나와서 연설하고 줄곧 지병이 회복된 것으로 보였던 그가 2020년 1월 10일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80세를 일기로 결국 사망했다. 

오만 국왕 카부스 빈 사이드 알 사이드(Qābūs bin Sa’īd Āl Sa’īd, 1940~2020, 재위 : 1970~2020)의 장례식, 출처 : Al Jazeera


알 사이드(Al Said) 가문은 18세기부터 이어온 오만 이맘 술탄국의 술탄을 계속해서 역임했던 왕가다. 알 사이드 가문은 원래 카리지트(Karijit) 파 이맘들의 수장을 역임했었고 그 기원은 무함마드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카리지트파는 제4대 칼리파인 알리 진영에 속했었던 시이파 계통 하와리즈파의 계통 중 하나였으나, 알리와 무아위야 간의 칼리프 계승문제가 협상에 의해 결정되려는 것을 반대하여 하와리즈파와 힘께 알리 진영을 떠났던 가문이다. 그들은 이로 인하여 이슬람 세계를 이탈한 반역자의 취급을 받았고 이러한 하와리즈 파와 카리지트 파는 수니와 시아 어느 측에도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철저히 고립되었다. 하와리즈파는 오늘날 쿠웨이트와 바스라, 아바단 일대에 집단 거주했으며 카리지트파는 아라비아 반도 측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 오늘날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지에서 집단 거주하게 된다. 이것이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가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이슬람 국가의 토대를 만드는 원형이 되었다. 


카리지트파는 칼리프 제위를 논하는 문제는 단순한 협상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알라 신 만이 결정하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카리지트파는 한 때 하와리즈파와 함께 이슬람 재야 세력의 중심 세력을 이루었으나, 너무 노골적으로 이슬람 제국의 와해를 도모하였던 것, 그리고 극도의 평등사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내부의 분열과 무질서가 난무하게 되면서 이슬람 종파 내의 개혁은 실패하게 된다. 이들은 7세기 말과 8세기 초에 그들의 세력을 상실하게 되었는데, 이는 우마이야 왕조의 말기, 압바스 가문이 창설되어 내전이 발생하게 되었기 때문으로 카리지트파가 이와 관계된 것이 확인되었다.


8세기 압바스 왕조에 위협을 받은 카리지트 파의 이맘 시칸데르(Shkahnder)는 카리지트파 내부의 소규모 집단인 이바드 파를 기본대형으로 하는 이전의 전투 방식을 개선하여 보다 종교적인 종파를 초월해 대규모 아랍 종족 집단과 일부 소말리아 일대와 예멘 지역에서 살고 있던 구스(Ghus) 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다종족 전투 대형을 만들게 된다. 이후 카리지트나 이바드파의 상징이 되는 은빛 단검의 칸자르(Khanjar)가 등장하는 것도 이 시기이다. 카리지트를 위협하던 압바스 왕조를 두 번의 결정적인 승리로 전멸시킨 시칸데르는 일약 카리지트 파와 이들이 중심된 이바드파에서 동부 아라비아 지역의 강력한 이맘으로 즉위하였다. 시칸데르는 자신을 중심으로 한 이바드파와 군세를 바탕으로 동부와 남부 아라비아 일대에서 독재적 권력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오만 알 사이드 가문과 그 역사가 시작되는 배경이다. 


이후 이들은 해상 실크로드로 향하는 무역 거점인 살랄라 지역을 중심으로 대단한 거상(巨商)이 되었다. 그리고 포르투갈, 영국의 지배를 받았음에도 그들은 열강들의 보호를 받으며 20세기에 이르게 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때는 중립을 지켰지만 당시 오만의 술탄이었던 사이드 빈 타이무르(Said Bin Taimur)는 이란의 팔레비 왕가와 손잡고 대단한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터진 도파르 내전(Dhofar Rebellion, 1962~1975)은 친이란파의 사이드 빈 타이무르(Said Bin Taimur)의 전제정치를 굳히게 한 대사건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카부스 빈 사이드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영국의 샌드허스트 왕립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 종합군사학원(Missouri Military Academy)을 졸업한 전형적인 유학파 엘리트였다. 아버지의 보수적인 이슬람 성향을 평소에도 못마땅하게 여겼던 카부스 빈 사이드는 1970년 7월 23일, 영국의 지원을 받아 궁 안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를 숙청하고 자신이 술탄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궁중 쿠데타가 무혈 쿠데타라는 것이고 비록 아버지인 사이드 타이무르가 정권을 넘겨주긴 했지만 비교적 평화로운 정권이양이었다는 것에서 중동 사회의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오만의 모든 국가 관련 권한과 실권은 오직 카부스 빈 사이드가 가지고 있었던 전제왕권이었기 때문에 카부스 빈 사이드는 적극적으로 개방정책에 열을 올렸다. 가장 먼저 오만은 이슬람 신정체제를 폐지했다. 본인이 이맘들의 수장이지만 타 종교를 인정함으로써 기독교와 유태교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리고 1971년에는 오만을 유엔에 가입시키는 한편, 이바드파의 관념에 근거하는 이슬람적 전통을 대부분 폐지시켰으며 여성들을 의무로 학교를 다니게끔 했다. 서구 사회에 대해 온건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기존에 부친이 가지고 있던 친이란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 친서방주의로 변신했다. 


서방의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으며 여행자들도 무비자 30일을 부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오만의 개혁을 추구했다. 석유 유전을 개발하고 천연가스 수송관까지 걸프만을 통해 연결함으로써 오만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중동의 국가들 중 5번째로 GDP가 높은 국가가 되었다. 오만이 잘 살게 된 것은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의 개발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또한 지도자의 역량이다. 기본이 뒷받침되었어도 이를 과감한 리더쉽으로 활용하는 것과 있으면서도 쓰지 못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비록 카부스 빈 사이드 술탄은 50년 동안 철권 통치를 했지만 국토의 8할이 사막 뿐인 오만을 일약 경제 대국으로 올려놓았다. 


나는 카부스 빈 사이드 술탄의 이러한 리더쉽이 보편적으로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폐쇄성이 짙은 중동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던 위인으로 보고 있다. 그의 과감한 추진성과 의지, 그리고 기본적으로 갖춰진 자원의 활용과 개방적인 외교.. 교육 제도의 보편화 등은 분명 현대 중동사에 있어 그의 큰 업적이다. 슬하의 자식은 없지만 그와 스타일이 비슷한 사촌동생인 하이탐 빈 타리크(Haitham bin Tāriq)가 술탄이 되었다는 것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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