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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과 게르만 계통 민족과의 전쟁사 - 토이토부르크 비극의 서막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7 22:05:29

서기 4년, 로마의 장군이며 후일 로마의 황제로 즉위한 티베리우스가 게르마니아에 진입하여 하위 그룹 게르마니아의 카나네파테스(Kananepates) 족과 베저(Beger) 강 상류의 카티(Kati) 족, 토이토부르크 숲 남쪽의 브루크테리(Brukteri) 족을 복종시켰다. 세 부족을 정복한 티베리우스는 베저 강을 건너 돌아가면서 라인 강 서안에 이르렀고 이 일대 부족들의 주거지들을 모두 불태웠다. 특히 이 당시 이 일대의 소수 부족들을 지배하고 있던 수에비 소속의 부족인 마르코만니(Marcomani) 족 군장 마로보두스(Marbodus)가 강한 불만을 품게 되고 급기야 라인 강을 건너 오늘날의 스트라스부르에 자리한 로마 군영을 습격해 약탈하고 돌아갔다. 

게르만 계통 민족의 분포도,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서기 6년 초, 총독 대리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우스(Gaius Sentius Saturnius)와 집정관 총독 대리인 마르쿠스 아에밀리우스 레피두스(Marcus Aemilius Repidus)가 중, 보병 65,000 명, 1만~2만의 기마병, 궁수, 민간인 1만~2만 명으로 이루어진, 13개 군단 10만 여명의 대군을 이끌고 수에비 소속 부족인 마르코만니족 군장 마로보두스를 공격했다. 그러나 B.C 9년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Nero Claudius Drusus)가 이전에  프랑케에서 마르코만니 족을 격퇴한 이후 이들은 보이 족의 영토로 도주하여 헤르문두리(Hermunduri)족, 쿠아디(Cuadi)족, 셈노네스(Semnones)족, 루기(Rugi)족, 주미(Zumi)족, 부토네스(Butones)족, 무길로네스(Mugilones)족, 시비니(Sibini)족, 랑고바르드(Langobard)족과 동맹을 맺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후 서기 6년, 게르마니아의 로마군 통수권이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Puvlius Qinctilius Barus)에게 넘어갔다. 바루스는 황실과 인연이 있는 파트리키아(Patricia) 가문 출신으로 행정 관료 직에 있으면서 상당한 경력을 쌓은 고위 귀족이었다. 같은 해 가을, 신설된 게르마니아 속주의 총독으로 바루스가 부임하게 된다. 그러나 전문 군인이 아닌 행정 관료 직위에 있었던 인물이 최전선에 배치된 것은 당시 로마의 인선이 실수한 듯이 보인다.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는 게르마니아와의 일전보다 내부의 안정을 더욱 중요시하게 여기고 있었다. 우선 내전을 평정한 이후, 내전으로 혼란에 직면한 로마를 안정시키고 국력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선의 행정직의 총독이 게르마니아 속주에 대한 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그가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일리리쿰(Ililicum) 속주에서 일리리아 대 반란이 발생했다. 그들 일리리아 반란을 주도한 주요 부족장들은 다에시티아테스(Daesitiates) 부족의 바토(Bato), 브레우키(Breuki) 부족 바토(Bato), 판노니아 부족 핀네스(Pannes)가 반란 지도자였고 마르코만니 족 잔당 일부가 가담했다. 이  반란은 거의 4년 동안 지속되었다. 티베리우스는 일리리쿰의 반란을 진압하였기 때문에 게르만 족을 더 이상 공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게르만 세력이 더 강화되고 집단적으로 로마에 저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티베리우스는 마로보두스를 마르코만니의 왕으로 인정해 한 뒤 발칸반도로 아우구스투스 제8 군단, 아폴로 제15군단, 발레리아 제20군단, 약탈의 대명사로 알려진 제21군단, 쌍둥이 제13, 14군단, 갈리아 제16군단, 그리고 어느 군단인지 불확실한 군단 1개를 반란 진압을 위해 파견했다. 


지속적인 멸시와 식량 부족, 높은 세금, 로마 세금 징수 관들의 학대에 폭발한 일리리아 족의 대반란으로 인해 로마의 모든 군단 중 절반가량의 부대와 그 지휘관인 티베리우스, 그리고 그리스 함대를 움직이는 게르마니쿠스(Germanicus)가 발칸 반도에 고립되었다. 이러한 대규모 군단 동원으로 인해 게르마니아의 황제 대리 법무관 대행으로 부임한 바루스에게는 불과 3개 군단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로마의 향후 역사를 결정지은 치명적 요인으로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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