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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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서유럽, 로마 공화정 시대에 최고 용맹을 갖춘 기병대는 중앙아시아의 스키타이나 사르마트의 기병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북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유목 기병대인 누미디아 기병대였다. 누미디아 기병들은 고대 카르타고가 애용하였던 누미디아 지역 고유의 경기병대로, 주로 용병으로 활약하였다. 오래 전부터 카르타고의 주력 용병대로 운용되었으며 특히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의 원정에 동행하여 큰 활약을 보여주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그 후 자마 전투와 유구르타 전쟁,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 다키아 전쟁 시기까지도 모습을 보였다. 당대 지중해 세계 전체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승마술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 북아프리카 누미디아 기병대 삽화,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그들은 기본적으로 경기병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경기병들 중에서도 상당히 극단적인 경기병이라 할 수 있었는데, 당대에도 흔하던 흉갑도 대부분 착용하지 않았다. 보통 튜닉 정도만 착용하고, 왼손에는 가죽 방패와 투창 2~3자루를 들고 오른손으로 투창을 꺼내어 던지는 수준이었다. 허리에는 짧은 칼인 단검을 소지하였으나 이는 최악의 상황에서 적 기병과의 접전 시, 호위를 위한 것이었고 주도적인 근접전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당시 기술 때문에 안장만 갖추었고 등자는 없었다. 또 재갈을 물리지 않아 말고삐가 없었다. 말 목에 밧줄을 한번 감아 돌려 말고삐처럼 사용하기도 했지만 주로 다리로 신호를 주거나 작은 채찍을 이용해 말을 몰았다.
누미디아 기병은 극단적인 경장과 뛰어난 승마술로 인해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 능력을 활용해 적 보병이나 기병에게 빠른 속도로 접근하여 투창을 던졌다. 투창은 고유한 무게로 인해 많은 소지가 어렵고 사거리가 짧은 대신 몸 어디를 맞추더라도 전투 불능을 만들기 쉬웠기 때문이다. 누미디아 기병들은 기동력을 이용해 강력한 투창을 빠르게, 많이 투사했고 그러다가 적의 보병이나 기병이 대처를 위해 접근하면 누미디아 기병은 전속력으로 철수했다. 이 때 추격하는 적에게 뒤돌아 투창을 던져 전의를 상실시키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전술을 통해, 그들은 궁극적으로 적을 교란하거나 유인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또한 적이 패주할 때는 호신용 검을 꺼내 기동력을 살려 적극적으로 추격하면서 전과를 확대했다.
이들이 언제 나타났는 지에 대해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은데, 누미디아라는 나라의 민족 자체가 사하라 사막 유목민인 베르베르인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따로 고안이 되었다던지 혹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부대가 아닌, 베르베르인으로써 베르베르 유목민 고유의 전투 방식과 장비를 갖춘 용병 부대일 것으로 추측된다. 누미디아는 오랜 기간 동안 카르타고의 세력권 내에 있었고 누미디아 보병과 기병은 카르타고군의 전쟁에 자주 징발되거나 고용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것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제2차 포에니 전쟁이었다. 이는 속칭 한니발 전쟁에서 기원하고 있다. 트레비아(Trevia) 전투에서, 이들은 로마군을 기습하여 로마군을 적극적으로 자극해 한니발의 계략에 걸리게 하였고, 로마 벨리테스(Belites)들을 자극해 이들의 투창을 소모시켰다. 트라시메누스(Trasimenus) 호수 전투에서는 플리미니우스(Fliminius)의 로마군을 매복진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맡았다.
그 유명한 칸네 전투에서는 우익에서 집정관 바로가 이끄는 동맹시 기병 4,800기와 접전을 벌여 이들을 성공적으로 견제했고 로마군은 여기서 기병을 완전히 상실해 보병이 함정에 빠지는 와중에도 카르타고군 배후를 공격할 수 없었다. 자마 전투에서는 로마군과 카르타고군 양군에 모두 배치되어 있었는데, 로마군 측이 좀 더 질적 우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카르타고군 기병이 코끼리에 마비된 사이, 로마 기병은 카르타고 기병을 궤멸시켰고 여기서도 누미디아 기병은 큰 축을 차지했다. 후에 다키아 전쟁 때까지 로마의 주요한 보조병으로 운용되었다. 이들을 카르타고와 로마 양국에서 애용 받는 강력한 용병으로 만든 가장 큰 요소는 승마술에 있었다. 이들은 궁기병이 없었던 지중해 서부에서 제대로 된 스웜 전술(Swarm Tactics)을 구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병대였다.
초고속으로 적진에 붙어 강력한 투창을 마구 던지고 적들이 기동하기 전에 신속히 빠지는 전술을 로마군과 카르타고 양군에 상당히 유효했다. 이와 같은 특징으로 인해 정찰, 견제에서 큰 역할을 했고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는 전과 확대 과정에서도 크게 활약했다. 하지만 이들의 결정적 약점은 근접전이었다. 빠른 기동성을 위해 갑옷은 물론 기본적인 방호구도 착용하지 않고 오직 가죽 방패 하나만 들고 있던 누미디아 기병은 적이 접근했을 때는 저항이 매우 어려웠다. 자마 전투에서의 카르타고군 누미디아 기병도 코끼리의 난동으로 기동성이 사라지게 되자 로마군이 돌격해 왔기 때문에 근접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궤멸당했다. 결국 스웜 전술을 제대로 펼 수 있는지, 기동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효용성의 편차가 매우 큰 부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