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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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되르벤 일테베르가 통치하는 바스밀의 세력이 우세하여 지배하는 시기에 우(右) 야브구의 지위를 확보한 카를룩 부족장은 745년 위구르 제국의 창건자 쿠틀룩 빌게 퀼테긴 시대(Qutluk Bilge Kultegin)에는 좌(左) 야브구가 되어 2인자의 지위까지 확보했다. 물론 카를룩의 야브구인 빌게 베릴(Bilge Beril)은 모든 카를룩의 부족들을 대표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베시발리그(Beshibalig) 지역의 상황을 볼 때 이 지역 카를룩 부족은 툰-빌게(Tun-Bilge)란 자가 별도의 야브구로 통치하고 있었다.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의 한 모스크에서 금요예배를 드리고 있는 위구르족 무슬림들,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단지 외튀켄에 새로 건립된 위구르 왕국은 카를룩의 빌게 베릴이 2인자 야브구에 타림 분지에서 천산 일대까지 지배하는 종족이었으며, 위구르 가한은 오히려 베릴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돌궐이 물러난 투르크계 종족들 중 되르벤 일테베르가 스스로 아사나시(Asanasi)라 주장하며 돌궐 대가한 지위를 승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체적으로 대다수 투르크계 종족들로는 소그디아나(Sogdiana), 또는 소그디아(Sogdia)라고 불리는 고대 아리안계 스키타이들을 부르는 단어인 소그드 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이 사는 도시들의 지배계층은 대다수가 투르크계였다. 오늘날의 중앙아시아의 일부 지역에는 소그드인들이 막대한 재력을 이용하여 스스로 지배계층에 포함된 경우가 있다. 이러한 곳의 대표적인 도시가 사마르칸트와 부하라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옛 돌궐 제국이 지배하던 곳에는 엄연히 철륵 15부의 후예인 투르크계 민족들이 상류계층을 차지했다. 특히 바스밀이 통치하는 외튀켄 지역에는 돌궐 인보다는 서역인과 소그드인들이 절반 가까이 몰려들었다.
이에 대한 외지 인구 과밀 도에 관해서는 돌궐 오르혼 비문 중 퀼테긴 비문에 주로 등장하며, 타리아트 비문에도 많은 외지인에 대한 간략한 서술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바스밀은 이러한 외지인과 타 투르크 부족들, 소그드인과 서역 전체 상인들을 통솔할 역량이 매우 부족했다. 특히 서역 도시 중 쿠차와 호탄은 소그드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독자적인 도시 국가를 선포했는데 바스밀은 이 두 도시의 토벌에 실패하여 그 위세가 추락했다.
게다가 조로아스터교를 주로 숭상하는 페르시아 계통의 종족인 타직인들이 자주 반란을 일으켜 카를룩 종족들이 이들을 통제하는 것에 상당한 군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이러한 부분은 위구르 비문에서 주로 언급하고 있으며, 이는 바스밀이 전체 투르크 부족들을 강력하게 통제하지 못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에 위구르 족의 야브구인 쿠틀룩은 조용히 바스밀이 통치하는 외튀켄 지역의 장악을 준비했다.
당시 바스밀이나 카를룩보다 세력이 더 약했고 두 종족이 중앙아시아의 넓은 지역을 장악하였을 때 위구르는 고작 타림 분지와 서역 36국에 진출하여 그들의 조공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들 서역 상인들에 대한 통치를 적절하게 잘했기 때문에 그들의 절대적이 지지를 얻었고 그를 기반으로 매우 부유한 양의 세금을 받아 강한 군대를 용병으로 사들임과 동시에 청해 지역을 병합함으로써 당나라와의 외교도 탁월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위구르 족은 토번을 제압했고 고선지를 끌어들여 안서도호부의 치소를 수비하는 등, 그 역량을 쌓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