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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과 시야
  • 타라고
  • 등록 2026-04-08 23:45:27
어떤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것이 갖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인과론을 부정하는 데이비드 흄같은 경험주의자들은 사건들을 분리 독립된(discrete) 생생한 인상들(impressions)로만 본다. 때문에 사건들의 간의 연관성이나 인과적 관계들이 있을 수가 없다. 보다 큰 사건일 수록 이렇게 보기가 더 힘들다. 단발적인 인상이나 주관적인 감상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하나의 보편적 의미로 이해하려면 전후 좌우의 관계를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목과 시야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컴컴한 영화관에 들어갔을 때 눈에 보이는 전후 좌후 맥락과 동떨어져서 낱낱의 화면으로만 들어온다. 그런 화면들과 장면들의 맥락이나 스토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당연한 것이다. 잠시 시간이 지나서야 각각의 장면들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보고 알 수 있기 위해서는 경험과 역량(virtus)이 필요한 것이다.


2026년 벽두에 개설한 플랫폼 인문/철학 플랫폼 <에세이철학회>는 한국의 인문/철학계에 큰 화두를 던지는 사건이라 할 수가 있다. 플랫폼이 무엇인가? 그냥 놀 수 있는 판(板)이고, 놀다보니 생기는 장(場)이다. 비슷한 생각이나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놀 수 있고, 좀 더 멋지게 놀 수 있도록 만든 마당과 같은 곳이다. 이곳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면 더 큰 판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냉정히 살펴보면 지금까지 인문과 철학 사상과 관련된 플랫폼이 있었던 적이 없다. 경향 각지의 수많은 학회들 홈페이지는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고, 게다가 그곳은 소통이나 교류가 원천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폐쇄적인 곳이다.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블로그 형태로 만들어진 철학관련 사이트는 대부분 자료실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형태의 Archiv로는 스탠퍼드 대학의 Encyclopedia of Philosophy가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특정한 철학자들과 철학들 관련해서 방대한 자료들이 축적되어 있어서 일종의 철학 백과사전과도 같다. 그리고 국내외 대부분의 철학 관련 사이트들도 이런 형태의 아르키브나 뉴스 사이트들 처럼 자료들을 평면적으로 나열해놓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인문/철학 플랫폼인 <에세이철학회>는 그런 것들과 차원이 다르다. 이 플랫폼의 기본 정신은 '개방과 다양성과 창의성'이다. 이곳에는 그야말로 하나의 판이 만들어져 있어, 누구든지 들어와서 자기 글을 올릴 수도 있고, 남의 글에 댓글을 달 수가 있다. 이곳에서는 이 시대의 핵심 '논쟁거리'들을 들고 와서 논쟁을 벌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이 시대의 재사(才士 )들이 백가쟁명할 수 있는 곳고, 인문/철학을 좋아하는 일반인들이 읽고 공부할 수 있는 수많은 글들이 있다. 때문에 이 플랫폼은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한국인들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곳이라 할 수가 있다. 이곳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전문 칼럼니스트들은 대부분이 연구와 글로 먹고 사는 글쟁이들(ecrivain)이다. 이곳에서는 출신이나 가방끈의 길이, 그리고 생물학적인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활동을 하는 분들의 남성 비율이 높고, 대학에서 오랫동안 연구와 글을 써놓은 학자들이 많다 보니 다소 벽이 있어 보일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 실력이 있다고 하는 분들을 초대하는 데 전혀 인색하지가 않다. 한 마디로 역량이 있다면 누구든지 전문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올릴 수가 있다. 우리는 점차로 이 판을 키워 '100인 칼럼'으로 만들 것이다.


이렇게 멋진 판을 만들어 놓았는데 정작 인문학과 철학으로 먹고 사는 분들이 외면하고, 어떤 분들은 대놓고 '관심없어요'라고 하면서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놀 수 있는 판을 깔아준 것을 반겨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쪽박을 깨는 것이다. 참으로 알 수가 없는 행태이다. 그동안 자기 구멍만 파오던 오랜 두더지 습성이 몸에 배서 그런건지, 아니면 그저 자기가 보는 세상이 전부인 양 행세하는 우물안 개구리의 시야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허구헌 날 남의 철학만 가져다가 번역하고 해석하고 다이제스트하는 일만 하다가 막상 자기 언어로 이야기를 하라고 하니까 할 말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한 마디로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과 시야'가 부족한 것으로 밖에 달리 판단할 수가 없다. 그러니 다른 한류 콘텐츠들처럼 해외로 나가려는 우리의 시도가 이해가 되겠는가? 우리는 밖으로 나갈 뿐만 아니라 해외 학자들도 이곳으로 끌어들여 수준높은 학문적 담론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 이미 이곳에는 우리들의 취지에 동감한 <일본 동아시아 실학회>의 회장인 도호쿠 대학의 가타오카 류 교수도 회원으로 가입했고, 조만간 이 학회의 많은 학자들도 가입해서 동아시아 사상 공동체를 형성하려 하고 있다. 이런 외연은 얼마든지 확대해서 유럽과 영미권의 뛰어난 학자들도 들어오게 될 것이다. 과거에 어느 누가 이런 일을 시도한 적이 있는가? 다들 정부기관의 국책 자금을 받아서 해외 유명학자들을 돈으로 끌어오는 일만 했을 뿐이지, 우리처럼 이렇게 돈 한 푼 안 들이고 한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이제 한국의 인문과 철학도 세계 시장으로 진출해서 글로벌하게 경쟁을 해야 한다. 그 선봉장에 플랫폼 <에세이철학회>가 서 있다. 도대체 이게 의미 없는 짓거리로 보이나? 아니면 아이들 장난 처럼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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