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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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당시 오스만 제국의 궁정 화원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이야기에 알맞은 그림을 촘촘하게 그려내는 ‘세밀화’가 공식적이고도 전통적인 화풍으로 인정받았다. 이 그림들은 마치 신이 인간세계를 바라보듯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신의 관점’에 입각한 화폭 구성에 따라 대체로 평면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를 이끌어간 것은 이슬람 세밀화의 대가 ‘비흐자드’를 중심으로 하는 ‘헤라트파’였다.

타일에 새겨져 있는 오스만투르크 전사들의 수렵도, 출처 : 필자의 터키 이스탄불에서 직접 촬영
한편 같은 시기 아드리아 해 건너편에서는 르네상스가 만개했고, 이는 회화에 있어서도 ‘원근법’이라는 ‘인간중심적인 시각’에 입각한 새로운 화풍을 유행시켰다. 그리고 이 유럽의 화풍은 오스만 제국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쳐서, 심지어 술탄마저도 그에 매혹되어 유럽의 화풍을 추종했으며, 이로 인해 실제로 유럽의 화가가 이스탄불의 궁중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오스만 제국 시대 세밀화의 시초는 15세기부터 제작되기 시작했으며, 파티흐 술탄(1432~1481, 오스만 제국 제7대 술탄) 시기에 이르러 독특한 스타일을 갖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책 속에 술탄의 초상화가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셀주크 투르크 시기처럼 술탄, 귀족 등의 후원자들은 궁전 근처에 화원을 만들어 세밀화가들이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고구려의 수렵도,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세밀화는 궁중화원(나카시하네)에서 제작되었다. 나카시하네는 궁중의 장인단(匠人團)에서 가장 중요한 분파였다. 화가들은 수사본에 삽화를 그리거나 채색하는 일만 맡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책 장정과 예술품에 장식을 그려 넣는 일도 했고 중전이나 종교 건축물의 천정과 돔을 장식하는 그림도 구상했다. 또한 도자기 제조인이나 직물과 양탄자를 만드는 작업장에도 장식 문양의 밑그림을 제공했다. 나카시하네의 이러한 주도적인 역할 덕분에 이스탄불에서 제작된 수사본이든 이즈닉의 도자기든 부르사의 벨벳이나 비단이든 간에 오스만 예술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양식은 유사성을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