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238185&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빨치산의 태평소 소리 좋아했던 미군, 국악의 전도사가 되다[이희용의 월드코리안 12] 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민족·국제 이희용(hoprave)▲가야금 타는 해의만만년의 해...
우즈베키스탄에서 대우자동차 다마스를 보니 예전에 돌아가신 김우중 회장님의 위대성, 대우정신이 과연 무엇인지가 생각난다. 그분은 진정한 New Frontier이자 개척자였다. 타슈켄트에는 대우자동차가 엄청나게 많이 굴러다니는 데 놀랄 수밖에 없다. 넥시아 · 마티즈 · 티코 할 것 없이 ‘DAEWOO’ 마크를 단 차종이 길거리에 넘쳐난다. 이 나라 차량 10대 중 7대 이상은 대우차라는 게 현지 추산이다. 대우는 외환위기를 맞아 1997년에 철수했지만, 현지 정부는 인지도 높은 대우차 브랜드를 계속 써왔다. 게다가 높은 관세장벽을 둘러 수입차를 막는 산업보호 정책 덕분에 대우차 천국이 된 것이다.

오늘도 우즈베키스탄의 거리를 누비고 있는 대우자동차 다마스,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현지 주재원들은 시내에서 보는 자동차 10대 가운데 9대가량이 대우차라고 말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이웃 나라인 카자흐스탄만 해도 도요타·혼다와 같은 일제 차가 휩쓸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골목골목에는 여전히 대우 마크를 단 차들이 돌아다닌다. 대우는 1992년 국내 기업 최초로 우즈베키스탄에 들어왔다. 1992년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대우그룹에서 목화, 지폐 생산용 종이 등의 원자재들을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져다 쓰는 대신에 정부와 합작으로 법인을 운영하는 방식의 법인을 차리기로 했다. 당시 대우 측에서 승용차 수입 또한 조건들 중 하나로 내세웠고, 우즈베키스탄 정부 측에서 이를 받아들이자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서 생산한 르망과 에스페로를 소량 수입 판매하였다.
그런데 이들 차량의 인기가 당초 대우그룹의 예상을 뛰어넘는 판매고를 보이며 큰 인기를 보이자,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론이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됨과 동시에, 차량 생산을 현지에서 시행한다는 계획으로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추가로 중화학공업 육성각서를 체결하여 우즈대우 법인을 세웠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최초의 자동차 생산 국가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대우 입장에서는 유럽 및 제 3세계 진출의 교두보 설치라는 이득을 가졌기 때문에 양측 모두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던 셈이다. 결국 대우의 투자로 결국 1996년 1월, 이곳 안디잔 아사카 지역에 공장이 설립되었고 이 공장에서 대우자동차는 현지에서 티코, 레이서, 넥시아, 라보, 다마스, 에스페로까지, 총 6종의 차종을 연간 10만대 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제3세계 진출형 교두로를 마련했다.
이로 인해 1996년부터 우즈베키스탄의 자동차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게 된다. 따라서 우즈베키스탄은 이른바 대우의 ‘세계경영’ 교두보가 되었다. 대우는 1996년에는 안디잔에 자동차 조립 공장을 세웠다. 자동차를 앞세우고 전자 · 중공업 · 건설 · 금융도 따라 들어왔다. ‘대우’라는 선단으로 합쳐진 대우군단의 전진이었다. 이 때문에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은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을 ‘킴기즈칸’으로 부를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우즈베키스탄에선 대우와 관련해 전설 같은 얘기가 많다. 90년대 중반 대우의 한 임원이 우즈베키스탄의 고위 공무원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임원의 비행기 출국 시간이 됐다.
그 임원이 ‘비행기 출국 때문에 일어서야 한다’고 하니, 고위 공무원은 공항에 전화를 걸어 ‘비행기 이륙 시간을 늦추라’고 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어서 놀랐지만 대우의 위상이 그 정도로 높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99년 대우그룹이 부도 사태를 맞자, 대우차를 생산하던 ‘우즈대우’는 우즈베키스탄 정부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대우인터내셔널이 96년 설립해 이동통신시장 점유율 1위까지 차지했던 ‘대우 유니텔’도 2004년 네덜란드의 실크웨이홀딩사에 팔렸다. 대우은행도 산업은행으로 소유권이 넘어가 우즈KDB로 이름을 바꿔달고 영업하고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은 ‘세계경영’이었다. 김 전 회장은 부실기업을 잇달아 인수 및 합병(M&A)하면서 창업 15년 만에 대우를 자산 순위 국내 4대 재벌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90년대엔 선진국 기업조차 관심을 갖지 않았던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로 진출했다. 당시 대우의 해외 현지법인은 전세계 360여 곳에 이르렀다. 김 전 회장은 전세계 100여 개국에 600여 사업장을 거느린 ‘글로벌 총수’로 평가받았다. 이 나라 국민차 브랜드로 자리 잡은 대우는 수십만 개의 ‘달리는 광고판’을 거저 얻은 셈이다. 중앙아시아의 중심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은 강력한 대통령제와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경제도약을 꿈꾼다.
이 나라 시장을 처음 개척한 대우는 국민차 대접을 받는 대우 브랜드에 힘입어 자원개발과 섬유산업에서 제2의 자동차 신화를 이루게 된다. 대우인터내셔널의 면방 법인이 터잡은 곳은 타슈켄트에서 동쪽으로 400km쯤 떨어진 페르가나. 44.7㎢ 국토의 4%에 불과한 면적이지만 2,700여 만 인구의 4분의 1이 넘게 몰려 사는 최대 산업지대다. 대우는 품질좋은 현지 면화를 실과 천으로 만드는 DTC와 DTF라는 공장으로 이 나라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간곡한 요청으로 중부 지역 부하라 법인이 정상적으로 가동하면 대우는 면방 산업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최대 기업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