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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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직인들은 외부인들에게 매우 호의적이다. 사진 모델도 되주기도 하며 같이 찍자고 들이대는 사람도 많다. 굉장히 순수하지만 화가 나면 무서운 전사가 되기도 한다. 형제격 국가인 이란의 페르시아인을 제외하면 아프가니스탄에 1,000만여 명, 타지키스탄에 600만여 명, 우즈베키스탄에 1,000만여 명(비공식적 추정)이 산다. 타지키스탄은 타직 족이 나라의 주류 민족으로 민족국가 성격을 띄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타직인은 공식적인 집계로는 200만 명 이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다. 우즈베키스탄 내의 타직인들은 부하라와 사마르칸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며 대개 행정상의 차별을 피할 목적으로 우즈베크 인으로 등록되어 있어 통계에 잡히지 않으며 본인들이 직접 밝히지 않은 이상 외모상으로는 파악하기 힘들다.

우즈베키스탄 히바에 거주하고 있는 타지크 여인들,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아프가니스탄의 타직족은 파슈툰족보다는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약하다, 한국에서 유명한 타지키스탄 사람들 중에는 아프가니스탄의 국민 영웅이자 탈레반과는 다른 소신있는 행보로 유명했던 "판지시르의 사자"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타직족 출신이다. 타직인들은 자신들 나라 사람들은 절대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아니라고 자랑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을 정도이며 마수드를 매우 존경한다. 한편 도시 타직인 대다수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가옥에 살고 있다. 반면에 시골의 타직인들은 바위가 많아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마을 공동체에서 산다. 그들은 거기에 굽지 않은 진흙으로 나즈막한 장방형 또는 직사각형의 집을 짓는다.돌과 함께 진흙 벽돌이 기초에 사용된다 평평한 지붕은 잔가지와 흙을 꽉 채워 넣어 만들어서 거적으로 덮여진 들보로 지탱된다. 타직인들의 대부분은 키쉴락(Qyshlaq)이라고 불리우는 지방 농촌 부락에 거주하고 있는데, 키싈락의 거주 가옥은 더러운 진흙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부분의 집들은 평평한 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각 집마다 넓은 과수원을 가지고 있다. 이곳 타직인들은 대개 집시들이 많은데 이들의 특징은 외국인만 보면 불쌍한 표정 지으며 돈 달라고 손 내미는거다. 타직인들은 우즈베키스탄에서 그다지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듯 하다. 타직인들은 이란계 민족으로 투르크계인 우즈벡인과 다르기 때문이다. 타직인은 고원의 독수리라는 별칭이 있다. 독수리는 타직인들이 숭배하기 때문이다. 타직인의 많은 이들이 해방군이 되어 중국 신장의 변경을 지키고 있으며 일반인도 자발적으로 순찰을 하기 때문에 존경을 많이 받는다. 타직인은 독수리와의 관계가 긴밀하다.
민속 춤도 독수리 춤이라고 불린다. 타직의 전설 중 어려운 시절이었을 때 독수리가 자신을 희생해 타직인들을 보호하고 지켜주었다는 전설이다. 타직 선조들은 독수리를 용감, 정의와 충정의 상징으로 숭배했다. 타직인이 기장 즐겨 먹는 음식은 양고기, 우유밥과 우유전병 전골이다. 타직인들도 유목과 농업으로 나누어져 있다. 유목업은 유제품과 고기를 주식으로 하고 농업구역은 밀가루를 주식으로 한다. 주식은 매우 중요하지만 반찬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야채를 많이 먹지 않는다. 큰 고기를 삶아 뜯어서 소금을 찍어먹는 것을 진미라고 한다.다른 민족들이 이 현상을 수좌양육(손으로 양고기를 뜯어 먹는 것)이라고 부른다. 타직 여성들은 공예자수를 잘한다. 일상 생활 곳곳에서 공예자수품을 확인할 수 있는데 침대 시트, 소파 가리개, 전통 의상, 두건, 허리 띠, 방 장식, 승마용품 등 위에 화려하고 예쁜 자수가 항상 보인다.
통계상 우즈베키스탄 내 타지크인 비율은 공식적으로는 약 5% 내외이다. 단 여러 학자들이 비공식적으로 약 25-35% 정도로 이를 것이라 추정한다. 학자들마다 추정하는 비율은 구체적으로 조금씩 다르다. 소련 성립 이전 부하라 칸국 시절에는 우즈베크인과 타지크인들은 중앙아시아의 넓은 지역에 골고루 분포하며 섞여 살고 있었다. 20세기 초까지 사용되었던 '사르트(Sart)'라는 용어는 이 지역의 타지크인을 의미하는 동시에 우즈베크인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후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두 집단의 민족정체성이 강화되었다. 과거 소련의 역사학자들은 우즈베크 민족인 투르크계와 타지크 민족을 인종적으로 옛부터 상호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인식했었다.
민족을 바탕으로 한 여러 소비에트 공화국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1924년부터 1929년까지 5년이라는 짧은 기간이기는 했으나 소비에트 정부가 타지크 ASSR을 우즈베크 SSR 내부의 자치공화국으로 편성한 이유는 바로 이런 부분이었을 것이다. 비공식적인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우즈베키스탄 내의 타지크인들은 여러 이유로 우즈베크인으로 등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소비에트 정부의 민족주의적 정책 때문에 타지크인 일부가 차별을 받았던 역사가 있었다. 다만 차별 의식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실제로 타지크어 금지 정책에도 불구하고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등 역사적으로도 페르시아계 타지크인이 많이 거주하던 도시였고, 현재에도 타지크인이 다수인 곳에서는 여전히 타지크어가 일상생활에 널리 쓰인다.
사마르칸트의 주민의 약 70%, 부하라의 약 90%정도가 타지크어를 모어로 쓴다. 물론 소련 시절 우즈벡 내에 거주하던 타지크 사람들이 우즈베키스탄 민족과 동화되어 살아갔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