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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오크(On-Ok) 부족 연맹의 투르기스에 대한 심층적 고찰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7 23:56:41

투르기스 종족은 본래 온-오크(On-Ok) 연합 중에 하나로 돌궐의 일부였다. 이들은 7세기 오우즈 세력을 구성하던 타르두시(Tardusi) 부족이었다. 이들 투르기스 족이 중국 사료에 처음 언급된 것은 651년이다. 당시 투르기스 족은 돌궐의 지배 아래 일리 강 계곡에 거주하고 있었다. 우선 제1 돌궐 제국이 멸망하자 투르기스는 온-오크 부족들 중 세력이 강대해져 온-오크 부족 전체를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었다. 

투르기스족의 유목생활,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이어 투르판과 쿠차 지역으로 내려와 서역의 36국을 지배했다. 이는 당시 투르기스 가한이었던 우첼레(Uchele)의 영도 아래 이루어졌다. 이어 안서도호부의 총관으로부터 바가 타르칸(Bagha Tarqan)이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우첼레가 서역을 지배하는 등 최전성기를 이루고 있는 시기에 돌궐의 묵철 가한이 다시 세력을 확장하여 전략가인 톤유쿡의 지휘 아래 다시 중앙아시아로 진격해왔다. 


이러한 돌궐의 확장을 막기 위해 당나라, 키르기즈, 카를룩, 바스밀 등과 동맹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우첼레는 698년 볼슈(Boshu) 전투에서 돌궐군 사령관 톤유쿡에게 패했고 수많은 병력이 포로로 잡혀가는 등, 그 세력이 일소되고 말았다. 이로 인하여 투르기스는 돌궐의 봉국이 되어 오랜 기간 동안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나 투르기스는 711년경 다시 반기를 들었고 볼슈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돌궐에게 다시 패배했다. 이에 투르기스는 돌궐에 의해 멸족될 위기를 맞게 되자 우첼레의 아들 소코(Soko)는 다시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돌궐에 저항했다. 


그러나 돌궐과의 전투를 앞두고 소코의 동생 체무(Chemu)가 반기를 들어 묵철 가한에게 투항했다. 당시 투르기스는 오르혼 비문에 나타난 것과 같이 카라(Kara) 투르기스와 사르(Sar) 투르기스라는 두 개의 큰 종족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러한 투르기스에 대해 돌궐의 지배는 오래가지 못했다. 투르기스는 묵철 가한 살해 당한 직후 717년에 돌궐 내부에서 복잡한 정쟁이 벌어지고 있는 틈을 타 독립에 성공했다. 돌궐 제국이 다시 위기를 맞게 되었을 때 새로운 가한으로 초르 술루(Chor Sulu)를 선택한 다수의 돌궐 부족장들은 빌게 가한을 떠나 술루 가한의 치하로 들어가면서 돌궐의 내부는 더욱 심화되옸다. 


술루는 수도를 탈라스 북서부의 발라사군으로 천도하면서 투르기스 족은 술루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투르기스의 지원을 받은 술루는 탈라스에서 중앙아시아로 확장해 들어오던 우마이야 왕조의 군대를 격퇴하여 이슬람 세력의 팽창을 저지했다. 이러한 우마이야 왕조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이후 카라 투르기스와 사르 투르기스 사이에 다시 내전이 발생해 738년까지 계속되었다. 결국 두 부족은 766년 카를룩과 바스밀 등, 또 다른 투르크계 종족에 의해 멸망하였고 대부분 남은 세력들은 키르기스 족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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