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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가 가진 문명사의 조건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8 00:18:44

면적 296만, 9,000㎢, 평균 수심 1,458m, 길이 약 4,000km, 최대너비 약 1,600km, 체적 약 370만㎦, 최대 수심 4,092m. 뜨거운 태양 아래 눈부시게 푸른 빛을 자랑하는 '거의 폐쇄된 바다' 지중해. 지브롤터라는 서쪽 입구의 극히 제한된 통로만이 바깥 바다와 연결돼 하나의 '물바가지 형상'을 띄고 있는 지중해를 빼놓고 서양사를 논할 수는 없다. 지도에서 지중해를 살펴 보면 그 이유를 쉽사리 눈치챌 수 있다. 북쪽으로 유럽, 남쪽으로 아프리카, 동쪽으로 아시아와 연결된 곳이 바로 지중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바다를 중심으로 고대 페니키아로부터 로마 제국, 비잔틴, 오스만투르크 등 숱한 제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이런 이유로 지중해는 바로 대륙간 문명과 문화 전달의 매개체가 되어왔다.

터키 안탈리아 마리나 항구의 지중해 노을,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하지만 문명의 현장을 이야기할 때 항상 다뤄지는 지중해의 역사는 우리가 바라본 역사는 아니었다. 서구의 시각으로 쓰여진 정보를 갖고 학습을 했을 뿐이다. 지중해에는 물자 교류와 전쟁의 역사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스와 로마의 여러 신들과 유대교 · 기독교 · 이슬람의 유일신들이 나타나고 성장하고 지배한 곳도 바로 지중해였다. 사람들은 지중해를 통해 이들의 종교와 신화를 실어나르면서 지중해 전반에 걸쳐 공통의 문명을 키웠다.


서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이어주는 길목을 차지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지역적 위치를 이용해 경제적으로 큰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이는 지리적 이점 이외에도 상거래에 종사하는 상인들에게 각자의 종교를 허용하고 법적 유연성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물론 유대인들에게도 공동체 내부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선 최소한으로 관여했고, 오스만투르크 제국 지배자인 술탄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한에서 각 민족별 공동체 내부 지도자들의 권위를 인정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이슬람을 국교로 삼았지만 다민족 다문화의 광대한 영역을 통치하는 데 필요한 유연성을 법과 관습의 조합에서 찾았다. 오스만 왕조는 외국인들에게 자신들의 법에 따라 판결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고, 여기에서 오늘날에도 외국 상인과 외교관들에게 적용되는 ‘치외법권’이 유래했다.영토로 편입된 발칸과 그리스에서 오스만 법률은 세르비아인, 그리스인, 개신교 기독교도들에게도 사회 · 종교적 권리를 인정해줬다. 이러한 배경에서 15세기 카톨릭의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득세하던 스페인의 종교재판에서 추방당한 유대인조차 오스만투르크 제국에서 새로운 근거지를 인정받고 권리를 보호받으면서 상거래를 계속할 수 있었다.


1453년 비잔틴의 멸망은 반세기 후 세계사의 방향을 바꾸는 변수로 작용했다. 동부 지중해를 장악하고 동서양 중개무역에서 이익을 얻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상거래를 장려했으나, 서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과거 기독교 세력권이었던 콘스탄티노플이 존재할 때보다는 장애물이 많다고 느끼면서 동양으로 가는 바닷길을 찾는 계기가 됐다. 신생국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나가는 인도 항로, 스페인의 대서양 횡단을 통한 신대륙 발견 등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성립하고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촉발된 세계사적 사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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