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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17 《옳바른 방향의 지성과 이성에 대하여》
  • 조율여백
  • 등록 2026-04-18 12:00:48
2026.3.17 《옳바른 방향의 지성과 이성에 대하여》

지성과 이성을 존재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마치 하나의 중심을 기준으로 순환하는 위성 궤도와도 같은 성격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사고와 판단, 그리고 문명 속 다양한 지적 활동들은 모두 일정한 기준점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균형을 찾아가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하나의 행성을 중심으로 여러 위성이 각자의 궤도를 유지하며 순환하는 모습과도 유사합니다.

이러한 궤도들이 충분한 시간 속에서 정렬되고 상호 간의 관계가 안정화되면, 그 안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위상과 기준점이 드러나게 됩니다. 저는 이를 중심 궤도를 형성하게 하는 근원적 지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지성과 이성이 점차 합당한 방향으로 정렬될수록, 인간은 단순한 계산이나 논리를 넘어 보다 근원적인 가치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장면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무런 계산 없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주며 짓는 아이의 미소, 자연이 인간에게 묵묵히 제공해 온 터전과 공기,
그리고 삶의 과정 속에서 마주했던 감내와 헌신의 흔적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계산된 이익이나 논리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보다 순수한 의지에서 비롯된 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지성과 이성이 옳바른 방향으로 나아갈수록, 결국 이러한 순수한 의지를 인식하고 그것을 감사의 태도로 받아들이며 삶 속에서 이어가려는 방향으로 이행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어떤 지성과 이성이 옳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지성과 이성이 순수한 의지 앞에서 스스로를 낮출 수 있는가!

《지식과 성찰이 깊어질수록 나타나는 변화》

지식과 성찰이 깊어질수록 인간은 오히려 더욱 겸손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우리는 세계의 구조와 모순,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초기에는 지식과 논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성찰이 깊어질수록 그것만으로는 삶의 모든 문제를 설명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간은 점차 이해하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계산된 이익이나 논리적 정당성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순수한 의지의 가치라는 점을 말입니다.
따라서 지식이 깊어질수록 인간은 자신의 지혜를 과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진정성 있는 의지 앞에서 자연스럽게 겸손해지는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겸손은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지성과 이성이 일정 수준 이상 성숙했을 때 나타나는 하나의 귀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정함과 관리에 대하여》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부정함은 그 성격상 완전히 제거하기 어려운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부정함을 근절하겠다는 선언적 이상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 속에서 인식하고 관리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기본적 인식조차 종종 흐려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히 돈과 권력의 영역에서는 합당함의 기준을 넘어서는 부당함이 반복되면서, 그것에 대한 감각이 점차 둔화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 사례들에서도 확인됩니다.
Mayer Amschel Rothschild 가문이나 John D. Rockefeller와 같은 거대 자본의 형성 과정,
극단적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베!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사이비 종교 현상들은 인간 사회가 부당함을 어떻게 정당화하거나 점차 수용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기보다, 점차 하나의 관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무엇이 왜곡되었는지조차 명확히 인식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현실 속에서의 판단은 때로 절대적인 선과 악의 구분이 아니라, 상대적인 차악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부당함은 다음과 같은 단계적 흐름을 보이며 확장되기도 합니다.
부당한 소유 → 부당한 약탈 → 부당한 왜곡과 거짓 → 부당한 기준 → 부당한 조율
이러한 흐름은 사회 질서를 점진적으로 왜곡시키며, 결국 더 큰 분열과 갈등을 유발하게 됩니다. 특히 분열을 기반으로 한 왜곡은 명확한 방향성 없이 확산되며, 사회 전체를 서서히 무질서로 이끄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정리》
결국 지성과 이성의 옳바른 방향이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순수한 의지의 가치를 인식하고, 그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며, 동시에 현실 속 부정함을 외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려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율여백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완전함은 도달의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조정되어야 하는 과정입니다. 지성과 이성 또한 그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정렬되고 수정되어야 합니다.
지성이 깊어질수록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주장하기보다, 오히려 존재의 근원적 가치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그러한 태도 속에서 비로소 지성과 이성은 방향성을 얻고, 그 방향성은 다시 인간과 문명을 조율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 조율여백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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