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의 발단은 싱거웠지만, 목적지는 비장했다.
"우리 이번엔 바다 말고 산으로 가자. 그것도 아주 깊은 산골로."
한 달 전, 단톡방에 민석이 툭 던진 말이었다. 강릉이나 부산 가서 회나 먹자는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민석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강원도 정선이랑 태백 쪽으로 가자. 옛날 탄광촌들 있던 곳. 우리 나이가 이제 다 타버린 연탄재 같기도 하고, 인생 막장까지 갔다가 돌아온 놈들도 있는데... 거기만큼 우리한테 어울리는 데가 어디 있겠냐."
그 '연탄재'라는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그렇게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 반백의 사내 다섯은 각자의 사연을 트렁크에 싣고 강원도로 향했다.
하남에서 출발한 차는 광주 IC를 거쳐 원주 IC로 이어지는 광주-원주 고속도로를 탔다. 금요일 오전은 여전히 평일과 같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비교적 잘 빠졌다. 하지만 중간에 점심 식사를 위해 잠시 들른 양평 휴게소는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도떼기시장처럼 붐볐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진부 IC를 빠져나오자 풍경은 급격히 바뀌었다. 정선으로 향하는 59번 국도는 뱀이 똬리를 튼 듯 굽이쳤다. 운전대를 잡은 철진이 핸들을 이리저리 꺾으며 투덜거렸다.
"길 한번 더럽게 꼬여있네. 고속도로 뚫린 지가 언젠데 여긴 아직도 이 모양이냐."
조수석에 앉은 재윤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오대천 물줄기를 보며 대꾸했다.
"직선으로만 달리면 재미없잖아. 우리 인생도 계획대로 쭉 뻗은 적 한 번도 없었는데, 길이라도 좀 꼬불거려야 제맛이지."
"말은 청산유수다, 환쟁이 놈."
뒷좌석의 영수와 상훈, 민석도 껄껄 웃었지만 시선은 차창 밖 절벽과 앙상한 겨울나무들에 머물러 있었다. 첩첩산중. 터널을 하나 지날 때마다 세상과 단절되어 더 깊은 과거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콘도에 들어가기 전, 그들은 '정선 아리랑 시장'에 들렀다. 장날이 아님에도 시장은 활기가 돌았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야, 이거 메밀전병 아니냐? 옛날에 어머니가 솥뚜껑 뒤집어놓고 부쳐주시던 거."
상훈이 가게 앞에 쪼그리고 앉아 노릇하게 구워진 전병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주인 할머니가 덤으로 콧등 치기 국수 한 그릇을 내어주자, 다섯 아재들은 후루룩 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그릇을 비웠다.
시장 한구석 좌판에는 몸뻬 바지와 검정 고무신, 투박한 농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민석이 녹슨 낫 하나를 들어보며 말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탄광 일 나가시기 전에 항상 이걸로 마당 잡초를 베셨어. 그땐 그게 왜 그리 싫던지... 도시 가서 넥타이 매고 사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 보니 저 투박한 쇠붙이가 꼭 아버지 손 같다."
시장통을 걸으며 그들은 수십 년 전, 가난했지만 뜨거웠던 시절의 기억을 하나둘 끄집어냈다. 10원짜리 하나가 귀했던 시절, 연탄가스 마시고 동치미 국물 들이켜던 기억, 낡은 참고서 하나를 물려받아 공부하던 시절들. 그 기억들은 씁쓸하면서도 달짝지근했다.
시장을 나와 하이원 리조트가 있는 고한읍과 사북읍 경계로 들어서자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과거 검은 석탄을 캐내던 땅 위에는 이제 욕망을 캐내는 거대한 카지노호텔이 우주선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읍내 거리의 풍경은 기이했다.
"저거 봐라. 전당포가 아니라 '전당사'라고 써놨네. 이름만 바꾸면 뭐 하냐. 결국 저당 잡히는 곳인데."
영수가 혀를 찼다. 거리 양옆으로는 '전당사', '대출', '차량 담보', '명품 시계 매입'이라고 적힌 간판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대낮인데도 네온사인이 번쩍였고, 전당포 쇼윈도에는 주인을 잃은 금반지와 명품 가방들이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절박함이, 누군가의 파산이 물건이 되어 전시된 풍경이었다.
"옛날엔 목숨 걸고 탄광 들어가서 석탄을 캤는데, 이젠 인생 걸고 돈을 캐러 오는구나."
민석이 씁쓸하게 읊조렸다. 화려한 리조트 건물의 위용과 그 그림자 밑에 다닥다닥 붙은 전당포들의 대비는 섬뜩할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운전하던 철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10년 전 부도 직후, 이곳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저 전당포 불빛들이 얼마나 유혹적이었는지, 동시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여기 공기가... 서울보다 차다. 그냥 추운 게 아니라 뼛속이 시린 느낌이야."
철진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차는 꼬불꼬불한 언덕을 올라 마침내 숙소인 콘도 주차장에 도착했다. 거진 산 정상에 거대한 단지를 이루고 있는 콘도는 최근에 지어진 건물은 아니지만 성채처럼 튼튼해 보였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서 엔진을 끄자 사방이 고요해졌다.
다섯 친구는 짐을 챙겨 내렸다. 시장에서 산 메밀전병과 족발, 그리고 트렁크 깊숙이 넣어둔 술병들이 부딪쳐 달그락 소리를 냈다.
"가자. 오늘 밤은 길겠다."
민석이 앞장섰다. 과거의 영광이 묻힌 탄광촌, 현재의 욕망이 들끓는 카지노를 뒤로하고 그들은 자신들만의 '갱도'인 콘도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밖에서 본 풍경이 아니라, 그들 가슴속에 묻어둔 진짜 이야기를 캐낼 시간이었다.
정선 전통 시장
도로 위 표지판
콘도에서 바라본 전경
2. 강원도 정선의 밤은 도시보다 일찍 찾아왔다. 겹겹이 포개진 산등성이 너머로 붉은 해가 넘어가자, 하이원 리조트 콘도 거실 통창 밖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과 희끗한 눈발로 채워졌다.
거실 중앙, 널찍한 테이블 위 여기저기 널려 있는 막걸리 병 여러 개와 소주병 몇 개, 그리고 먹다 남은 안주들이 놓여 있었다. 대학 입시를 전후해 처음 만나 어느새 머리에 서리가 내린 60대 후반과 70대 초반이 된 다섯 친구-민석, 철진, 상훈, 영수, 재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거참, 정선 꼬부랑길이 꼭 우리 인생 같네."
정적을 깬 건 맏형 노릇을 해온 민석이었다. 대기업 임원까지 지내고 은퇴한 그는 겉보기엔 가장 성공한 듯했지만, 잔을 쥐고 있는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길? 그렇지. 빌어먹게 꼬불거리지."
사업을 하다 세 번이나 말아먹고 겨우 재기한 철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소주를 털어 넣었다. 그의 얼굴엔 훈장처럼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너네 그거 아냐? 나 10년 전 부도났을 때, 여기 정선에 카지노 하러 온 게 아니라 죽으러 왔었다."
철진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빚쟁이들 피해서 도망쳐 왔는데, 주머니에 딱 5만 원 있더라. 그걸로 소주 사 먹고 저기 민둥산 억새밭에서 얼어 죽으려 했어. 근데 너무 추운 거야. 추우니까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프니까 국밥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살았어. 그 국밥 한 그릇 때문에."
철진이 껄껄 웃었지만, 친구들은 웃을 수 없었다. 그 웃음 뒤에 숨겨진 비참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구석에서 조용히 마른안주를 먹고 있던 영수가 셔츠 단추를 풀었다. 배 한가운데 선명한 수술 자국이 드러났다.
"죽으러 온 놈이나, 살려고 발버둥 친 놈이나… 난 3년 전에 위암 3기 판정받았을 때, 의사가 마음의 준비하라고 했다. 그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뭔 줄 아냐? '우리 딸 결혼식은 보고 가야 하는데'도 아니고, '회사 프로젝트 어쩌지'였어. 평생 일만 하다 기계처럼 살다 갈 뻔했지. 수술실 들어가면서 맹세했다. 다시 눈 뜨면, 남이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숨을 쉬겠다고."
영수는 이제 건강을 위해 술 대신 보리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분위기가 숙연해지자, 늘 분위기 메이커였던 상훈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작년에 아내를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보냈다.
"나는… 너희들이 부럽다. 돈이 없어도, 몸이 아파도, 그래도 지지고 볶을 사람이 옆에 있잖아. 집사람 가고 나니까, 세상천지가 다 소용없더라. 밤에 집에 들어가서 불 켜는 게 제일 무서워. 아무도 없는 거실이 너무 커 보여서."
상훈의 눈가가 붉어졌다. 재윤이 말없이 상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무명 화가로 평생을 자유롭게 살아온 재윤은 친구들 중 유일하게 독신이었다.
"상훈아, 빈방이 무서운 건 네가 아직 사랑하고 있어서 그래. 그 빈자리가 사랑의 크기만큼 큰 거야."
재윤이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밖을 봐라. 아무것도 안 보이지? 깜깜하고 춥고. 우리 지난 50년이 다 저랬던 것 같다. 철진이는 벼랑 끝에 섰고, 영수는 수술대에 누웠고, 상훈이는 혼자 남겨졌지. 나? 나는 평생 붓 하나 들고 가난이랑 싸웠고, 민석이는 그 높은 자리 지키느라 속이 다 썩어 문드러졌겠지."
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쓴 술을 삼켰다.
"맞아. 남들이 볼 땐 화려해 보여도, 매일이 살얼음판이었어. 자식들 유학비 댄다고 내 노후는 깡통이고, 회사 나오니 명함 한 장 없으면 아무도 날 안 쳐다보더군."
3. 거실의 공기가 술기운과 회한으로 묵직해질 무렵, 창밖에는 눈발이 더 굵어졌다. 철진의 '죽으러 왔었다'는 고백에 이어, 잠자코 있던 민석이 베란다 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훅 끼쳐 들어왔지만 그는 문을 닫지 않았다. 그는 어둠 속에 잠긴 사북 읍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희들,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가기 전 1년 동안 연락 끊겼던 거 기억나냐?"
민석의 뜬금없는 질문에 친구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재수 학원 들어갔다고 했잖아."
"거짓말이었어."
민석이 돌아섰다. 그의 눈은 45년 전, 1980년 4월의 그날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때 나 여기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저 아래, 지하 1,000미터 막장 속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기업 임원까지 지낸 엘리트 민석이 광부였다니.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당장 입에 풀칠할 돈이 없었어. 무작정 도망쳐 온 게 여기 동원 탄광이었지. 갱도 안은... 지옥이었다. 지열 때문에 온도는 30도가 넘고, 습도는 90프로야. 팬티 한 장만 입고 일해도 장화 속에 땀이 물처럼 찰랑거렸어. 도시락을 열면 밥 위에 시커먼 탄가루가 후추처럼 뿌려져 있었지. 그걸 그냥 삼켰어. 살아야 하니까."
민석이 떨리는 손으로 소주잔을 비웠다.
"근데 진짜 지옥은 땅 밑이 아니라 땅 위에 있더라. 1980년 4월이었어."
"사북 사태... 말하는 거야?" 상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 사북 항쟁. 그때 우린 사람이 아니었어. 회사랑 어용 노조가 우릴 개돼지 취급했지. 임금은 쥐꼬리만 하고, 항의하면 깡패들 풀어 두들겨 팼으니까. 참다 참다 터진 거야. 4월 21일이었나... 경찰 지프차가 사람을 치고 달아나는 걸 보고 눈이 뒤집혔지."
민석의 목소리가 격양되었다.
"그때 안경다리 위에서 경찰이랑 대치하던 거, 몽둥이랑 괭이 들고 싸웠던 거... 내 눈엔 아직도 생생해. 무서웠냐고? 아니,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우린 그냥 사람대접 좀 해달라는 거였는데, 방송에선 우리를 '폭도'라고 하더군. 빨갱이라고 하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4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민석의 가슴속 응어리는 여전히 뜨거워 보였다.
"얼마 전에 뉴스 보니까 45주년이라고 하더군. 근데 바뀐 게 뭐냐. 아직도 그때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만신창이된 사람들, 제대로 보상도 못 받고 명예 회복도 안 됐어. 여기 땅 밑엔 아직도 그때 울분이 석탄처럼 묻혀 있을 거다."
재윤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오늘 여기 온 게 우연이 아니었네. 민석이 네가 왜 굳이 강릉 바다 놔두고 이 골짜기로 오자고 했는지 이제 알겠다."
"그래. 나도 잊고 살았어. 넥타이 매고 서울 빌딩 숲에서 살면서, 내 손톱 밑에 낀 검은 때를 지우려고 발버둥 쳤지. 근데 은퇴하고 나니까 자꾸 생각나더라. 그때 그 막장의 열기가, 그 함성 소리가...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때가 사실은 그때가 아니었나 싶어서."
민석이 창밖의 화려한 리조트 조명을 가리켰다.
"저 화려한 카지노 불빛, 저거 다 우리 선배들, 동료들이 흘린 피 위에 세워진 거야. 그래서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이 얼마나 아프고 치열한 곳이었는지. 우리 인생도 저 사북의 역사처럼, 짓밟히고 깨져도 결국은 이렇게 살아남아 증언하고 있잖냐."
민석의 이야기가 모닥불 사그라들듯 잦아들자, 방 안에는 잠시 정선 산골의 깊은 적막만이 감돌았다. 그 고요 속에서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창가 쪽에 기대앉은 진우에게로 향했다.
4. 창밖으로 어스름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정선의 산자락은 굴곡이 심했다. 진우의 삶도 저 험준한 능선과 닮아 있었다. 그는 말없이 술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의 오른쪽 다리가 테이블 아래로 깊숙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초등학교 시절, 온 동네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 열병, 소아마비. 운명은 잔인하게도 하필 진우를 지목했었다. 그해 겨울을 앓고 난 뒤, 그의 걸음걸이는 영원히 바뀌어 버렸다. 하지만 그를 진짜 괴롭힌 건 불편한 육신만이 아니었다.
지난 수십 년, 우리가 앞만 보고 달릴 때 진우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경사와 싸워야 했다. 인생의 결정적인 고비마다 그 야윈 오른쪽 다리는 서글픈 족쇄가 되었다. 대학 입시 면접장에서, 첫 직장의 신체검사 대기실에서, 그리고 사랑했던 여자의 부모님을 처음 뵙던 그 떨리는 날에도. 세상은 그의 능력보다 그의 절뚝이는 걸음을 먼저 곁눈질했다. 불이익은 차별이라는 이름 대신 '우려'나 '걱정'이라는 탈을 쓰고 그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곤 했다.
"난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웃고, 세 배는 더 노력해야 했어. 그래야 겨우 0점에서 시작하는 기분이었으니까."
언젠가 술에 취해 그가 뱉었던 말이 떠올랐다. 평생을 따라다닌 지독한 열등감, 그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70 고비를 넘긴 지금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의자 깊숙이 숨기고 있다. 정선의 굽이진 산길을 넘어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는 차창 밖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평생을 절뚝이며 넘어온 자신의 지난날을, 이 첩첩산중에 묻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날 밤, 다섯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내뱉던 이야기는 어느 한 친구만의 고유한 경험만은 아니었다. 굽이굽이 얽힌 우리 시대의 굴곡과 얽힌 개인사였기에 다들 공감할 수 있었던 이야기다. 그랬기에 순을 한 잔 마실 때마 쓰디쓴 술이 몸과 정신 깊숙이 새겨지는 느낌을 주었다. 그 술은 우리의 감춰진 상처를 위무하는 어머니 손길 같기도 했다. 때문에 우리가 나누던 이야기들은 단순한 신세 한탄만이 아니었다. 대신 그들은 수십 년 전의 대학입시와 사북, 직장과 결혼 등 굽이굽이 이어진 시간을 관통해 온 자신들의 질긴 생명력을 안주 삼아 묵묵히 잔을 채웠다. 강원도의 거센 밤바람 소리가 마치 그 옛날 광부들의 아리랑 가락처럼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5. 다섯 남자는 서로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팽팽했던 피부는 늘어졌고,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아졌다. 하지만 그 주름 사이사이에는 각자가 견뎌온 태풍의 흔적이 깃들어 있었다.
철진이 빈 잔을 다시 채우며 말했다.
"근데 말이야. 이렇게 다 모여 있으니까, 그 지독했던 세월이 그냥 안줏거리밖에 안 되네. 죽을 것 같았는데, 안 죽고 살아 있으니까 결국 여기 와서 매운탕에 소주도 마시는 거 아니냐."
"그렇지. 살아낸 게 대견한 거지. 버틴 게 이긴 거다." 영수가 맞장구를 쳤다.
민석이 잔을 들어 올렸다.
"야, 우리 정선 오는 길 봐라. 터널 지나고 굽이굽이 돌아서 결국 여기 산꼭대기까지 올라왔잖아. 우리 인생 전반전, 진짜 빡세게 굴렀다. 이제 내려가는 길은 좀 천천히, 브레이크도 밟아가면서, 경치도 좀 보면서 가자. 응?"
"그래, 이제 억지로 악쓰지 말고 살자." "상훈이 너는 주말마다 우리 집 와서 밥 먹고 가고." "영수야, 너는 건강 검진 좀 제때 받고." "철진이 너는 로또 그만 사고."
서로를 향한 타박 섞인 농담이 오가자 비로소 웃음꽃이 터졌다. 밖에는 여전히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콘도 안은 다섯 사내의 체온과 묵은 이야기들로 후끈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내일 아침이 밝아 산을 내려가면, 또다시 각자의 팍팍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빚 독촉이 있을 수도, 병원 검진 결과가 기다릴 수도, 빈집의 고독이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밤, 그들은 확인했다. 굽이치는 험한 길을 혼자 걸어온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뒤처지거나 앞서거니 하며 늘 같은 방향을 향해 걷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자, 건배하자. 굽이치는 우리 인생을 위하여." "위하여!"
다섯 개의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정선의 깊은 밤, 눈 내리는 산골짜기에 맑게 울려 퍼졌다. 유리창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늙고 지쳤지만,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