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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최악의 실패작이라 불리는 바라진스까야 전투 (Бородинская битва)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9 21:28:26

바라진스까야 전투(Бородинская битва), 일명 보르디노 전투는 1812년 9월 7일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중 하루 동안의 전투에서 가장 거대하고, 많은 희생자를 낳은 전투다. 나폴레옹이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을 감행하자 러시아군 사령관 미하일 쿠투조프는 급히 요새를 구축하고 대포 600문과 병력 12만 명을 이끌고 병력 13-20만 명과 대포 500문을 갖춘 프랑스군과 모스크바에서 서쪽으로 130km 떨어진 모스크바 강 근처 바라쥔스까야에서 전투를 벌였다. 

말을 타고 프랑스군을 지휘한 나폴레옹과 러시아 원정 최대 전투인 보로디노 전투,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쿠투조프 장군은 프랑스군을 과감한 정면 공격으로 격퇴하기로 결정하고 새벽 6시부터 정오까지 5km에 달하는 전선을 걸쳐 격렬한 총격전을 벌였다. 정오에 프랑스군 포병대가 고지에서 포를 작렬하며 전투를 유리하게 만들었으나 러시아군의 저항을 억누르기에는 부족하였다. 나폴레옹은 전투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전투 상황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바라쥔스까야 전투를 책임지고 있눈 미셸 네 장군은 나폴레옹에게 추가 병력 지원을 요청했지만 나폴레옹은 최대 동원 가능한 병력인 2만 명의 근위병과 1만 명의 신참군대 파병을 거부했다. 


쿠투조프는 가능한 모든 병력을 투입했고 나폴레옹은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오후가 지나자 양측 군대는 지쳐 포격전이 되어 해질녘까지 포격전이 계속되었고 전황이 약간 불리해졌다고 판단한 쿠투조프는 밤중에 후퇴했다. 7일 후에 나폴레옹은 모스크바에 무혈 입성을 하였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주력 중 포병들이 다수 전사하고 포탄과 화약들을 다수 소진해 군사력으로는 매우 무력화되었고 나폴레옹 또한 후일 회상하기를 이 전투가 가장 무서운 전투였다고 한다.


쿠투조프(Kutuzov)는 만약 나폴레옹과 또다시 정면 대결을 펼칠 경우에 러시아군은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휘하의 병력들에게 모스크바(Moscow)를 떠나 퇴각할 것을 명한다. 러시아 군은 처음에 리아잔스카야(Ryazanskaya) 도로를 따라 동남쪽으로 물러났다. 이들은 모스크바 강(Moskva)에 도착한 후 도강하여 서쪽으로 방향을 전환해, 구 카루즈스카야(Kaluzhskaya) 도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러시아군은 칼루가(Kaluga) 근처에 있는 타루티노 마을에 진을 치고 프랑스 군을 깊숙히 유인한다. 


1812년 10월 18일 쿠투조프는 베니히센과 밀로라도비치(Miloradovich)에게 야밤중에 2개의 부대를 이끌고 몰래 숲을 건너 약 26,000명의 병력으로 이루어진 뮈라의 군단을 공격할 것을 명했다. 어둠속에서 대다수의 병사들이 길을 잃었고 아침이 되었을 무렵 오직 올르로프-데니소프 휘하의 코사크 부대만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다. 러시아 군은 프랑스 군에 기습을 가하여 프랑스 군의 진영을 점령하고 물자와 대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러시아 군의 도착이 늦었기 때문에 프랑스 군은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러시아군은 이 때 포격전에서 피해를 입었지만 그 유명한 코사크 기병대가 프랑스 군의 배후를 기습하여 2,500명이 전사하자 러시아 군이 프랑스 군을 포위해 승리했고 나폴레옹은 마침내 모스크바에서 퇴각한다. 타루티노에서 러시아군이 탈취한 포는 전부 38문 정도이다. 이는 주목할 만한데 당시의 전투에서 그 어느 쪽도 한 번의 전투에서 이렇게 많은 포를 탈취 당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러시아 민중들은 이 전투야말로 전쟁의 흐름이 러시아 쪽에 유리하게 넘어간 것을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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