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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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TV에 나오는 발굴지는 자포리제 시(市) 드네프르 강 서쪽이다. 음.. 이 발굴을 보니 15년 전 나도 풋풋했을 때 이곳에서 발굴했던 생각이 난다. 2007년 내가 우크라이나 키예프 세브첸코 대학에 단기유학 왔을 때, 나는 고고분과연구소 3팀 소속이었다. 그 때 키예프 고고분과연구소 팀에 15팀까지 존재했는데 이들을 모두 우크라이나 고고학연구팀이라 하여 우크라이나 땅에서 발굴되는 유적들을 총괄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자포리제 스키타이 쿠르간 발굴 현장, 출처 : 우크라이나 키예프 국립역사박물관에서 필자의 직접 촬영
마침 나는 3팀 소속이었는데 3팀은 드네프르 강 하구 지역 발굴을 주로했다. 연구소에 묶여서 선배들 옷과 양말도 빨고 요리도 하고 고고장비 챙겨서 들고 다니는 것도 우리 같은 새까만 후배들 몫이다. 그러고 나서 연구를 한다. 선배들과 교수들은 연구자료, 유물목록 검토, 발굴 포인트 검토, 프로젝트 회의, 그리고 새로운 견해를 위한 발표보고서 작성... 후.. 고고학자는 필드에서도 뛰지만 그런 학문적 내구성도 갖추어야 한다.
지금이야 내가 그들 위치에 서있지만 그때는 아주 새까만 후배였기에 선배들과 교수들 수발드는거 만만치 않았다. 서방 국가라서 자유스러울줄 알았지? 그러나 현실은 한국보다 규율이 쎄다. 우리는 자포리제 시(市) 드네프르 강 동쪽에서 작업을 했다. 지금 그곳은 쿠르간 14기가 몰려 있는 곳이다. 서쪽은 평지인데 비해 동쪽은 숲이 많아 좀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쿠르간의 뚜껑을 열고 중간 부분을 해체해야 한다. 아예 기축이 붕괴되지 않도록 판자를 대고 망치로 두드려 박아주며 안쪽에 호석이라 하여 돌을 채워줘야 한다.
그런데 비상이 걸린게 새끼 곰 두 마리가 쿠르간으로 뛰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새끼 곰이 있다는 것은 어미 곰이 근처에 있다는 것이다. 약간 높은데서 작업하던 선배들이 신호를 준게 역시나 어미 곰이 같이 발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우리는 모든 장비를 다 버리고 잽싸게 도망갔고 쿠르간 주변을 해자 형태로 둘렀기 때문에 곰들은 거기까지 쫓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 더 대형참사가 벌어진건 곰들이 장비 위를 깔고 눕고 뒹굴고하기 때문에 고고학 장비들 거의 다 아작났다. 값도 한 두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를 어쩐다...
신나게 뒹굴던 이 녀석들은 30분 동안 발굴 현장을 초토화시킨 뒤 숲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우리는 초토화된 장비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고 발굴도 중단됐다. 그 다음 학교 측에 예산을 신청했지만 4개월 후에야 책정되어서 다시 현장에 내려가 발굴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곰이 못오게 철조망까지 쳤는데 무쟈게 운이 안좋은게 거기에 새끼 곰 한 마리가 낑겨 죽었고 하필이면 세계 동물 보건 기구(World Organization for Animal Health)에 속한 기자가 그 장면을 사진 찍어서 홈페이지에 올리고 고고학팀이 동물학대의 만행?을 저질렀다며 우리를 한 달 내내 욕하고 다녔다. 결국 그 사태가 일파만파되어 발굴을 영원히 중단되고 총지휘하던 교수님은 동물학대자로 2년 6개월 동안 재판에 끌려다니며 혹독한 개고생을 해야했다.
지금에야 추억? 이다라고 생각하고 넘길 수 있겠지만 참 그 때 재수가 없었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