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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파나마 운하를 노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 2편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9 21:42:52

- 초대 파나마 혁명 최고지도자 오마르 토리호스(Omar Torrijos, 1929~1981)의 생애와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미국과의 대척관계

오늘은 파나마 혁명지도자이자 영웅인 오마르 토리호스(Omar Torrijos, 1929~1981)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오마르 토리호스의 본명은 오마르 에프라인 토리호스 에레라(Omar Efraín Torrijos Herrera)로 파나마에서 1968년부터 그가 사망한 1981년까지 13년 동안 파나마를 통치했던 인물로, 그가 대통령 지위를 거부했기에 정식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파나마의 수장으로 통치한 인물로 미국과의 파나마 운하 협정을 타결지어 파나마 운하의 통제권을 확보함으로써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한 인물이다. 오마르 토리호스는 파나마의 산티아고(Santiago)라는 도시에서 1929년에 태어났다. 그는 1945년 엘살바도르로 건너가 산살바도르에 있는 군사학교에 입학했고 1950년에는 미국과 베네수엘라에서 군사에 관련된 공부를 하면서 장교로 임관했다. 당시 파나마에는 아리아스(Arias) 가문이 통치하고 있었으며 1940년부터 아르눌포 아리아스(Arnulfo Arias)가 대통령으로 독재를 벌이고 있었다. 아리아스 가문은 아르눌포의 형인 하르모디오 아리아스(Harmodia Arias)가 1931년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이후, 거의 40년에 가깝게 독재했던 가문이다. 

파나마 혁명 최고지도자 오마르 토리호스(Omar Torrijos, 1929~1981),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특히 아리아스 가문은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한 가운데 위치한 파나마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며 지정학적으로 최고 요충지에 속한다. 이 때문에 미국은 1903년 콜롬비아로부터 파나마를 분리 독립시켰다. 그리고 그 지원 대가로 파나마 운하 건설권과 운영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 뒤 파나마 운하는 파나마 사람들에게 반미 감정의 원인인 동시에 파나마 민족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파나마 국민의 이러한 감정을 억제시키기 위해 미국은 친미 지도자를 후원했다. 그 대표적인 가문이 바로 아리아스 가문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내정간섭 등의 시기에 오마르 토리호스는 1952년 파나마 국방경비대 소위로 임관되어 파나마로 돌아왔다. 1959년에는 육군 준장으로 승진했으며 그 또한 해당 기간 동안 미국 CIA의 극진한 보호를 받아왔다. 그러나 과도한 미국의 간섭에 지친 아르눌포 아리아스 대통령은 비밀리에 쿠바와 접촉을 시도했고 1966년에는 몰래 전용기를 타고 아바나에 가서 피델 카스트로와 접선하는 것이 CIA에 의해 보고됨에 따라 당시 미국 대통령인 린든 B. 존슨(Lyndon B. Johnson, 1908~1973)이 아리아스 대통령에 대한 제거를 지시하게 된다. 

이에 따라 1968년 10월 아르눌포 아리아스 대통령을 타도하기 위해 CIA는 파나마 국방 경비대를 움직였다. 파나마 국방 경비대는 쿠데타를 일으켰고 오마르 토리호스를 중심으로 아리아스 정부를 뒤엎었다. 이 쿠데타의 공로를 인정받아 토리호스는 파나마 정부 수반과 파나마 혁명 최고 지도자라는 직함을 얻어 새로운 군사위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등을 업었음에도 토리호스는 파나마 민족주의를 내세워 여당의 이름을 파나메니스타(Partido Panameñista)로 바꾸었고 일방적인 친미 노선과는 거리를 두었다. 더불어 균형외교를 위해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으며, 파나마의 고질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지개혁 및 교육예산과 시설확충, 일자리 창출과 인프라 확충을 위한 건설사업을 통해 빈민층을 대대적으로 구제하고 파나마를 국제 금융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금융산업 육성책을 시행하여 파나마의 경제를 발전시키게 된다. 그의 이런 영웅적인 행보는 미국의 불만을 샀지면 대통령인 린든 B. 존슨이 베트남 원정을 승인하면서 베트남 전쟁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파나마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토리호스도 여타 중남미의 독재자들과 같이 독재정치를 펴나갔다. 토리호스는 파나마의 좌파 운동과 노동운동, 학생운동을 억압했으며 야당을 불법화하면서 야당 진영의 주요 인사들을 고문하거나 추방시켰다. 그리고 일부 정적들은 살해하기까지 했는데 이와 같은 식의 탄압으로 죽거나 실종된 사람이 200명에 달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토리호스는 미국과의 파나마 운하 반환 협정을 타결지어 파나마의 숙원이었던 파나마 운하의 통제권을 파나마 정부가 가져가게 만들었고, 이와 같은 성과는 그가 도입한 빈민 구제정책과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키면서 파나마의 민족적인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사실 파나마 인구로 볼 때 1970년을 기준으로 150만 명 내외로 매우 적었다. 이에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멕시코, 페루와 같은 영토도 크고 인구가 많은 나라들처럼 수입 대체 산업화를 도모하기에는 매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소비경제의 중심이자 미국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파나마 운하가 있었기 때문에 경제 성장의 토대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1978년 10월 선거에서 토리호스는 군부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사실상 파나마의 국가 지도자였지만 주변인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토리호스는 파나마의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을 사양했기 때문에 그가 통치한 13년은 파나마 대통령의 공백 기간으로 남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토지 개혁을 통한 빈민 구제정책 및 교육정책을 통해 빈곤율과 문맹률을 감소시켜 놓았고, 미국을 일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쿠바와도 잘 지내면서 줄타기 외교를 잘해왔다. 그러면서도 운하 반환 계획으로 카터-토리호스 조약으로 완전히 양도 받음에 따라 파나마의 국부를 늘려 놓는데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반민주적 행보를 보이며 야당 및 민주인사들을 철저히 탄압했다. 노동운동과 야당을 탄압하고 정적과 야당인사, 신부 등 200여 명이 실종되거나 살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오는 그의 공적으로 덮여졌고 한국과 비교해볼 때, 토리호스는 "파나마의 박정희"와 같은 인물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1981년 군부대를 시찰하는 도중 정글 지대에서 비행기가 갑자기 폭발하는 사고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매우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그래서 그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한 때 자신이 미국의 비밀 정보기관에서 일했다는 존 퍼킨스(John Perkins)가 자신의 저서 <경제 저격수의 고백(Confessions of an Economic Hit Man)>에서 토리호스가 미국에 의해 암살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아 파문이 일기도 했다. 존 퍼킨스는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오마르 토리호스는 경제 자객들의 회유가 실패하자 ‘자칼’이 동원되어 제거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당시 1970년대에는 미국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칠레, 볼리비아의 군부를 도와 군부 독재정권을 들어서게 만들었고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지도자들을 의문사로 처리해 버린 전적이 있었던데다 1980년대에 와서도 미국이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 여러 국가들에서 많은 공작을 했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전혀 설득력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토리호스를 제거했다치더라도 새로 들어선 파나마 민주정부를 적극적으로 도와준 것 또한 아니었다.

물론 토리호스의 죽음에는 의문이 많다. 이후 마누엘 노리에가(Manuel Noriega,1934~2017)가 오마르 토리호스의 후임이 되었지만 그 또한 미국의 도움을 받아 토리호스를 승계했다. 노리에가를 승계시킨 것만 보더라도 토리호스의 죽음은 미국과 관련 있음이 확실시해 보인다. 정작 토리호스를 승계한 노리에가는 토리호스만큼의 역량을 갖추지 못한 지도자였다. 그는 파나마 대선에서 부정선거를 일으키며 파나마 군부 정권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를 깎아먹히게 되었고 결국 이러한 부정선거 사태는 오히려 미국과 동맹국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그는 미국에 의해 강제로 축출당하게 된다. 당시 1990년대 초반에 오마르 토리호스 공항이라 붙여진 파나마 국제 공항이 파나마시티 공항으로 격하되었기도 했지만 노리에가를 대신하여 집권한 기예르모 엔다라(Guillermo Endara, 1936~2009) 정권이 노리에가보다 더 못한 역량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1994년 총선에서 민주혁명당이 재집권했다. 이 때 오마르 토리호스에 대한 평가가 다시 올라가고 파나마시티 공항은 오마르 토리호스 국제공항으로 본래의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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