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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동인도회사와 동인도회사 깃발이 각 국가의 국가로 변모한 사연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9 21:43:50

영국 동인도회사 관련 연구 도중, 홍차 무역과 동인도회사의 영향을 받은 것들을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내용이 있어 올려 본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문장은 상당히 빈번하게 교체되었으며, 지역에 따라 통일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문장은 하노버 왕조 이래 사용되어 온 영국의 국장을 모방한 것으로 단순히 회사의 상징인 엠블럼(Emblem)일 뿐만 아니라 군대의 지휘를 상징하는 코트 오브 암즈(Coat of arms)였다. 이는 당시 동인도회사가 허가 받았던 독자적인 대국(對國)의 외교권, 강화권, 선전포고권, 징병권, 사관 임면권 및 교전권 등을 표상 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동인도회사 상인들이 소속을 나타내거나 서류에 날인하는 상표(Merchant mark)가 존재했다. 

인도 꼴까타에 존재한 영국 동인도회사 & 영국 인도령 총독부,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상표는 1600년 영국 왕실의 재가를 받았던 당시부터 사용되었는데, 하트 문양의 안에 VEIC, 통합 동인도 회사(V(U)nited East India Company) 라고 쓴 것을 4분하거나, V를 빼고 동인도 회사의 약칭인 EIC를 쓴 것을 3분하는 등의 모양이 사용되었다. 또한 위에는 신비한 4 표식(Mystical Sign of Four), 또는 머큐리의 지팡이(Staff of Mercury)라고 불리던 4자 표식을 달았는데, 이는 중세 유럽에서 사용하던 기독교적 상징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알파벳 X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이 상표는 동인도회사에서 생산하는 우표나 인지, 주화의 도안으로도 사용되었다. 한편, 동인도회사의 사기(社旗)는 영국의 국기인 유니언 잭에 붉은색과 흰색 줄무늬를 추가한 형태로, 사기의 줄무늬 개수가 13개인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서양에서 13은 불길한 숫자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음에도 당시 동인도회사의 주주들 중에 이신론적 상징을 추종하는 프리메이슨 급 인원들이 많았고, 이들은 13을 오히려 신성한 수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속설이 있다. 영국의 국기인 유니언 잭의 도안이 바뀔 때마다 사기의 도안도 자연스럽게 변화했는데, 17세기에는 잉글랜드 국기인 붉은 십자만을 합친 도안과 1707년부터는 스코틀랜드의 성 안드레아 십자를 합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도안이, 아일랜드를 합병하고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출범한 1801년부터는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 십자가 추가된 도안이 사용되었다. 동인도회사의 사기는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와 전체적인 도안이 유사한데, 본래 성조기는 미국 독립 전쟁 초기에 사용되었던 13개 식민지의 그랜드 유니언 기에서 유니언 잭이 있던 부분이 별로 대체된 것이다. 흰색은 순수와 무결성을 설명하고 있다. 

빨강은 강인함과 용맹을 뜻한다는 해석은 나중에 미국 연합회의(연방 의회의 전신)에서 이를 공식 승인하는 과정에서 찰스 톰슨(Charles Thomson) 등이 추가한 의미이다. 그랜드 유니언 기는 위쪽에 줄이 7개, 아래에 줄이 6개이고 동인도 회사기는 위쪽에 6개 아래에 7개로 비율이 다르다는 것과 배색의 차이만 제외하면 전체적인 디자인과 줄무늬 개수가 같다. 물론 미국 정부에서 그랜드 유니언 기를 동인도회사 깃발에서 차용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지만 동인도회사기에서 유래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도네시아와 모나코의 국기와 같이 극히 간단한 도안인 경우 우연의 일치로 비슷한 국기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로 복잡한 깃발을 동시대에 우연의 일치로 제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조지 워싱턴에게 영국 동인도 회사기를 워싱턴 군대의 군기로 채택하자고 말한 기록도 남아 있다. 

사실 미국 독립전쟁 초창기에는 식민지인들은 영국에서 완전히 독립하기보다는 자치권의 확대를 목표로 한 것에 가까웠다. 이 당시 영국 동인도회사는 매우 규모가 거대해져 거의 국가 안의 국가처럼 운영되고 있었는데 독립전쟁 초기 아직 영국에서 완전히 독립할 생각까지는 없었던 식민지인들은 이와 같은 국가 안의 국가에 준하는 동인도회사의 체제를 모방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당시 식민지의 정치인들이 동인도회사의 운영 구조를 공화제의 모델 중 하나로 보았다는 설도 있다. 이는 의외로 나타나고 있지만 당시 동인도회사 또한 영국 정부의 증세로 인해 손해를 많이 봤고 마찬가지로 영국 본국 정부의 증세로 인해 반감을 가지게 된 식민지의 상인과 자본가들 중에서도 동인도 회사에 일종의 같은 마음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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