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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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쿠다르는 강력한 정치적 권한의 획득과 더불어 당나라에 대한 맹목적 충성으로 그에 대가로 당나라에 패배한 투르크 종족들의 생사여탈권을 갖게 되었다. 투르기스 족의 영향력은 향상된 것같이 보였으나, 안서도호부의 보호 하에 있었고 이에 더욱 중요한 점은 다른 호전적인 투르크계 종족들에 비해 중국에 굴종하고 그에 대한 이득을 챙기면서 부족을 이끌어 나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천산산맥 아래로 지나가는 실크로드의 유목민, 출처 : 한국일보
물론 당나라에서 보내진 정착민인 한족에 대한 보호 권한도 그렇고 투르기스에 의해 결성된 투르겐치 조직은 다른 서돌궐의 부족 회의 조직들에 비해 상당히 결속력이 떨어졌고 투르겐치 조직에 속한 부족들 또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중앙아시아 스텝 지역에서 당나라의 영향력은 강력하였으며, 실크로드를 이용해서 중앙아시아와 장안을 왕래하는 대상들의 수가 상당수 증가하였다. 그들은 주로 페르시아와 소그드 출신의 장사치들이었다.
페르시아인 중 사산 왕조로부터 대상으로 대우를 받으며 상당한 명성을 떨치던 케르만 상단은 대부분 사산 왕조 뿐 아니라 시리아, 비잔틴 제국의 인정을 받던 상단이었으며 다량의 선박까지 소유했던 최고의 거상이었다. 그들 케르만 상단은 648년부터 투르기스와도 직접적인 거래를 했었고 투르기스 족의 보호 아래에서 처음으로 스텝 로드를 횡단하게 된다. 이들 케르만 상단은 당시 스텝 로드를 통과하여 바이칼 호수까지 가게 된다.
케르만 상단의 주인인 아르시드 케르만(Alsid Kerman)은 바이칼 호수를 통과하면 중국 북부를 거쳐 장안으로 돌아오는 길목의 일부분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지역 개발에 있어서 바이칼 호수를 거쳐 장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상업적인 부분에 있어 상당히 큰 모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는 소규모 무역상들의 경우, 가능한 부분이지만 케르만과 같은 대형 무역상의 경우, 치안적인 부분에 있어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고 대규모의 무역상들 또한 이곳을 지나지 않기 때문에 적절한 도움을 받기 용이하지 않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