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쓰이는 '페르시아만'이라는 명칭은 역사적으로 쓰인 기간이 매우 길다. 1960년대까지는 아랍 국가들 또한 페르시아만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그러나 아랍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현재는 이란을 제외한 주변국들이 모두 '아라비아만'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라비아만이라는 명칭의 역사는 매우 짧지만 명칭 관련 문제로 볼 때 이란이나 걸프 연안에 해당되는 당사국 사이에서 무척 민감한 것이기 때문에 이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단 세계적으로 볼 때 페르시아만이라서술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편이다. 특히 아라비아만이라고 하면 이미 아라비아해가 근처에 존재하기 때문에 혼동의 여지가 있어 왠만하면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걸프만 일대에서 이란 미사일에 공격받은 미국 & 이스라엘 정유소, 출처 : Al Jazeera
가장 깊은 곳이 이란 쪽에 있으며, 약 110m이지만, 연안과, 아라비아반도 쪽으로 갈수록 얕아져서 30m 정도에 불과하기에 "만"의 영문식 표현인 Gulf를 붙여 이 지역에 대한 고유명사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곳은 모두들 알다시피 인근에 산유국들이 매우 많고 원유 수송의 길목에 해당해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걸프만과 그 해안 지대는 단일 규모로는 가장 큰 원유 산지로 이라크, 이란,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주요 산유국들이 이 근처에 몰려 있는 실정이다. 석유 뿐만 아니라 천연가스도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으며 전 세계 확인 석유 매장량의 약 60~65%가 집중되어 있다.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1/4을 이 지역에서 생산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막대한 양의 원유가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영국과 미국 등 서구 열강들은 아라비아 반도와 이란 등, 걸프 지역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정치적, 군사적 패권을 확립했다. 이 지역을 최초로 장악한 서양 열강은 포르투갈이었고, 이후에 영국으로 넘어갔다. 영국이 이 일대를 식민지로 삼으며 중동의 정치제도와 경제 관계를 영국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 맞게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세기 서구 열강이 필요했던 자원들을 공급하고 충족시켜주며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종속적이면서도 자원을 판매하고 돈을 받는 비즈니스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 1953년 미국과 영국이 미국 CIA를 동원한 쿠데타를 일으켜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을 축출했고, 이들 국가들의 이란 석유 이권을 노획물로 분배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강대국이 군사력을 동원하여 이란의 석유 자원을 강탈한 가장 노골적인 사례인데 이란인들에게 이 사건은 씻을 수 없는 역사적 상흔으로 남았다. 당시 미국 NSC가 주장하기론 이란의 석유 자원의 장악이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에 직결된다고 주장하면서 걸프 지역을 영유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미국 석유회사들을 국가 정책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해서 때에 따라 군사력을 동원했고 이를 이란-이라크 전쟁, 제1, 2차 걸프전쟁 등을 통해 걸프의 지배력을 강화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은 유가 등락을 주도하면서 세계 국가들의 경제력을 좌지우지 했다. 그런데 이란은 이제 더 이상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걸프만 일대, 미국의 지분이 걸린 유전과 석유저장소를 타격했고,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를 가속화 하면서 세계 시장을 흔들었다. 특히 미국의 타격이 컸기에 미국은 전반적으로 이란에 대한 전쟁 종료를 선언했지만 호르무즈만큼은 전력을 쏟으려 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여러 척의 군함과 약 5,000명의 해병대 및 해군 병력으로 구성된 상륙준비단(ARG)과 해병기동부대(MEU)를 중동으로 파견을 결정했다 한다. 일본에 배치된 상륙 강습함인 'USS 트리폴리 함'과 여기에 소속된 해병대 병력들이 현재 중동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일부 해병대 병력은 이란 관련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이미 중동에 배치되어 있는 상태다. 해병대에 이어 지상군 투입은 거의 시간 문제로 보여지며 조만간 호르무즈 일대에서 대격전이 벌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