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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트에서 학살극을 자행한 이스라엘, 오시비엥침의 추모를 할 자격이 있는가?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21 00:21:59

레반트 지방, 지금의 이스라엘-레바논-시리아 지역은 과거와, 현재, 미래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충지다. 고대로부터 레반트 땅을 지배하는 자들은 동방과의 가장 중요한 무역, 군사적 거점인 시리아 지역과 최대 곡창 지대인 이집트 나일 지역을 육로로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라고 보았다. 이는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소아시아 지역에서 카프카스를 지나 러시아로 들어가는 길목 또한 레반트 지방이며 육로로 이집트를 통해 아시아의 물류가 아프리카로 들어가는 길목 또한 레반트다. 



폴란드 비르케나우 절멸 수용소,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그리고 지중해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해상 무역의 거점 중 하나가 레반트라 볼 수 있겠다. 이 땅은 고대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절대불변의 교통, 경제, 산업, 지정학적인 요충지로 나타난다. 게다가 아랍과 유럽이 문화적으로 교류했던 회랑도 레반트 땅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러나 해당 영토가 유태인들이 애초부터 기원한 땅도 아니다. 성경에서는 이집트의 노예로 있다가 이스라엘로 들어와 정착했다하며 이미 그 땅은 가나안계의 땅이다. 


<구약성경>과 <토라>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가나안계 사람들을 씨도 남기지 않고 하늘에 계시는 그분의 명을 받아 닥치는데로 살육했다 한다. 원주민들의 살육을 끝낸 유태인들은 그 땅에 자리 잡아 왕국 시대를 거쳤고 아시리아 - 신바빌로니아 -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 헬레니즘 제국의 지배 시기를 거쳐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니까 자주 민족으로써 왕국을 건설해 그 땅에 자주권을 행사할 때보다 오히려 남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가 더 길었던 것이다.

 

로마는 5현제 중의 하나인 하드리아누스가 유태인의 디아스포라를 명하게 된다. 이는 유태인들의 연이은 반란으로 인해 그들의 와해시키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다. 서기 132년부터 135년까지 유태인의 수장인 바르 코크바 반란이 실패한 후, 모든 유태인들은 로마 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었고, 일부는 유태의 영토 밖으로 추방되기도 했다. 로마 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디아스포라를 겪으며 전 세계를 떠돌게 된 유태인과 팔레스타인 지방에 남은 토종 유태인들로 나뉘게 된다. 


토종 유태인들은 레반트 지역의 토종으로 살았지만 1,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며 점차 이슬람에 동화되었다. 특히 혈통보다는 종교와 언어가 정체성을 규정하는 아랍인의 특성상 동화된 유태인들 대부분 자신의 고유 종교인 유태교를 버리고 무슬림이 되었다. 이처럼 이교도에 대한 직간접적 꾸준한 개종 시도로 인해 토종 유태인들은 아랍인이 되었다. 이는 온갖 디아스포라를 겪으며 세계를 떠돌아 다니는 유태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반트 지방에서 자신들의 정체상을 지키며 살아갔던 유태인들은 극히 소수가 되었다. 로마 제국은 고대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을 가장 많이 적대하고 괴롭혔던 필리스티아(Philistia)라는 이름을 따서 이 지역의 이름을 시리아 팔레스티나로 바꾸었다. 필리스티아(Philistia)는 성경에서 "블레셋"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이들 필리스티아(Philistia)와 유태인은 여호수아에 의해 이집트에서 현 이스라엘 땅에 정착할 때부터 서로 대적해왔다. 현재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및 레바논에 대한 감정, 서로 간의 종족 멸절과 같은 끔찍한 상황은 언제든지 나타났었던 것이다. 


필리스티아는 여호수아 시대부터는 이스라엘의 정복 목표에 들어갔지만 이스라엘은 끝끝내 필리스티아를 정복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로마의 디아스포라 명령 이후, 유태인들은 각지로 흩어지만 그 땅은 필리스티아 인들이 대대적으로 장악하고 살았다. 이들은 시간이 흘러 무슬림으로 개종했고 오늘날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으로 분류되어 남았다. 10년 전 오늘, 내가 폴란드 크라코프에서 야겔론 대학의 시간강사로 있을 때, 시간 내서 오시비엥침(Oświęcim)을 다녀왔는데 여긴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Birkenau) 수용소가 있다. 


비르케나우에서는 나치에 의해 유태인, 폴란드인, 집시, 소련군 포로 및 동유럽 민간인들을 포함해 약 108만 명이 학살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휴전했지만 이스라엘은 레바논, 가자, 시리아 일대에서 학살을 자행했다. 마치 나치 독일에 당한 학살을 보복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나는 10년 전에 비르케나우를 다녀와서도 그다지 유태인을 추모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유태인들이 당시에도 중동에서 하는 학살 행위들을 보더라도, 죽은 아랍인들을 생각하면 이곳의 유태인들에게 별로 추모하고 싶지 않아졌다. 나에게 있어, 이곳은 유럽 현대사의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관광지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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