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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매우 익숙한 픽토그램, "변기 커버 위에 올라서지 마세요"의 유래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21 12:42:03

베트남의 화장실이나 세계 각 곳의 화장실을 가면 반드시 보게 되는 금지조항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변기 위에 쪼그려 앉아 용변 보는 것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만 이게 베트남 문화가 아니라 중국의 몹쓸 화장실 문화 때문이라 한다. 주로 저렇게 변기 위에 쪼그려 앉아 용변 보는 행위 주범의 90%가 중국인이라는데 중국에 대한 혐오 정서가 대단한 베트남은 화장실마다 변기 위에 쪼그려 앉아 용변 보는 행위를 그림으로 그리든, 사진이나 픽토그램으로 남기든 하여 적극 금지하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의 공중화장실에 붙어 있는 픽토그램,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중국에서는 청나라 시기, 우리나라도 그랬듯이 각 집집마다 큰 독 위에 나무 판자 두 개를 붙인 간이 화장실이 존재했다. 독에 인분이 어느 정도 쌓이면 분부(粪夫)들이 가져가 도시 밖 농민들에게 비료로 팔았다. 이 때 비료로 팔고 받은 것이 분표(粪票)다. 분표란, 인분과 맞바꿀 수 있는 일종의 티켓으로 화학비료가 없었던 농민들에게 필수품이나 다름 없었던 매우 중요한 티켓이었다. 중화민국 시기 후반들어 1940년대에 법정 화폐 가치가 급락하면서 분표(粪票)가 금이나 각국 통화로 언제든 바꿀 수 있는 화폐가 되기도 했다. 1945년 분표 1장의 가치가 45위안에 달했을 정도였으며 1948년에 이르러서는 분표 1장이 무려 70만 위안까지 치솟을 정도로 가격이 상당했다고 한다. 

당시 공공장소인 차관이나 식당 등에는 건식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손님들에게 따로 돈을 받지 않고 인분을 팔아 이익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화장실 수가 너무 부족했고 시설도 열악했다. 그로 인해 일반 백성들부터 고관대작까지 아무데서나 대소변을 보는 습관이 있었다. 더불어 도시에 하수도 시설이 부족해 거리에는 소, 말 같은 가축은 물론 노인, 아이의 대소변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은 지금도 아이들 엉덩이 부분의 바지를 도려내고 엉덩이를 드러낸 채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 문화의 시작은 청나라 시기 때까지 전 근대적으로 위생에 대한 관념이 바로 서지 않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같은 문화는 21세기의 현재에도 고착되어 왔다. 

1862년 상하이에 콜레라가 창궐했다. 비위생적인 환경 탓이 컸다. 상하이에 있던 외국인 선원과 사병들의 질병 사망률이 12%에 달했다. 홍콩의 6배였다. 이 때부터 콜레라 사태로 조계지에서 유럽의 경험을 살려 위생에 각별히 신경쓰기 시작했다. 1863년 상하이 조계공부국은 분예고(粪秽股)를 설립해 조계지 내 인분과 쓰레기를 전문적으로 처리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864년, 중국 최초의 현대식 공중화장실이 생기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하이 조계지 밖 화장실은 여전히 더러웠다. 심지어 물로 내리는 화장실이 아니었기에 그저 공용 '뒷간' 같은 개념이었다. 1928년 상하이시는 55개의 공중화장실을 설치하려 했으나 7년이 지난 뒤 18개를 겨우 완공했을 뿐이었는데 이 같이 진행이 늦어진 것은 부족한 예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정부가 세운 공중화장실보다는 민간 공중화장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1945년 상하이 공중화장실 중 민간 소유의 비중이 40%에 달했으나 2년 뒤에는 60%까지 치솟았다. 인분 가격이 매우 높아져 민간 화장실이 돈이 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웬만한 수익형 부동산 뺨을 치면서 자신의 공중화장실을 갖는 것이 모든 이의 꿈이었다. 중국 국민당 혁명 시기 군대 참모총장을 지냈던 리징룽(李镜龙)도 공중화장실 사업으로 떼돈을 번 인물이었다. 그만큼 화장실은 일반 서민들이 이용하기에는 매우 비싼 시설이었다. 당시 중국 도시에서 인분 사업이 워낙 돈이 되다 보니 조직 폭력배들이 공중화장실을 대거 장악하기도 했다. 심지어 주변 상가와 민가로부터 인분을 사 모으거나 환경 미화원이 옮기는 인분을 강탈하기도 했다 한다. 1949년 중공이 수립된 이후에는 국가가 공중화장실의 건설과 관리를 맡게 된다. 기존의 민간 화장실들도 국가 소유가 되면서 인분 사업이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만족할만큼 시설이 개선된 건 아니었다. 중국은 공중화장실 관리에 그리 큰 예산을 투입하지 않는다. 당장 화장실 관리인의 월급만 봐도 2000위안(약 33만원) 수준이다. 심지어 소도시는 몇백위안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니 21세기의 현대 시대에 이르러서도 아무데서나 용변보는 행위는 해소되지 않은 원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중국 또한 이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화장실도 많이 짓고 공용화장실의 가격도 내렸으며 아예 무료 화장실도 만들어 놓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문제는 화장실 문화에 있었다. 악취의 주범이자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보는 화변기는 여전히 중국 화장실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화변기는 양변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악취가 더 난다고 한다. 과거 화변기 위주였던 일본도 양변기로 대체하고 나서 공중화장실이 훨씬 청결해졌다. 그러나 그 화변기에 적응이 된 중국인들은 전 세계 관광지에서도 양변기 위에 올라서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본다. 

그 바람에 변기 커버가 파괴되고, 지저분해져 양변기를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베트남에 중국인들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현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베트남 정부에서도 각 화장실마다 그림으로 그리든, 사진이나 픽토그램으로 남기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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