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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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루리아는 주로 고대 로마와 관련하여 언급된다. 로마가 왕국이었던 시절에는 에트루리아가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했는데 로마 국왕 가운데 5대왕부터 7대왕까지 3명이 에트루리아계 혈통이었으며, 실제로는 더 많았다는 주장도 존재하고 있다. 어쩌고 보면 로마는 그저 라틴 족의 도시 가운데 에트루리아에 가장 충성하는 도시 정도로 보기도 한다. 이에 에트루리아와 교류가 굉장히 활발히 진행되어 로마 문화에 에트루리아의 색채가 짙게 베이게 되었다. 이에 대한 일례로 로마의 대표적인 복식으로 인식되는 토가도 에트루리아인들의 의상에서 유래되었고, 이름 짓는 법도 에트루리아의 작명법에서 유래했으며 아치형 건축도 에트루리아에서 먼저 시작된 것을 로마 인들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로마가 강성해지면서 에트루리아의 도시들을 세력으로 압도하게 되었고, 결국 에트루리아의 도시들은 차례대로 로마에 복속되어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으며, 이후 시간의 경과에 따라 로마에 동화된 것으로 보인다.

고대 로마 시(市) 예상 조감도 모듈, 출처 : 이탈리아 로마 고고학연구소
그러나 로마인들은 에트루리아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만큼 에트루리아 문화를 상당히 존중한 편이었고 특히나 점술 등에 관해서는 상당한 후대에 이르기까지 로마 인들이 에트루리아로 유학하기도 했으며 그들의 철학 체계와 로마와의 차이를 명확하게 인식했다. 여러 출토 물들과 기록을 고려했을 때, 에트루리아에 대해서 로마는 다른 동맹체보다도 좀 더 특별하게 인식한 것 같기도 하다. 고대 로마의 유명한 귀족 가문 중 하나인 리키니우스(Ricinius), 트레보니아누스(Trevonianus), 케이오니우스(Keionius) 같은 공화정, 제정 시대 귀족 가문들이나 명성이 높은 정치인, 장군 중 에트루리아계가 상당수 존재한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와 함께 1차 삼두정치의 한 축이었던 크라수스, 옥타비아누스의 친구로 공화정 말기, 제정 초기의 대표적인 명장으로 유명한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Marqus Bybsanius Agrifa), 아우구스투스 시대 동안 사실상 문화부 장관 역할을 한 가이우스 킬리니우스 마이케나스(Gaius Kilinius Maicenas), 로마 역사상 최악의 간신이자 권신 세야누스(Seyanus)가 에트루리아 혈통 로마인 중 유명하다.
로마의 황제 중에서는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Maequs Salvius Auto), 루키우스 베루스(Lucius Publius Verus), 푸피에누스(Pupienus),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Trevonianus Galus),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갈리에누스(Galienus) 등이 모두 에트루리아 혈통이며,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us Phius) 황제의 외조부 아리우스 안토니누스(Arius Antoninus) 역시 에트루리아계 로마인이다. 이에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가 에트루리아 계통이라고 한다. 베르길리우스의 전체 이름이 푸블리우스 베르길리우스 마로(Publius Vergilius Maro)인데 그의 성 마로가 에트루리아 형식의 이름이라서 베르길리우스는 고대 에트루리아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여겨지기도 하다. 전승에 의하면 베르길리우스 본인 스스로도 종종 자신을 에트루리아계라고 밝혔다고 한다. 로마인들의 전설에 의하면 로마의 건국자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라고 여겨진다. 형제의 외가는 알바 롱가(Alba Ronga)의 왕가이며 아버지는 군신 마르스(Mars, 또는 아레스)였고, 알바 롱가의 왕은 트로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트로이 측의 영웅 아이네이아스의 후손이고, 로마가 위치한 라티움 지방은 라틴족과 트로이 출신들이 결합한 곳으로 이해되었다.
때문에 후일 로마인들은 스스로의 조국을 재건되어진 트로이로 여겼다. 물론 고증 상으로는 별 의미가 없고, 자신들의 역사가 그만큼 유구하며 문명의 역사도 오래되었다는 선동에 가까운 상황이다. 정복한 지역으로만 본다면 후대의 로마가 훨씬 더 거대했다. 다만 로마가 라틴 인도 아니고 그리스인도 아닌 트로이인의 후계를 자처했다는 점에서, 후일 게르만 인들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고, 슬라브 인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고, 투르크 인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는 사태는 그 나름대로 로마의 유구한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리비우스에 의하면 트로이가 멸망한 뒤, 살아남은 두 트로이의 왕자들이 포로로 잡혔고 이 두 왕자가 그리스에 우호적이었던 것을 기억했던 그리스 인들은 이 두 왕자를 이탈리아에 정착하도록 도와주었다. 이 두 왕자 중 하나는 아이네이아스였는데 그는 중부 이탈리아에 오게 되었고 이 때 알바 롱가라는 도시의 왕이었던 라티누스가 아이네이아스의 인품에 감복하여 그를 사위로 삼은 뒤, 자신이 죽게 되자 왕좌를 물려주었다고 한다.
알바 롱가의 왕 라티누스는 라틴 족이었는데 라틴이라는 명칭이 이 인물에게서 기원했다. 이후 라티누스의 후손이 계속 왕위에 즉위했다. 이후 프로카(Proca)라는 왕이 사망했을 때, 그의 아들들인 누미토르(Numitor)와 아물리우스(Amulius)가 내분을 일으켰는데 아물리우스는 누미토르를 추방한 이후 그의 아들들을 모두 살해하고 그의 딸인 레아 실비아(Lea Silvia)를 결혼을 하지 못하는 여사제로 만들었다. 그런데 레아 실비아의 미모에 반한 마르스가 그녀를 겁탈하여 레아 실비아는 두 쌍둥이를 낳게 되었고 그녀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여 분노한 알바 롱가의 왕 아물리우스는 그 두 형제를 강가에 버리라고 지시했다. 그러던 중, 그곳을 지나가던 어미 늑대가 형제를 발견하고 젖을 물림으로써 그들은 목숨을 구한다. 이윽고 두 형제를 양치기가 발견하여 두 형제를 자식으로 삼아 키웠는데 그 둘을 각각 로물루스, 레무스라 이름을 지었다. 쌍둥이 형제는 장성하여 양치기 집단의 수장이 된다.
어느 날 왕위에서 추방된 누미토르가 정착한 땅을 약탈하러 온 레무스를 생포하게 되는데 이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누미토르는 이들이 자신의 외손자임을 알게 되었고 누미토르가 자신의 할아버지임을 알게 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자신의 원수 아물리우스를 죽이기로 하고, 누미토르의 도움으로 궁전에 침입하여 아물리우스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누미토르는 아물리우스의 뒤를 이어 알바 롱가의 왕이 되었으며, 누미토르의 도움으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자신들이 정착할 도시를 찾아 떠나게 되었고 로마 시를 건설하게 된다. 이 때가 B.C 753년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