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중동의 실크와 비단에 대한 이야기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21 13:02:22

카르헤 전투에서 패배하고 살아남은 로마군은 도주를 감행했지만 이미 사막 깊숙히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파르티아 기병의 화살 과녁 신세가 되면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거의 4만에 달하던 로마군 중 2만 명이 죽고 1만 명이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크라수스와 그의 아들은 전사했다. 파르티아의 피해는 미미했다. 카르헤 전투의 패배로 로마는 상당한 인명 피해를 겪은 동시에 많은 군단기(軍團旗)를 빼앗겼는데 이는 로마에 있어 엄청난 굴욕이었다. 또한 삼두정치의 일원이던 크라수스가 전사하여 사라지면서 남은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권력을 두고 본격적으로 대결을 벌이기 시작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로마 공화정의 종말로 이어졌다. 

중동에서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실크,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10,000명 가량의 패잔병을 이끌고 시리아에 도착한 카시우스는 몇 년 후 벌어진 파르티아의 공격을 잘 막아내서 키케로의 칭송을 들었다. 카르헤 전투에서 파르티아군은 로마군을 겁주기 위해서 거대한 북을 치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를 내면서 수많은 깃발들을 휘날리며 난리를 쳤는데 이 때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비단 깃발을 로마군이 보게 되어 로마에 처음으로 비단이 알려졌다고 한다. 이후 중동 지역 정착 농민들은 직물업자들에게 아마와 목면을 제공했고, 유목민은 양모와 가죽 공급원이 됐다. 다만 직물산업의 주요 원료였던 목재만은 언제나 부족해서 비싼 값에 외부에서 수입해야 했다. 직물생산은 대부분 가내수공업 형태로 생산자 자신의 필요와 지역 내 수요를 맞추는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직물 제조업자들은 테피스트리와 쿠션, 의복, 각종 복식품을 함께 만들었고 그 중 일부는 수출됐다. 이집트 지역에 들어섰던 수많은 왕조는 설탕 제조 노동자와 함께 아마 채취 노동자에게도 국가가 일당을 지급하는 등 적극적으로 직물산업에 개입하기도 했다. 알레포나 알렉산드리아 같은 이슬람권 주요 교역항에선 인디고나 실크 등 주요 직물업 관련 최신 정보를 발 빠르게 다루었다.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에도 직물 관련 최적의 원료를 확보하기 위한 정보전을 진행했다. 이슬람 상인들이 프랑스 보르도에서 멕시코산 코치닐 염료를 구입하는 식의 활동을 한 것이다. 알레포에 거점을 둔 아르메니아 상인들은 영국 레반트코사의 면직물 목도리 제품을 대거 비축했다가 페르시아나 러시아뿐 아니라 티베트와 카슈미르까지 가서 판매할 정도로 활동 범위가 넓었다. 

이슬람권에서 가장 중요한 직물 제품은 ‘티라즈(Tiraz)’라고 불린 고급 무늬가 들어간 자수 옷감 산업이었다. 최고위층용 사치품이었던 티라즈 제작은 국가 독점으로 진행됐다. 티라즈 공방은 국영이었고 자수무늬를 넣는 일꾼들도 국가 소유였다. 서구식 사회 개혁이자 정치 개혁이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탄지마트 시절에 술탄은 포고령을 내려 급속한 근대화 정책을 폈고, 복식도 그 예외가 아니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전통적으로 쓰고 다니던 터번을 현대 터키를 상징하는 모자인 낮은 원통형의 모자 '페즈'로 바꾸었으며, 서구식 복식을 받아들여 귀족이나 술탄 모두 서구식 코트나 하이힐, 혹은 넥타이 등으로 치장하고 다녔다. 사람들도 이같은 정책을 받아들여 점차 서구식 양복을 즐겨입기 다니기 시작했고, 특히 남성의 경우에는 오스만투르크 전통 복식을 오래된 것으로 간주, 대신 '개화된' 서구 복식을 입고 다니기도 했다. 

다만 여성들의 경우에는 서구식 복식 도입이 늦은 편이었으며, 여성들의 전통 복식은 19세기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화의 영향으로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고 밖으로 나갈 일이 많아지자 여성들의 옷들도 소매가 줄어들고 입는 법이 간소화되는 등 점차 서구식으로 바뀌기 시작하였으며, 나중에는 외출 시 베일조차 쓰고 다니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19세기 후반부터는 황족 여성들이 서양식 드레스를 입기 시작하면서 이 당시 서양식 복식을 입고 찍은 황족 여성들의 사진 자료들이 남아 있다. 이후 무스타파 케말 장군이 권력을 잡고 급진적인 세속화, 현대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아예 복식 자체를 서구화시키게 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오스만투르크 전통 복식도 완전히 생활 속에서 사라졌으며, 1960년대부터는 거의 서양의 시민들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0
유니세프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