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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대왕, 동방 원정을 한 이유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21 13:29:13

약관 20세에 마케도니아 왕위에 등극한 알렉산드로스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로 동방 원정을 결심하였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The State Hermitage Museum)의 고대 그리스-마케도니아 전시실,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첫째, 선왕의 유지인 대(大) 그리스 제국의 재건이다. 선왕인 필립 2세(Philip II, 재위 B.C 359~B.C 336)는 그리스의 쇠퇴를 기회로 농민들로 구성된 장창 병을 이끌고 남하하여 B.C 338년 케로네아(Chaeronea) 전투에서 아테네 · 테베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이를 계기로 마케도니아는 전 그리스를 정복함으로써 폴리스로 대표되는 고전 그리스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스를 통일한 필립 2세는 마케도니아 · 그리스 연합군을 결성하여 페르시아 원정을 계획하였으나, 아내와 공모한 자객에게 피살되어 원정 계획은 무산되었다. 필립 2세의 원정 목적은 소크라테스(Socrates) 등이 주장한 이른바 범 그리스 주의(Panhellenism)에 입각하여 소아시아의 하리스(Haris) 강 이서(Iser) 지역을 공략함으로써 대(大) 그리스 제국을 재건하는 것에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러한 선왕의 유지와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동방 원정에 나섰던 것이다.

둘째, 동방 원정의 원인은 그리스 도시 국가들 간의 분쟁을 막고 독립을 회복하려는 그들의 기도를 억제하려는 것이었다. B.C 5세기에 있었던 수차례에 걸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아테네는 크게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스파르타 · 코린트(Corinth) · 메가라(Megara) · 테베(Thebes) 등 도시 국가들과의 세력 균형이 파손됨으로 인하여 도시국가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특히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충돌이 심하였는데, 스파르타는 테베 등 도시국가들과 반(反) 아테네 동맹을 결성하고 근 30년간의 대(對) 아테네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B.C 404)을 진행하였다. 이후 아테네와 테베 · 스파르타 간에는 패권 쟁탈이 재연되었다. 이러한 도시 국가들 간의 갈등을 동방 원정이라는 공동 목표 속에 융화시키려는 것이 알렉산드로스의 또 하나의 숨은 의도였다.

셋째, 동방 원정의 원인은 숙적 페르시아에 대한 보복이다.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일대를 지배하에 복속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는 B.C 490년부터 448년 기간에 42년간에 B.C 490년, B.C 480년, B.C 479년, B.C 448년 4차례나 아테네 정복을 시도하였으나 매번 패하고 말았다. 게다가 페르시아는 용병제의 도입으로 인하여 군사력이 약화되었고, 지중해 연안 제국들의 부단한 반란이 발생했다. 그리고 B.C 344년 이집트에서 벌어진 반란과 더불어 왕족과 귀족들의 부와 사치 및 알력으로 국세는 쇠퇴하고 있었다. 숙적 페르시아의 몰락은 대 그리스 제국의 재건을 목표하고 있는 알렉산드로스에게 보복과 장애 제거의 호기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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