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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중국 산서성 다퉁(大同) 대동고성을 답사하며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23 01:28:46

현재 남아있는 이 성은 명나라 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성은 4개의 성문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 성문들이 하나같이 요새화되어 있다. 아마 산서성에서 현존하는 성곽 성문 중 가장 요새화가 잘된 곳이라 볼 수 있다. 이 성은 영락제가 이 지역을 정벌하고 성을 쌓았다. 그리고 이후 오이라트 침입 때 영종 정통제는 50만 대군을 이끌고 환관 왕진과 함께 정벌에 나섰다. 이 때 대동총병이 후방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중국 산서성(山西省) 다퉁(大同) 대동고성(大同古城),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이 대동에서 약 7km 떨어진 곳에 토목(土木)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필자는 이곳도 답사 예정에 있다. 영종 정통제는 토목에서 오이라트 에센의 매복에 걸려 참패하고 포로가 되었다. 이 사건이 일명 토목의 변 (土木之變)이라 부르는 중국 역사상 최악의 치욕적의 사건 중에 하나이다. 그 역사적인 장소가 바로 이곳 대동 성이다. 이후 오이라트는 포로로 잡은 명나라 황제 정통제를 내세워 유리한 협상의 조건을 취득하려 했다. 

그러자 명나라 조정에서는 명재상 우겸이 정통제의 아우 경태제를 황제로 세우면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에센 칸은 대동을 공략하면서 북경까지 남하하여 성을 포위한다. 이 때 명나라 명재상 우겸은 결사항전으로 맞서 결국 북경대회전에서 오이라트 에센 칸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 성문은 동쪽 성문인 영춘문(永春門)이다. 남문을 제외하고는 성문이 죄다 이중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성문이 하나 있고 성문 밖에 옹성이 둘러쳐져 있으면서 그곳에서도 문이 있다. 

즉, 적이 치고 들어올때 옹성의 성문이 붕괴되면 둥그런 원형의 옹성 성벽에서 성문을 치고 들어온 적병을 용이하게 공격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형태는 방어용 형태의 성으로 명나라가 몽골의 공격에 어떠한 대비를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 게다가 둥그런 원형 옹성 맞은편에 성문의 성루 성벽도 치성 형태로 쌓여있다. 그러니 한번 옹성 성문이 뚫렸어도 내성 성문을 뚫어야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구조가 된다. 이러한 성문, 성루 구조는 그 이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구조다.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애를 많이 먹는 성이라 판단되어진다. 성 외곽의 치성을 볼 수 있는데 명나라가 치(雉)를 선호하는 이유는 기마유목민족의 군대를 가장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명나라가 북방족과 고려, 조선에 여러 성곽 형태를 보고 판단한 결과이다. 그리고 성밖에는 해자가 있다. 해자의 폭도 넓고 깊이도 깊어보인다. 몽골과의 전쟁에서 최전선에 위치했기 때문에 몽골군을 막기 위해 갖은 수단들을 다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성문으로 들어오는 원형 옹성이 외성 역할을 하고 본격적인 성문이 있는 곳은 내성 역할을 한다. 대동성은 사각 모서리마다 하나씩 옹성이 있는데 이번 모서리 옹성은 사각옹성이다. 특이한 모서리마다 있는 옹성은 중국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수가 없다. 모서리 옹성은 동아시아에서도 대동성이 유일한 것 같다. 특히 남문은 첫 번째 옹성에서 군사들이 기다리고 두 번째 옹성에서 기마병을 대기시켰다. 세 번째, 네 번째 옹성은 최전선이라 네 번째 옹성이 원형이 아니라 앞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다. 

마치 치성처럼 말이다. 이 남문을 뚫는 다는 것은 공격하는 입장에서 거의 기적에 가깝다. 그 정도로 어마무시한 요새이다. 성안에 들어갈려면 4개의 성문을 통과해야 진입할 수 있다는 얘기니 그런 요새가 유럽-아시아를 통틀어 또 있을까? 하는 부분이다. 이 요새는 방어하는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공격하는 쪽은 불리하기 짝이 없다. 이런 성문은 아무리 뛰어난 공성무기를 가졌다해도 뚫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방법은 성벽을 타고 올라가 성 안에 진입하는 것 밖에 없다. 그리고 성 밖에는 폭이 넓은 해자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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