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W.F 헤겔 , 세계사는 자유 이념의 진보의 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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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은 1770년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나서 1831년 베를린에서 사망했다. 그는 튀빙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베른과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정교사를 한다. 1801년 동료인 셸링의 초청을 받아 예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철학 잡지를 발간한다. 그가 『정신 현상학』을 1806년 예나 전투가 있던 바로 전날 완성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집 앞을 진군하던 나폴레옹을 보면서 ‘말 위에 탄 세계정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시 나폴레옹과의 전쟁에 대해 피히테는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설을 통해 독일인들의 민족 감정과 애국심에 호소함으로써 프랑스와의 전쟁을 독려한다. 반면 헤겔은 보편사적 관점에서 똑 같은 현상을 자유의 이념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는 계기로 본다. 그의 철학에 비추어 보다 의미 있는 것은 독일이라는 특정한 민족 국가가 아니라 자유 이념의 진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 예나 대학에서 자리를 잃은 그는 1807년 그는 “밤베르크 신문”의 편집을 맡고, 1808년에는 뉘른베르크의 인문계 고등학교 교장이 된다. 이어서 1816년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며, 1818년에 그가 죽을 때까지 있었던 베를린 대학의 교수가 된다. 그는 『논리학』, 『법철학』, 『엔치클로패디』, 『미학강의』, 『역사철학강의』등 수많은 저서를 출간하고 국가 철학자로 추앙 받다가 1831년 유럽 전역에 유행하던 콜레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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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빈곤한 현실, 정신의 풍요
흔히 독일관념론은 칸트에서 시작되어 피히테와 셸링을 거쳐 헤겔에서 완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출간된 것은 1781년이고, 헤겔의 법과 정치에 관한 사상이 완성된 『법철학』이 출간된 것이 1821년이다. 대략 40여년에 걸친 이 시기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으로 이어지는 독일 고전주의 음악이 꽃을 피우던 시기이고, 괴테와 쉴러 등 독일 낭만주의의 정신이 빛을 발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비교적 짧은 시기에 독일의 위대한 정신이 철학과 예술 등의 분야에서 만개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독일의 정치 · 경제 상황은 주변 국가인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대단히 열악한 상황에 있었다. 이미 영국은 여러 차례의 정치 혁명을 거치면서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기초를 다지고, 18세기 중반부터 산업 혁명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대열에 들어서고 있었다. 프랑스 역시 1789년에 자유, 평등, 박애의 기치를 내걸고 바스띠유 감옥을 파괴하면서 혁명의 불길을 당겼다. 이에 반해 당시 독일은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수많은 봉건 영주국들로 사분오열된 상태에 있었다. 오죽하면 당시 청년 헤겔이 “독일은 국가가 아니다”라는 말로 비난까지 했을 정도이다. 경제적으로도 독일은 산업화를 시작하지 못한 후진 국가였다. 이처럼 낙후된 상황에서 독일의 지식인들은 이웃 국가의 혁명에 열광하기도 하고 자신들이 처한 봉건적 상황을 개탄하기도 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독일의 정신은 이처럼 열악한 현실 상황에서 인류의 정신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의 꽃을 피운 것이다. 흔히 문화와 예술 혹은 철학은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비교적 잘 보장되어 있는 곳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국의 경제 혁명, 프랑스의 정치 혁명에 비견할 정도로 독일인들이 사유 속에서 이룩한 정신 혁명을 고려한다면 사상과 문화 예술 등이 꼭 풍요로운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독일인들이 정신 속으로 내면화한 이러한 혁명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혁명을 완성한 헤겔 철학의 내용은 무엇인가?
2. 헤겔의 정신과 자유
헤겔은 독일 관념론의 완성자로 알려져 있다. 이 때 완성은 무엇의 완성이고, 어떤 의미에서의 완성인가? 일찍이 하이데거는 근대 주관성의 철학의 발생을 전망하면서 이 주관성의 섬을 최초로 발견한 철학자는 데카르트이고, 그 섬의 정밀한 지도를 그린 철학자가 칸트라면, 헤겔이야말로 이 섬에다 비로소 정신의 왕국을 건설한 철학자라고 갈파했다. 데카르트가 학문의 가장 확실한 토대를 찾기 위한 방법적 회의를 하다가 찾은 것은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res congitans 였다. 칸트는 순수한 이성 비판을 통해 이 사유하는 주체, 즉 이성의 능력에 관한 정밀한 지도를 작성해서 이성이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필연(과학)의 세계와 자유(도덕과 실천)의 세계로 영역을 분할했다. 이제 헤겔은 다시금 이 두 세계를 정신의 운동 속으로 끌어 들여 이 주관성의 섬에다가 거대한 관념의 왕국, 자유의 현실태로서의 정신의 왕국을 건설한 것이다. 하이데거의 이런 지적이 정확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한 마디를 더 덧붙일 수 있을지 모른다. 말하자면 헤겔이 죽고 나서 저 거대한 정신의 왕국이 어떻게 해체되고 분열되게 되었는가? 한 때 국가 철학자로 숭배를 받던 헤겔 사후에 이 정신의 왕국은 급격히 내부의 분열을 겪으면서 진보적인 청년 헤겔학파와 보수적인 노년 헤겔학파의 싸움터로 전락한다. 마침내 ‘불의 강’(포이어바흐)을 건넌 마르크스가 헤겔의 관념 철학을 유물론적으로 전도시키고, 프롤레타리아를 내세워 이 왕국을 접수하고자 한다. 사회 경제적인 차원으로 보면 산업화에 따른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19세기 유럽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대립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프롤레타리아를 근대 주관성의 철학적 전통에서 성장한 정신의 왕국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적자로 간주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렇게 헤겔의 정신의 왕국은 단순히 관념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실현하고자 고투하는 현실 세계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헤겔은 젊은 시절 자유를 열망한 프랑스 혁명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가 튀빙겐 신학부 시절의 동료인 휠더린, 셸링과 함께 프랑스 혁명을 찬미하면서 자유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만큼 그에게 자유란 인간 정신의 가장 심오한 본질이다. “물질의 실체가 무게인 데 반해, 정신의 실체, 정신의 본질은 자유이다.”. 헤겔의 입장에서 낡은 봉건적 관계를 척결하면서 이 자유를 현실화하려는 프랑스 혁명은 천상의 왕국이 지상의 왕국에 실현되는 순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혁명이 급진주의자들의 공포정치로 변질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헤겔은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말하자면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추상적인 자유의 이념을 실현하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할 수 있는가를 깨달은 것이다. 사실 이것은 자유의 이념에 대한 불신이기보다는 그 이념이 현실화되기 위해서 요구되는 구체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자유에 대한 추상적 사유로부터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유로의 발전과도 연관되어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자유 관의 변천과 발전은 그의 사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현실을 매개하는 변증법적 사유의 발전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유에 대한 헤겔의 이해를 통해 자유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엔치클로패디』에서 헤겔은 대상성에 대한 사유의 태도를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오성적 사유이고, 둘째는 부정적인 변증법적 사유, 셋째는 긍정적이고 사변적인 변증법적 사유이다. 사유의 이 세 가지 측면은 헤겔이 말하는 바의 정신의 자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오성적 사유는 대상의 규정을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여 한 규정이 다른 규정에 비해 절대적으로 차이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선과 악이나 좋고 나쁨 같은 규정이 있을 때 오성적 사유는 선은 선이고, 악은 악일뿐이라고 생각한다. 양자는 절대적으로 대립하기 때문에 선이 악이 된다든지 혹은 악이 선이 된다든지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으며, 또한 양자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궤변에 불과하다고 보는 사유다. 이에 반해 부정적 변증법의 사유는 오성적 사유보다는 진일보한 사유다. 이러한 부정적 변증법은 적어도 모든 유한한 규정들이 스스로 지양되고, 그럼으로써 그 대립물로 이행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종종 회의주의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사유는 모든 규정을 부정하고 무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을 부정해서 악을 긍정하기도 하고, 또 악을 부정해서 선을 긍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추상적 부정은 모든 것을 부정할 뿐 부정의 결과로부터 아무런 긍정적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사변적 변증법 혹은 긍정적 변증법은 이러한 규정들의 해체와 이행 속에서 그것들의 통일, 즉 긍정적인 것을 파악한다. 부정적 변증법에서처럼 결과가 공허하고 추상적인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규정들의 부정이며, 그리하여 이 규정적 부정 속에는 어떤 긍정적 결과가 담기는 것이다. 선은 선이고, 악은 악이라는 오성의 절대 구별에 대해 회의주의자들의 추상적 부정은 선이 악이고, 악이 선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앞의 구별을 단순히 무매개적으로 뒤집은 것일 뿐이다. 이에 반해 사변적 부정은 선과 악의 대립 속에서 규정들의 단순한 대립과 부정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 속에서 양자가 통일되는 긍정적 계기를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하위 차원에서 대립되는 선과 악의 규정을 보다 높은 차원의 통일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의 공포 정치는 추상적 자유의 표현일 뿐이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자유의 실현은 19세기 유럽의 현실을 매개로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의지의 세 번째 단계는 앞의 두 계기, 즉 보편성과 특수성의 통일로서의 개별성이다. 헤겔의 변증법에서 종합과 통일은 단순히 앞의 두 계기를 봉합하고 합산하는 것이거나 원점으로의 단순한 복귀가 아니다. 여기서 지양(Aufheben)이 갖는 변증법적 의의가 있다. 지양은 첫째 부정적인 것을 폐기하는 의미가 있고, 두 번째 긍정적인 것은 보존하는 의미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낮은 차원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개별성을 변증법적 지양의 의미에서 본다면 보편과 특수의 부정적 측면을 폐기하고 긍정적 측면을 보존하면서 더 높은 단계로 고양시킨다는 의미를 갖는다. 개별적 의지는 특수적 규정을 통해 타자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 동일성으로서의 자유를 견지한다. 헤겔은 이처럼 “규정성 속에서의 자유”를 “타자존재 속에서 자기 자신에 머무름”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한다. 다시 말해 의지의 구체적인 자유는 타자관계를 부정하거나 타자관계에 구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타자관계는 자기의 자유의 내용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 헤겔은 이러한 관계의 예로서 ‘사랑과 우정’을 들고 있다. 참다운 사랑은 사랑으로 인해 상대방을 구속하지 않으며 사랑으로 인해 자기를 상실하지도 않는다. 참다운 사랑은 ‘너와 나’의 고립된 관계를 넘어서 ‘우리’ 안에서 자유를 확장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관계는 우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헤겔이 말하는 참다운 자유, 즉 구체적인 자유는 언제나 타자와의 관계를 요구하며 더 나아가서는 항시 사회적 관계의 연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실제로 『법철학』에서 헤겔은 인륜성의 궁극적 단계인 국가가 자유의 현실적 모습이며, 이성의 궁극 목적은 이 자유의 실현이라고 말한다. 때로 이러한 주장은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며,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다”라는 표현과 결합해서 헤겔을 국가지상주의자로 비판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헤겔이 『법철학』에서 국가를 말할 때는 사랑에 기초한 가족의 자연적 정신과 이것이 해체되어 욕망과 노동, 그리고 형식적 법률에 의해 개인의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데만 관심 갖는 시민사회의 분열의 단계를 거치면서 나온 개념이다. 특히 시민사회는 모든 경제 활동으로부터 국가의 간섭을 배제하고 오로지 법과 시장의 논리에 따라 소유권을 보호하고 국가를 경영하려는 자유주의자들의 최소 국가론과 유사하다. 여기서 근대 국가에서 보이는 개인과 공동체의 유리 현상과 빈곤의 문제들도 다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헤겔의 국가는 가족의 실체적 보편성과 시민사회의 특수성이 지닌 부정과 분열의 문제를 지양하면서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물론 현존하는 현실 국가는 이러한 자유의 이념에 미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의 이념으로서의 국가는 현실 국가의 지향점이고, 현실 국가는 이러한 자유의 이념을 실현하고 확장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정신이 운동하는 무대를 세계사로 확장해보면 이러한 자유의 이념의 필연적 전개가 납득이 갈 수 있다. 헤겔은 세계사를 자유의 확대 과정으로 본다. 즉 세계사는 자연적 의지의 정신을 훈련하고 도야해서 보편적이고 주체적인 자유의 정신으로 인도하는 과정이다. 그는 세계사를 1인만이 자유로운 동양의 국가로부터 소수의 시민들만 자유로운 그리스-로마 제국을 거쳐 만인이 자유를 의식하는 근대 게르만 국가의 단계로 발전한다고 본다. 헤겔의 이러한 역사 해석은 다분히 서양 중심의 목적론적 역사관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의 세계사가 민족과 국가를 매개로 끊임없이 자유를 실현하고 완성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세계사의 정신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때로는 영웅을, 또 때로는 국가와 민족을 도구로 사용하는 ‘이성의 간계’를 부리기도 한다.
4. 맺음 말
자유가 인간의 본질 규정이 된 것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며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인권 사상이 현실 문제가 되는 것은 근대에 들어서이다. 근대 사회는 자유주의 사상에 기초해 반봉건적인 민주주의 혁명을 주도했으며, 그 정점이 프랑스 혁명이었다. 칸트에서 헤겔에 이르는 독일 관념론의 철학은 프랑스 혁명이 전파한 자유의 이념을 정신 속에서 반성하고 내면화한 철학이었다. 이 철학에서 자유의 이념은 다른 어떤 주제보다 큰 의미를 띠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의 전통에서 자유는 모든 타율적 간섭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런 정치적 자유는 봉건적 관계를 철폐하고 개인의 사적 소유와 시장에서의 거래의 자유를 확보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칸트에게서 자유는 그의 전 사상 체계의 주춧돌이라고 할 만큼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자유는 과학의 한계 영역이면서 도덕과 신앙의 기초이다. 칸트에게 자유는 단순한 간섭의 배제가 아니라 자기 입법에 대한 존경이다. 자유주의자들에게 법칙에 따르는 것은 타율에 대한 종속으로 간주되어 모든 법칙으로부터의 해방이야말로 자유로 간주된다. 하지만 칸트가 말하는 법칙은 이성적 주체의 선의지의 표현인 도덕 법칙이다. 그러므로 도덕 법칙 안에서 비로소 인간은 가장 자유로운 것이다. 이 같은 법칙 안에서의 자유, 혹은 필연에 배타적이지 않은 자유는 프랑스 혁명의 추상적이고 부정적인 자유에 대한 비판이자 극복이라 할 수도 있다. 자유는 모든 간섭을 배제한다든지 종종 오해되듯 어떤 것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든지 하는 자의를 넘어서 있는 것이다.
헤겔의 자유는 필연성과 법칙의 타자 관계를 자기규정 속으로 적극 끌어들인다. 헤겔은 이런 상태를 “절대적 타자 존재 안에서 자기 안에 머무름”이라는 표현으로 여러 곳에서 묘사한다. 따라서 그에게 자유는 개인의 자유 의지를 넘어서 사회와 국가 속에서 타인들과 적극적으로 관계 맺는 데서 가능한 것이다. 스피노자가 말한 ‘필연성의 인식’이라는 의미의 자유는 자연 법칙 뿐만 아니라 사회와 역사 안에서 작동하는 이러한 필연성을 인식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헤겔은 역사를 자유 의식의 진보라고 보고, 국가의 진정한 의미를 자유의 실현된 모습으로 본 것이다. (10년 전에 썼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