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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 3국의 주요 국가와 주요 민족들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23 01:47:46

A peaceful demonstration of the people of Lithuania, Latvia and Estonia holding hands and making a 600km long human chain spanning over three countries, August 23, 1989 (Source: Wikimedia Commons)

1. 에스토니아와 핀족 

핀족은 고대 유럽의 중심인 로마에서 상당히 떨어진 유럽 북동부에 위치해서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볼가 핀족의 경우도 스칸디나비아 측의 기록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는 스칸디나비아의 룬 문자 기록에 볼가 핀족의 존재가 나타난다. 볼가 핀족의 첫 기록은 로마의 타키투스(Tacitus) 저서인 <페니(FENNI)>였는데 타키투스는 <페니(FENNI)>는 볼가 핀족 뿐 아니라 발트 핀족과 라플란트 민족들, 그리고 사미 족을 통틀어 모두 기록했다.  <페니(FENNI)>의 기록 이후 핀족에 대한 기록은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우스(Cladius Ptolemaeus)에 의해 다시 나타났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1171년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볼가 핀족이 순수한 볼가 핀족만 지칭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타키투스는 그의 저서 <De origine et situ Germanorum>를 통해 아에스티(Aesti) 족이라는 발트의 민족을 기록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일반적으로 에스토니아 인종을 에스토니아어로 에스티(Eesti)라고 하며, 타키투스가 기록한 아에스티(Aesti)에서 차용했다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에스티(Aesti)가 발트 핀족인지, 아니면 발트에 존속한 토착 민족인지, 혹은 게르만계 민족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에 일부 로마 저술가들은 아에스티(Aesti)를 두고 게르만 계통의 한 일파로 보았는데, 현대의 연구에 이르러서는 아에스티(Aesti) 족은 슬라브 혹은 게르만의 한 일파이거나 핀족과 같은 연맹체로 보는 것이 통설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 게르만계라는 근거들 중 수많은 게르만의 전승에서는 이미 핀족들이 다수 언급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로마인들은 게르만족들의 전승들을 듣고 핀족에 대해 적시했었는데 그로 인하여 타키투스를 제외하고 핀족을 언급한 로마 역사가들은 핀족을 게르만족으로 치부했다. 이는 직접 유럽 북동부까지 로마가 진출한적 없었던 데다 단순히 게르만계 민족들의 이야기만으로 적시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였던 것이다. 현지에서 에스토니아, 자국을 부르는 이름은 에스티(Eesti), 에스티 바바리크(Eesti Vabariik, 에스토니아 공화국)이다. 역사학자들은 에스토니아나 에스티 모두 로마 제국의 역사학자 타키투스의 문헌에서 언급된 아이스티(Aesti)를 유래로 본다. 

아이스티는 에스토니아에 해당되는 발트해 연안 지역과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1850년대 에스토니아인들이 근대적 민족주의를 형성할 무렵 자신들의 지역, 민족, 언어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에스티가 정착했다. 그리하여 주변 국가에서는 대체로 Aesti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에스토니아를 칭한다. 핀란드어에서는 에스토니아를 비로(Viro)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현 에스토니아의 지역 중 하나인 비루마(Virumaa)에서 유래했다. 라트비아어에서는 에스토니아를 이가우니야(Igaunija)라고 부르는데 13세기에 에스토니아 일대에 존재한 나라 이름인 운가니아(Ungannia)에서 유래한다. 영어에서는 한때 Esthonia라고 칭하기도 했으나 전간기에 에스토니아 정부에서 Estonia로 수정을 요구했고 이것이 수용되었다. 에스토니아어는 핀란드어와 유사하고 우랄-핀계이기 때문에 문법적으로 한국어와 유사하다. 

2. 라트비아 

리보니아 인(līvlizt)은 라트비아의 우랄계 원주민을 지칭하는 민족으로 일명 리브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을 리보니아로 전해지는데 직역하면 리브인이 거주하는 땅이라는 뜻이다. 리가 만에서 추드 호에 걸쳐 있는 지역을 리보니아 지역이라 하는데 리브인들은 오늘날 라트비아 북부 일대에 분포한다. 리브인들은 거기에서 연유한 우랄계 핀-우그리아어 파인 리보니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까지는 12개 마을 약 1,500명이 동서의 방언으로 구별되었고, 현재는 300명 정도가 남아 있다고 한다. 따라서 리보니아(Livonia)는 현재 라트비아의 동북부 비제메 지역에서 에스토니아 남부에 걸친 지역의 명칭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라트비아 영토에는 발트어 계열의 이 지역 고유 토속어 중 하나인 라트비아어를 쓰는 라트비아 인이 살고 있으며 현재는 라트비아 인이 인구 180만 명 정도 라트비아의 국민으로 남아 있다. 라트비아와 리브인들은 독일 기사단의 식민지와 발트 족, 핀인 등과의 혼혈하여 격감하거나 현재 라트비아 인과 혼혈민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현재 라트비아 땅의 주민들은 거의 발트계 라트비아인 핀계 에스토니아인과 러시아인 및 라트갈레, 리브인들로 구성하고 있다. 리가에 정착한 독일인 선교사들과 제일 먼저 교류한 부족이 바로 리가 만 일대에 거주하던 리브인이었기 때문에 중세 라트비아 독일 식민지는 리보니아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선교사들이 십자군을 불러들인 것에서 기원한 리보니아 검의 기사단의 정복과 식민화를 생성한 이후 독일인 및 이웃 발트어족과의 동화 과정으로 오늘날에는 라트비아 내 167~250명, 에스토니아에 22명, 러시아에 7명, 미국에 2명만이 남아있는 상황이 되어 있다. 핀란드어, 에스토니아어와 가까운 리보니아어 역시 리보니아인 인구 감소의 결과 소멸 위기에 있다. 1852년 인구조사에서는 2,324명, 1935년에는 944명 수준으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다. 리보니아 어를 모어로 사용했던 마지막 사용자도 2013년에 작고했다고 하며, 리보니아어로 의사 소통이 가능한 인구는 2010년 기준 10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오늘날 리보니아 인들도 리보니아 어를 취미 삼아 배우는 수준에 있다.

3. 리투아니아 

세미갈리아(Semi-Galia) 종족이라 불리는 종족들은 동북 켈트족을 이르는 종족이고 노르만계 쿠르(Kur) 족, 발트핀계 리브(Lib) 족, 고트계 라트갈레(Latgale) 족은 B.C 2500년부터 다우가바 강 유역과 오늘날 프로이센, 리투아니아 지역에 정착했으며, 이들의 사회는 왕이 다스리고 거래 규칙과 조세징수 제도가 갖추어진 매우 잘 조직된 사회였다. 비록 인근 부족들을 약탈하는 것이 그 당시의 일반적인 관행이긴 했지만, 발트 해 부족들은 스칸디나비아의 이웃인 바이킹들과는 달리 비교적 평화로운 편이었다. 뱃사람인 서부 해안 지대의 쿠르족이 덴마크와 스웨덴의 바이킹들을 공격하기도 했지만, 이는 대개 자신들의 땅을 공격한 것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였다. 

오늘날의 라트비아 남부에 거주했던 세미갈리아 족은 비옥한 땅으로 인해 부유했고, 13세기의 독일 십자군과 튜턴 기사단에 끝끝내 저항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라트갈레 족은 리투아니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도록 살아온 종족으로, 리투아니아에 국가로서의 기틀을 확립했다. 침략자들과 맞서 전투를 벌인 용감한 부족의 왕이나 영웅적인 전투에 대한 낭만적인 이야기, 마법적 의식에 관한 신화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지닌 농부의 천성 아래에 전사의 혼이 깃들어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발트 신화는 인도유럽어족 발트어파의 언어를 이야기하는 민족인 라트비아인, 리투아니아인, 프로이센 인의 신화를 지칭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원시 인도 유럽 신화에서 기인하며, 같은 발트-슬라브어파 계열의 슬라브 신화와 유사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발트 신화는 고대부터 해당 지역민들이 믿었던 다신교와 관계가 깊다. 

신화 속에 나타난 신들은 저마다 역할이 정해져 있고, 그 지위에도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 신화와 많이 닮았다. 다만 신화 중 여성의 비중이 상당하다는 점은 그리스 신화와 차이가 있다. 리투아니아인 뿐만이 아니라 인근의 프루센인, 리보니아인도 기독교가 아닌 다신교를 믿고 있었다. 게르만인이나 슬라브인과 다르게 로마 제국의 쇠퇴 이후에도 민족 대이동에 참여하지 않고, 계속 늪지대에 고립되어 살았던 이들 발트족에게는 기독교가 도입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이처럼 발트어족 상당수가 기독교 대신 고유의 다신교를 믿는 상황을 핑계로 인해 튜튼 기사단과 리보니아 검의 기사단이 발트어족들의 영토를 침략해 들어왔다. 튜튼 기사단은 오늘날 칼리닌그라드 일대의 프루스인들을 정복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와중에 너무 많은 프루스인들이 잔인하게 살해당해서 프루스인들의 이웃해있던 리투아니아인이 튜튼 기사단을 무척 경계하고 미리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유럽 최신의 무기와 갑주, 성채 건축술을 보유한 튜튼 기사단이었지만 늪지대가 많은 리투아니아에서 리투아니아인이 게릴라 전법을 구사하자 곤란을 겪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다른 발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12세기까지 부족끼리 갈라져 통일이 되지 않는 상태였지만, 튜튼 기사단의 위협 때문에 전 부족들이 하나로 단결하고 튜튼 기사단의 전법과 무기를 받아들이며 점점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민다우가스가 1235년 루테니아의 도시 나바흐루다크를 정복하면서 1236년 부족 통일이  이루어져 오늘날 리투아니아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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