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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과 당시 33세의 젊은 트럼프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23 01:54:21

1979년 11월 4일 테헤란에서 팔레비 왕의 신병을 인도하는 것을 요구하던 과격파 학생 시위대들이 시위 도중 주 이란 미국 대사관으로 난입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시위대는 대사관을 점거함과 동시에 약 70여 명의 외교관을 인질로 억류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이 때 이란 혁명 정부는 미국과 일전을 벌일 각오를 하고 의지를 불태웠다. 이에 대해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 이란의 대미 석유 금수 조치, 이란의 재미 예금 전액 인출 및 재이란 미국 투자의 국유화 조치, 그리고 미국이 재미 이란 공적 자산을 동결하는 조치 등으로 응수하면서 양국의 대립은 시작되었다. 

Iranian students storming the Embassy of the United States in Tehran on November 4, 1979, 출처 : Wikipedia, Iran hostage crisis 

더불어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아라비아해와 인도양에서 미국 해군이 무력 시위를 하는 등 사태가 일촉즉발이 되기도 했다. 미국 정부의 미국 내 이란 중앙은행 예금에 대한 동결 조치로 인하여 이란의 중앙 은행은 미국의 체이스 은행에 이자 지급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체이스 은행은 이란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하게 된다. 이처럼 이란과 미국의 대립은 극에 달했다. 이란은 미국에 대해 단죄하겠다면서 아라비아해와 인도양에서의 군사행동, 그리고 자산 동결 조치와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 등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다. 

미국 역시 미 대사관 난입과 인질 사태는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라 주장하며 역으로 사과를 요구했다. 미국과 이란의 이와 같은 강경한 대립은 잠시 온건파들이 중재에 나서면서 협상의 여지가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호메이니는 강경한 자세로 나서면서 협상의 여지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미국은 1980년 4월 7일에 공식적으로 이란과 단교했으며 미국 내 이란 외교관들을 전격적으로 추방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육군과 해군, 공군, 해안 경비 특수부대까지 동원해 인질을 구출하는 독수리 발톱 작전(Operation Eagle Claw)을 시도했다. 

당시 작전 수행 중, 수송기 한 대와 헬리콥터 한 대의 연료가 귀환하기 부족한 수준까지 소모되었고 헬기가 급유 도중 모래 바람이 일어 옆에 있던 EC-130 수송기와 충돌하는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미군 수송기 승무원 8명의 사망하는 결과를 얻게 되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1980년에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은 호메이니의 유화적인 태도를 이끌어 냈다. 결국 알제리가 중재 하면서 미국은 동결된 팔라비 왕조 당시의 재미 자산을 이란에 반환하기로 동의했으며 이란이 사건 발생 444일만인 1981년 1월 20일에 억류된 인질 전원을 석방시키고 미국으로 귀환시키면서 이 사건은 마무리 된다. 이 사건 이후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파탄이 났고 국교가 단절된 채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미국의 인도양, 아라비아해 지역의 군사력 증강을 초래하면서 중동 위기를 촉발시켰다. 그러나 이 사건은  미국의 중동에서 군세 확장을 두려워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유발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은 군사 작전이 실패하면서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 체제가 종식되는 아이러니한 역사가 전개된다. 이 당시 이란에 대해 대강경 정책을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인물이 있었다. 그는 미국의 TV에 등장해 인터뷰를 하면서 이란에 대한 엄청난 적개심을 쏟아 부었는데 그가 바로 당시 33살이었던 도널드 트럼프였다. 트럼프의 이란애 대한 적개심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악연의 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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