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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파농(Frantz Fanon, 1925~1961)과 알리 샤리아티, 그리고 이란 이슬람 혁명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23 01:56:24

1991년 소련 해체 당시 타타르스탄에는 모스크가 20개 남짓에 불과했다. 1917년 혁명 당시에는 2,200개였다. 2017년 현재 다시 2,000여개로 회복되었다. 정교가 부활한 것처럼, 무슬림 또한 귀의한 것이다. 이는 혁명에서 문명으로 전환된 21세기의 대반전이나 다름 없다. 한편 카잔의 무슬림 공산주의자가 처형되던 1940년에는 중국 연안에서 모택동이 '신민주주의론'을 발표했다. 그는 이처럼 사회주의에 이르는 중국의 길을 창도했다.

고대 페르시아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사티르-이 아스마니(Desatir-i-Asmani, 천상의 데사티르)의 삽화, 출처 : Exotic India Art 

그리고 소련의 노선을 답습하는 당료들을 쳐내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에 시동을 걸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해, 세계 최대의 무슬림 국가 인도네시아에서도 이슬람의 원리를 헌법에 명시한 신생 공화국이 출범한다. 발칸 반도를 재통합하고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을 출범시킨 티토가 인도네시아를 찾은 것은 1955년 반둥 회의에서였다. 반둥 회의 직후 이집트의 나세르는 오스만투르크의 해체 이래 중동을 재통합하는 아랍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추진한다. 

1964년 프랑스를 몰아내고 알제리 혁명을 이끌었던 아흐메드 벤 벨라(Ahmed Ben Bella, 1916~2012)가 열독했던 서적 또한 술탄 가리예프의 저작이었다. 물질 개벽에 눈이 멀어있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정신 개벽을 염원하는 무슬림을 혁명의 주체로 내세웠다. 응당 소련을 흠모하고 프랑스를 사모하는 알제리 공산주의자들은 배제되었다. 서구와 동구를 선망하는 알제리 공산주의자들의 뒤틀린 의식 세계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탐구한 이가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1925~1961)이다. 파농의 역작인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Les maudits de la terre)>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한 이가 이란의 알리 샤리아티(Ali Shariati, 1933~ 1977)이다.

호메이니가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할 때 샤리아트의 번역을 통하여 파농을 읽었다. 그리고 1979년 테헤란으로 복귀하여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킨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곧장 국경을 접한 소련까지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전했다. 이에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공화국들이 동요했고, 그 파장을 차단하기 위하여 1979년 소렷이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유야 어쨌든 아프가니스탄은 결국 소련의 무덤이 되었다. 적색 제국주의에 맞서는 유라시아 무슬림들이 카불에 총집결하여 소련을 좌초시켰다. 신(新) 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 일국만의 국시가 아니다. 터키도 신(新) 유라시아주의로 합류하고 있다.

숙명의 앙숙과도 같았던 러시아와 터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의기투합하고 있다. 러시아나 터키 사이에서 곤혹스러웠던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여기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 중 선두가 중앙아시아의 대국으로 알려진 카자흐스탄이다. 그들은 카잔을 떠나 아스타나로 이동했다. 러시아와 타타르 양 민족이 섞여 산지도 500년에 가깝기 때문에 현대 시대에 와서는 무슬림 타타르인들과 정교회 러시아인들 사이에 크게 종교, 민족 갈등이라 할 것도 없는 편이다. 게다가 국가무신론의 소련 시절도 겪었다 보니 양 종교, 문화에서 즐겁고 좋은 것만 골라 챙기는 사람들도 많다. 정교회에서 가장 큰 축일인 부활절 때는 교회에서 얻어 먹고, 라마단 시즌에는 또 해 지면 모스크 가서 얻어 먹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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