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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브고로드 공국과 러시아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23 01:58:50

노브고로드는 본래 882년에 올레그(Oleg)가 키예프에 도읍하기 전까지 훈족의 후예인 루스 민족의 실질적 수도로 기능하던 곳이었다. 따라서 이 지역의 슬라브인들은 약 5세기 중엽에 아틸라의 손자 중 막내 손자로 추정되는 루시가 벨라루스 지역을 봉토로 받음으로써 그들의 통치를 받았고 이 기간이 장기화되자 그들은 슬라브인들과 동화되었는데 그들은 인구 포화 상태로 인하여 벨라루스 지역의 목초지가 부족하자 멀리 모스크바 인근까지 세력을 넓히게 된다. 

12~13세기 벨리키 노브고로드(Veliky Novgorod)의 도시 계획도, 출처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그리고 8세기 초 모스크바 강을 따라 네바 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성채를 세우게 되는데 이 지역은 대대로 노르만 족으로 알려진 노르딕과 상업적으로 주 거래 지역이었다. 따라서 네바 강을 따라 모스크바 강과 합류하는 해당 성채는 해상 무역의 요충지였던 셈이었다. 이 성채는 노르만인들과 고트인들, 슬라브인, 지배층인 훈족이 섞여 살게 되었으며 그들은 이 성채의 이름을 노브고로드(Но?вгород)라 명명하게 된다. 

노브고로드는 중세 슬라브어로 “북쪽 성(Северный замок)”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고트어로는 “중심지(Mетрополия)”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노르만어로는 “북쪽 도시(Северный горо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당시 중세 슬라브어와 노르만어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북쪽 성, 혹은 북쪽 도시로 통하는 것이 타당하다 보여진다. 882년에 올레그가 남부 키예프로 이동하면서 노브고로드는 다수의 노르만인들이 들어와 그들을 중심으로 슬라브인들을 피지배로 하는 독자적인 체재를 구축했으나 1019~1020년 사이에 키예프 대공국에 예속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는 키예프 공국의 세력이 강화되었고 스비아토슬라브 1세와 전쟁에서 패배했다. 이어 하자르 제국, 페체네그족의 공격에 지속적으로 패배하면서 도시의 생존권이 위협을 받게 되자 노브고로드는 키예프 공국의 보호를 요청하며 그들 공국의 일원으로 합류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부터 키예프 대공이 노브고로드 공작을 임명하였으며 이러한 노브고로드는 북방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따라서 상당히 부유했던 도시이기 때문에 노브고로드 공후는 루스 공국들 중 가장 부유한 자에 속했다. 이러한 이유로 노브고로드 공후는 차기 키예프 공후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격에 대한 부분은 노브고로드가 루스 민족의 첫 번째 도시라는 것에 말미암아 일종의 정신적 중심지로 기능하기 때문으로도 판단된다. 이는 21세기 현재에도 노브고로드에 기독교가 전래되기 이전, 오래 전에 숭배된 전통적 종교의 유적들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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