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터키 킬리스의 역사와 드루즈교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23 02:17:49
  • 수정 2026-05-07 09:05:03

14세기를 전후로 쿠르드계 마나드 및 마나샤 가문이 다스렸고, 맘루크 왕조와 오스만 제국의 제후국으로 존속하였다. 이 국가를 킬리스 아미르 국이라고 한다. 하지만 1610년 마지막 군주 후세인 잔풀라드(Husein Zanpulad)가 살해된 후 가문은 레바논으로 도주, 드루즈(Druze)교도들과 상호 결혼한 후 그에 동화되어 드루즈 산지의 주요 세력 중 하나인 줌블라트(Zumblat) 가문이 되었다. 한편 킬리스는 오스만 제국 하에 중소 도시로 이어졌다. 19세기 킬리스에는 37개의 모스크, 14개의 작은 모스크, 4개의 수피 회당, 8개의 마드라사, 4개의 교회, 1개의 시나고그, 31개의 음수대 (분수), 5개의 하맘, 40개의 카페 (카흐베하네), 5개의 약국, 5개의 주점이 있었다.


Elders and mourners attend the funeral of Guevara Ibrahim, 11, on July 29, 2024. He was killed in an attack in the Druze town of Majdal Shams in the Israeli-occupied Golan Heights Jalaa Marey / AFP 

본래 킬리스에는 많은 아르메니아인이 거주했는데, 1900년을 전후로 벌어진 아르메니아 대학살 당시 대부분 사라져 현재는 극소수만이 남아있다. 현재도 킬리스에는 약 6,500명 가량의 드루즈교도들이 남아 있다. 드루즈교는 11세기 사람인 함자 빈 알리 빈아흐마드(حمزة بن علي بن أحمد‎)와 알 하킴 비아므르알라(الحاكم بأمر الله)가 창시했으며 <지혜의 서간(رسائل الحكمة>을 경전으로 하고 있는 종교다. 이슬람의 시아파, 그 중에서 이스마일파에서 분파했으며 예언자 무함마드의 자리를 11세기 파티마 왕조의 칼리파 알 하킴 비아므르알라(الحاكم بأمر الله)가 계승했다고 믿는다.

'드루즈'라는 이름은 '아다라지(الدرازي)'라고 불리는 이스마일파 신비주의 사상가의 종교관과 이들의 종교관이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아다라지는 무함마드 빈 이스마일 나슈타킨 아다라지(محمد بن إسماعيل نشتكين الدرزي)로 알려진 인물이며 부하라 출신으로 11세기 초 파티마 왕조 치하의 이집트로 이주하였다. 드루즈교도들은 아다라지가 이단이며 자신들의 교리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학계에서는 아다라지가 사실상 드루즈파를 창시하고 나서 모종의 이유로 자기가 창시한 종파에서 추방당한 걸로 추정하는 학설이 주류로 나타나고 있다.

이슬람에서 분파했다고 드루즈파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슬람과는 차이점이 많아 아예 이슬람과는 별개의 종교로서 드루즈교라 부르기도 한다. 더불어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드루즈를 이슬람으로 보지 않다 보니 드루즈는 사이비인 알 하킴을 따르는 멍청이들로 취급받으며 박해를 많이 받아 왔다. 그럼에도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드루즈교의 창시자인 알 하킴 비아므르알라(الحاكم بأمر الله) 또한 이곳 킬리스 출신이라 유독 킬리스에 드루즈교도 많은 이유다.

0
유니세프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