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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은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추모일인 '욤 하 쇼아(Yom Ha Shoah)'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23 18:48:04

유대력으로 니산월 14일 저녁에 유월절이 시작되므로, 욤 하쇼아는 통상 유월절로부터 13일 후인 니산월 27일을 전후하여 지정된다. 올해는 4월 15일이 이 날에 해당된다. 보통 홀로코스트 희생자 600만 명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리게 되는데 이 추모식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추모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의 방어 의지를 강조했으며, 다비드 바르니아 모사드 국장은 이란 정권 교체까지 임무를 계속하겠다고 한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Yom HaShoah, 욤 하쇼아)을 기념하며 그들을 기리는 상징적인 장면, 출처 : Shutterstock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폴란드 총독부를 비롯한 동유럽 점령지의 도시들에서 부활시켜 유대인을 몰아넣을 수용구역으로 이용했으며 이는 엄청난 악명을 떨쳤다. 바르샤바 게토가 수용인구 45만 명에 달해 가장 컸고, 우치에 20만, 르비우에 15만, 빌뉴스에 8만, 크라쿠프에 7만 명이 수용되었으며, 이들 대도시 외에 여러 중소 도시에도 게토가 세워졌다. 이 게토와 이전의 역사적 의미의 게토의 다른 점은 역사적 게토는 유대인들을 유럽의 다른 토착 기독교도들과 분리시키기 위해 좁은 구역에서 거주하게 한 반면, 나치가 부활시킨 게토는 이후에 있을 유대인 대학살, 즉, 홀로코스트를 위해 세웠다는 점에 있다. 

당연히 이전의 게토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인구 밀도가 높고 비위생적이었다. 바르샤바 게토의 경우 3.4㎢의 면적에 45만 명을 수용하여 인구밀도가 10만명/㎢을 넘었다. 더불어 사망률도 비할 수 없이 높았다. 게토에서 굶어죽거나 병사하지 않은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아우슈비츠 등의 절멸수용소로 끌려가서 학살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게토는 유럽 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도 있었다. 상하이(上海) 등 일본군의 점령 지역에 거주하던 유대인 또한 일정 구역의 게토에 강제로 수용되었다. 이곳의 주거 환경 역시 유럽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그나마 홀로코스트에 끌려가지는 않았다.

나치 독일이 점점 패망하면서 폴란드의 게토에 있던 유대인들이 바르샤바 봉기를 시발점으로 무기를 밀수하여 그곳에 있던 나치 독일군들과 해방 전투를 벌였는데 아쉽게도 진압당하고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민간인 유대인들도 나치 독일군들에게 희생당하게 된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그 당시 폴란드의 저명한 피아니스트였던 슈필만이 게토에서 생활했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수용소 안에서 유대인들은 도저히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나치 독일군들에게 핍박을 받거나 돈을 별로 못 받아 먹을 걸 먹지 못한 나머지 아사(餓死)한 사람들도 많았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슈필만의 아버지가 감자를 가지고 돌아오던 도중에 나치 장교가 인사를 안했다고 따귀를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나치 독일 통치하의 게토는 심각한 인권 유린의 현장이었다. 도리어 유대인들끼리 서로의 음식을 훔쳐먹거나 나치군에게 뭐라도 얻어먹으려고 광대같은 짓을 하는 등, 게토에서의 생활을 잘 표현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로부터 81년이 지난 현재, 레바논과 가자를 또 다른 팔레스타인인과 레바논인들만의 게토로 만들고 있다. 가자지구의 경우, 유태인들이 당했었던 그 게토와 똑같은 구역으로 만들어 놓으면서 봉쇄해 버렸다. 나치 독일도 아닌 함께 공존하고 공생해야 할 민족에게 똑같은 학살 행위를 하면서 전 세계인에게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태인을 추모하라고? 이번 기회에 홀로코스트와 히틀러에 대한 재연구 및 재해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가려왔던 것, 학살당한 유태인들을 부각시키기 위해 숨겨왔던 것들을 드러내고 재평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수십년 동안 닫혀 있던 이 문제는 유럽학계와 국제 학계에 있어 엄청난 금기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금기를 넘어서 심층적 연구로 시비를 가려야 마땅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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