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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미국이 협상을 벌이고 있는 이슬라마바드를 답사했을 당시, 필자의 회고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24 17:17:46

7년 전, 2019년에 나는 파키스탄을 답사하면서 이번에 이란-미국이 휴전를 하고 협상을 벌인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방문했었다. 이슬라마바드는 당시 수도치곤 한적하고 여긴 느낌이 마치 서울 평창동 같은 그런 느낌이다. 이슬라마바드를 보니 수도가 바둑판처럼 구획이 되어 있다. A에서 G까지 구역으로 나누고 거기에서 또 A-1에서 A-4 같이 또 나눈다. 내가 있었던 곳은 F-6 구역, 어쩌고 보면 찾기 편리해보이지만 택시나 릭샤 기사들은 머리 속에 저장이 안 되있다는게 단점이다. 그래서 거리나 주소가 코 앞이어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대모스크,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한쪽 구석엔 아줌마들이 앉아있고 아이들은 베드민턴을 치지만 이들이 나를 보니 일제히 손을 내민다. 바로 돈 달라는 것이다. 파키스탄은 구걸과 앵벌이가 일상화가 되어 있는데 대개 여자와 어린 아이들이 구걸 밎 앵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릭샤나 택시에 타고 있는 손님한테도 손을 내밀고 있을 정도다. 현지 파키스탄인들은 그것을 무슬림의 5대 의무 (신에 대한 맹세, 하루 5번 기도하기, 라마단 의무 단식, 자선행위, 일생에 한번 메카에 순례하기) 중 하나인 자선행위로 인식하고 구걸하는 여성과 어린아이에게 돈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외국인도 그럴줄 알고 알라의 자비를 빌어 구걸하고 있는 것이다. 

파키스탄에서는 여성이 사회에 참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남성들이 주로 바깥 일을 보고 여성들인 집안 일을 본다. 내가 찍은 사진들 중에서 여성들이 장사를 한다던지 뭔가 사회적 활동을 하는 사진이 거의 없다. 그 정도로 여성들이 밖의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이 집안에 기여할 수 있는것이 바로 구걸과 앵벌이다. 종교라는 미명하에 그것도 21세기 현 시대에 그런 봉건적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이 특이하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한 양면의 모습을 보았다. 파키스탄에는 외국인 여행객이 워낙 없다보니 내가 나타나면 바로 시선 집중이 된다.

사진 같이 찍는 것을 좋아하고 나와 찍기를 원하는 여러 사람들이 찍어갔다. 남자는 괜찮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사진을 함께 찍으면 안 된다. 인도와 마찬가지로 파키스탄 또한 외국인 여성들에게 그리 우호적인 나라가 아니다. 함께 사진 찍히면 그 여성 분은 SNS에서 그 파키스탄 사람의 여자친구로 둔갑되어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있어 외국인은 신기하고 호기심의 대상이다. 그리고 모두 친절하게 잘해주지만 그것이 어디까지나 내가 이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지켜야할 것은 지켜줬을 때 얘기란 것을 명심하자. 이 때 나는 라마단 기간에 방문했었기에 해질녘 늦은 식사와 더불어 로컬 택시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파키스탄 사람들의 로컬 택시도 볼 수 있는데 대개 1톤 화물트럭을 개조한 차량이다. 이 택시는 합승이어야 타고 출발이 가능하다. 라마단 기간 막바지라 이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고 있다.시장에 가보니 여성들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면에서보니 빵을 굽고 있는 가게 앞이다. 라마단 기간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혼잡하기 때문에 이 빵 가게는 정확히 오후 3시에 오픈이 된다. 그래서 3시 오픈에 맞춰 미리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여성들 대부분은 부르카를 착용하고 있다. 시장 끝에는 바하우딘 자카리야 모스크가 있는데 이 모스크로 들어가는 길에 맨발로 땅을 밟으니 발바닥이 통구이 될꺼 같아 뛰어갔다. 

모스크에는 몸을 씻는 파우라바가 없는데 여기는 있다. 일단 불날꺼 같은 발바닥을 식히고 땀으로 범벅된 머리와 얼굴을 씻었다. 나는 유독 땀이 많아 땀이 눈에 들어가 따가운 경우가 많은데 라마단 기간이기 때문에 해질녘까지 단식과 물도 마시지 말아야 하는 계율 때문에 따가워도 침 바르고 닦아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모스크의 파우라바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기에 씻을 수 있다. 이란을 보고 신정체제라 하고 여성 인권이 바닥이라고 하는데 웃기는 헛소리다. 파키스탄을 와보고 이란을 간다면 이란이 얼마나 여성 인권이 파키스탄보다 훨씬 좋은지 알 수 있다. 이란에 가면 히잡 안 쓰는 여성과 대화를 할 수 있지만 파키스탄에서는 여성과 대화가 금지되어 있다. 

특히 나는 파키스탄에 한 달 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할머니나 어린 소녀의 얼굴을 제외하고 젊은 여성의 얼굴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죄다 부르카로 뒤덮고 있는데다, 말을 걸면 그 여성이 위험할 수가 있다. 게다가 여성 할례와 조혼이 아직도 남아있다. 파키스탄의 신드 주(州) 하이데라바드에 가면 여성 할례 전문 병원도 있다. 내가 갔던 당시, 파키스탄에서 여성 의사는 할례 의례를 해주는 사람밖에 없다. 게다가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 유적을 방문할 때, 라르카나(Larkana)에서 묵었는데 13살짜리 어린 소녀가 50살 넘는 남자와 결혼하는 결혼식을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그리고 파키스탄의 여성들은 대체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문맹률이 엄청나게 높다. 

그에 이란 여성들은 대학 교수들이 많은데 이과와 공과에서 여성 교수들이 대부분이고, 문과는 남성 교수들이 많다. 파키스탄이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이란에서는 여성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고, 대학생들도 많지만, 파키스탄에서는 어렵게 여성과 말을 섞을 수 있다 할지라도 영어로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여대생 또한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도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 총리인 샤히르 베나지르 부토(1953~2007)가 만들어 낸 여성 인권을 위한 유산이다. 부토는 1988년 영국에서 파키스탄으로 돌아와 하이데라바드에서 파키스탄 인민당(PPP)의 당수가 되었고 결국 이슬람 국가에서 사상 최초로 여성 수상이 되었다. 

부토가 보수적이고, 원리주의적이며 근본주의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여성 인권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들이 많지만 2020년 가까이 되었어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제도들은 거의 없다. 파키스탄의 여성 사회는 인권의 사각지대라 보는 것이 정답이고, 아직까지 시골에는 명예살인이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란이 뭐 근본주의, 원리주의가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파키스탄을 와서 보면 진짜 근본주의와 원리주의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서방 국가들이나 미국 및 이스라엘 종자들이 왜곡해서 뿌려 놓은 선전물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직접 와서 판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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