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미나이에게 <에세이철학회>의 사이트 분석을 해달라고 하니까 무엇보다 큰 문제가 '정체성 애매'이다. 말은 철학회라는 이름을 내세우면서도 안에는 역사와 정치 등 다른 분야의 글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제미나이의 이런 분석은 상당히 합당해 보인다. 한 마디로 철학과 다른 인문학의 구별이 없다 보니 <에세이철학회>의 정체성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말해두고자 한다.
오래전 <니코마코스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건강'이라는 말의 다의성에 대해 기술한 바 있다. 몸이 건강하다는 것과 생각이 건강하다는 것, 사람들의 의식이 건강하고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처럼 '건강'이라는 말은 맥락에 따라 여러 가지로 쓰일 수 있고,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건강'이라는 의미를 이해하고자 할 때 그것이 '일의적'(univocal)이 아니라 다의적이고 유비적(analogical) 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철학'이라고 할 때 우리는 전문 분과로서의 철학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대학의 철학과의 커리큘럼을 보면 크게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동양철학 안에서도 유학과 불교학, 그리고 도학 등 다양한 커리큘럼이 있다. 유학 안에서도 공자와 맹자, 순자와 법가 등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있다. 서양철학의 경우는 그런 분화와 전문화가 훨씬 더 되어 있기 때문에 분과 철학들 끼리는 거의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수리 논리학을 전공하는 철학자가 야곱 뵈메의 형이상학을 전공하는 철학자와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하기란 무망하다. 이런 철학의 분과화와 전문화는 근대의 산물이지만 현대에 들어오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이 깊어지면 질수록 철학은 더욱더 삶과 사회로부터 유리되는 현상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에는 철학의 소외라는 말이 너무나 당연한 듯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수입에만 의존해서 자생 철학이 설 땅이 없는 한국에서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개선될 조짐이 거의 없다. 만학의 여왕인 철학이 트로이가 멸망한 후로 모든 것을 잃고서 탄식하는 헤쿠바 여왕과 다를 바 없는 처지에 있다. 철학이 그저 텍스트 설명이나 해석에만 그칠 뿐 도무지 사회와 삶의 인식에, 혹은 인간의 삶을 통찰하는 데 거의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에세이철학의 문제의식은 오늘날 철학이 처한 현실에 대한 각성에서 시작한다. 일단 모든 개별 학문들도 그 깊이로 내려가면 피할 수 없는 철학적 문제에 부닥친다. 왜 있지 않고 있는가, 어째서 그렇게 있는가,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고, 다른 것들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이 모든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등 이런 질문들은 개별 학문들의 수준을 넘어서 있다. 에세이철학은 개별 과학의 수준을 넘어 그 깊이에서 만나는 철학이고, 그것들 상호 간을 소통시켜 주는 철학이다. 그런 면에서 <에세이철학회>는 특정한 분과 철학자들을 넘어서 다양한 개별 전공자들의 소통의 장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앞서 제시한 원초적인 문제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삶의 세계'(Lebenswelt)에 근원을 두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상 언어(ordinary language)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근대 이후 20세기 철학은 자신들의 뿌리이자 기초인 삶의 세계를 대상화하고 소외시킴으로써 삶의 터전으로부터 자신의 설 땅을 잃어버렸다. 에세이철학이 주목하는 언어는 '일상 언어'이다. 이런 일상 언어와 철학의 추상적인 언어의 갭이 가장 적은 언어가 영어이다. 20세기 들어 Gottolob Frege와 Bertland Russell 등이 발전시킨 분석철학은 언어의 애매성을 제거함으로써 철학의 명료성과 논리적 엄밀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후기 Wittgenstein은 특별히 일상 언어에 주목했다. 사실 영어는 John Locke나 David Hume이 일궈놓은 경험론 시절부터 철학의 많은 논의들을 일상 언어에서 전개했다. 언어분석철학은 20세기 영미권을 대표하는 철학이 되었다.
과거 내가 헤겔 철학을 공부하던 당시에는 시대와 사회를 배제한 분석철학에 대해 적지 않은 반감을 가졌지만, 에세이철학 관련 글을 쓰면서 일상 언어의 중요성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헤겔과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분석철학의 연관 등을 과거처럼 배타적으로 사유하지는 않고 있다. 두 상이한 철학적 전통은 얼마든지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분석철학 내에서도 자신들의 사유의 한계를 헤겔 철학의 전통에서 구하는 흐름도 적지 않다. 윌프리드 셀러스 (Wilfrid Sellars), 로버트 브랜덤 (Robert Brandom), 존 맥도웰 (John McDowell), 로버트 피핀 (Robert Pippin) 등은 현대 영미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이다. 셀라스는 헤겔이 <정신현상학>의 '감각적 확신'에서 비판한 '소여'의 한계에 주목하고, 브랜덤의 경우는 <정신현상학>에 관한 방대한 저술을 내기도 했다.
'에세이철학'은 분석철학의 전통에서 기원한 현대 영미 철학에 대해서도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들과 언제든지 소통할 자세가 되었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일상 언어를 매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