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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의 속담철학 3탄 : "개똥도 약에 쓰려면 보이지 않는다."
  • 타라고
  • 등록 2026-04-08 22:17:24
6월부터 10월 사이에 보는 몽골의 초원은 정말 아름답다. 광활한 대지 위에 짙은 녹색이 펼쳐진 곳에서 풍겨오는 허브 향은 정신 마저 깨운다. 그런데 막상 그 초원을 산책하다 보면 발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곳곳에 말똥이 산적해 있다. 그만큼 흔한 것이 말똥이다. 몽골인들은 초원의 바람으로 바싹 마른 이 똥들을 망태기에 줏어 모아서 겨울 날 게르에서 사용하는 연료로 삼는다. 냄새도 나지 않고 화력도 좋은 데다다 무진장으로 구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지금은 도로에서 개똥을 찾아보기 힘들다. 개를 데리고 산책할 때 견주들은 개의 배설물을 반드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 한국에서 개똥은 흔하디 흔한 것이다. 그런데 이 흔한 개똥도 막상 약에 쓰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마 개똥을 가지고 약에 쓸 수 있겠는가? 한국의 개똥은 몽골의 말똥과 달리 전혀 쓸모가 없다. 다만 눈에 많이 띨 뿐이다. 이렇게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막상 찾아보려 하면 보이지 않는 경험을 할 때가 많다. 잘 쓰던 물건들도 막상 찾아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 사용했는데 지금은 어디에 처 박혔는지 알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주인이고 주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을 둘러싼 모든 동식물이나 사물들은 그저 죽은 사물, 혹은 대상화된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근대적 세계관의 산물이라고 할 인간 주체론적 사고이다. 하지만 칸트가 '사물 자체'(Ding an sich)는 알 수가 없다고 인정한 이래, 사물들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자신들의 질서와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인간들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들은 인간이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지들 멋대로 움직인다.다만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막상 사람들이 늘 그렇듯이 익숙한 방식으로 있겠거니 하고서 그것들을 찾으려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흔하디 흔하게 널린 예전의 개똥들도 그렇다. 막상 이것들 조차 어디에 써먹으려 하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개똥도 약에 쓰려 하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인간이 자신들과 다른 타자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세기에 들어서이다. 그 이전에는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인 동일성의 논리로 보았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레비나스(Levinas)는 '타자'를 나에게 포섭될 수 없는 절대적 의미의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런 타자에는 사물들, 동식물들, 그리고 나와 다른 종족과 부류의 인간들이 있다. 이들은 과거의 주인처럼 인간들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동일성의 논리로 포박하려는 순간 늘 그 제한된 틀을 넘어서는 존재들이다. 개똥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임의로 동원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때문에 막상 찾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가? 이런 사물들의 독립적인 질서, 인간들이 어쩔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를 이제는 인간들 자신이 인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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