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238185&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빨치산의 태평소 소리 좋아했던 미군, 국악의 전도사가 되다[이희용의 월드코리안 12] 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민족·국제 이희용(hoprave)▲가야금 타는 해의만만년의 해...
많은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공부하라고 성화이다. 그러나 반면에 공부하라 강요하는 사회를 잘못된 것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어떤 사람은 주입식 암기교육보다 창의력을 길러주는 공부를 해야 한다 말하기도 하고 일률적인 공부보다는 각자 소질에 맞게 좋아하는 분야를 개척하도록 북돋아 주어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물론 공부라는 것이 모든 사람이 다 부모의 욕심만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때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해도 된다.
다만 욕심을 내지 않고 사회에서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
세상에 남이 잘못되길 바라고 남에게 해를 끼치고 싶어 하는 진짜 악한 사람은 극히 적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서로를 나쁘다고 흉을 보고 교도소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언론에는 사회에서 양식 있는 계층이라고 믿을만한 사람들이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보도되곤 하는 것일까.
그것은 자기가 가지고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을 얻으려 했던 것 때문이다.
돈뿐만 아니라 지위와 명예를 분수 이상으로 얻으려는 것에서 바라는 것과 현실의 차이는 생겨난다.
그러면 자기의 얻을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나 자신을 한계를 아는 데에도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한계라는 것은 배움이나 수양의 한계가 아니다. 현실사회에서의 얻을 수 있는 부와 명예의 한계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명확한 것이어서 자기가 그 한계에 오르면 더 이상 모든 향상의 노력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이상의 승부사적 욕망은 삼가야 할 것이다. 도전은 위험을 수반하고 그러한 도전의식을 칭찬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모험이란 것은 실패가 엄존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더구나 그 실패는 비단 도전자 개인뿐만이 아닌 무고(無辜)한 가족친지동료 주변사람 모두에게 피해를 나눠줄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일차적으로는 공부하기를 권장하되 만약 공부를 하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할 자유 또한 주어져야 할 것이다. 다만 그에 비례하여 욕심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공부는 안 하고 높은 지위와 관력의 욕심을 내는 것이 악이 되는 것이다. 대표적이고 단적인 예가 우리 영화 등의 단골소재인 조직폭력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밖에도 가끔은 학문에 의한 깊은 사고(思考)와 통찰력이 없이도 높은 지위나 부를 가지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크게 보면 그것은 그의 조상 혹은 전생(前生)에서 고통스럽게 당한 억울한 일을 보상해주는 의미를 가지거나 기타 하늘을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의 과도현상일 뿐이다.
영혼에 보상은 해줘야겠는데 그 영혼의 진화단계는 아직 미비한수준이다. 이럴 때 하늘은 그 영혼을 부와 명성을 가진 삶을 살도록 인도하지만 그것은 정상적이지 못하고 불안정한 상태이다. 어느 때고 그가 누리는 부나 명성이 그의 지난 업을 보상할 만큼 주어졌거나 그가 불안정하게 누리는 것이 세상의 일을 이루기 위해 효용이 다 되었다고 재단(裁斷)되는 순간 그가 누리는 것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만다.
이러한 예외적인 것에 현혹되어 인간의 당연한 노력을 소홀히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