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238185&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빨치산의 태평소 소리 좋아했던 미군, 국악의 전도사가 되다[이희용의 월드코리안 12] 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민족·국제 이희용(hoprave)▲가야금 타는 해의만만년의 해...
지금 우리 국민에게 널리 퍼져있는 정서불안정(및 憂鬱症)에는 문인작가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년전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란 책이 좋은 반응을 일으킨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다. 자기 스스로 정신적 문제를 상담했던 경험을 솔직히 쓴 것이라고 하는데 용기 있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되었다.
그 작가의 이름을 이제 알았다. 백세희라는 그 책의 저자가 幽明을 달리했다고 한다. 기사들은 ‘다섯명의 생명을 살리고 하늘로 갔다’며 ‘슬프지만 美談의 하나’처럼 포장이 되었는데 臟器寄贈의 결과가 必然이 아니리라는 疑心이 필자가 이 사건을 純悲劇으로 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릇에 물이 차면 안정되지만 덜 차면 출렁거린다. 즉 그릇의 크기대로 물을 부어야 行路에 安定된 운반이 가능하다. 이는 사람에 비유하면 두뇌의 容量이 큰 자 속칭 머리가 좋은 자는 그만큼의 충분한 공부를 해야 정서안정 즉 정신건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상대적인 의미로서 결국 보통의 잠재력을 가진 일반인도 적당량에 미달하는 교육을 받으면 정서불안 혹은 우울증을 갖기 쉬운 것이다. 우리의 경우 일반 민중에 對한 제도권 교육의 時間量은 많지만 그 결과로 민중이 갖춘 것은 使用語彙의 意味가 不分明하여 불확실하고 質낮은 지식들이다. 당연히 일반 민중에게도 교육량의 미달로 인한 정서불안과 우울증이 보편화되고 있다.
사람의 思考 활동을 物量的으로 비유하는 것은 유물론적인 관점이다. 이를 다시 靈性的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자기의 根本이 되는 本性에 잠재의식적인 영적 정보가 풍부한 자는 (老靈, 久靈, ‘오래된 영혼’이라고도 한다) 현생에서 그 잠재지식을 붙잡아 고정시킬 충분히 깊고 많은 학습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으면 현생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非具體的 잠재지식으로 인해 現生은 불안하고 생존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우울상태가 된다. 보통의 영혼발달 단계에 있는 자라도 公교육이 최하지능계층만을 배려하는 것이라 교육의 질이 낮으면 정서불안정과 우울증을 갖게 된다.
남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자는 더욱 자기의 高度의 영혼을 의식하여 학습을 늘리고 정서안정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연예인의 경우 파국의 결말을 보인 적이 적지 않다. 물론 연예인은 그 자체 정신적 모범이 아닌 특수 加外 능력으로 被注目者의 자리에 오른 경우이니 그 성과를 보장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불안정함과 우울증을 극복할 길을 보여주던’ 작가의 自己抛棄는 社會精神構造의 非正常狀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물론 정치인만의 탓은 아니다. 학자 예술인 작가 종교인 다 자신의 위상을 굳게 지켜주는 현행의 이익 시스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인은 비록 이익을 좇음에서는 같은 입장이라도 업무자체가 민중의 이익을 代辯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하나 정치적 이슈로 삼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음은 심히 寒心한 실정이다.
근래 들어 더욱 허탈하게 하는 것은 집권 더민당에게 어떤 기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다. 더민당은 국민에게 어떠한 솔직한 발표도 없이 은밀히 뒤에서 한글전용 강화에 나서고 있다. 근래까지 간간이나마 화면자막에 한자표기를 했던 몇 뉴스전문방송채널이 정권이 바뀌자 한자를 전혀 배제하고 있다.
保守政派들도 이제껏 좌파의 한글전용 밀어붙이기에 못이기는 척 따라간 바 있으니 역시 무엇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누가 진짜보수니 하는 주장들이 있는데 어디 하나 진정한 보수의 정책을 추진하려는 쪽은 없는 실정이다. 이념적 分別도 없으면서 특정인물에의 好惡의 차이를 가지고 서로 내가 진짜 보수라 하는 주장들은 거듭 한심할 따름이다. 진짜 보수정치는 우리 오천년의 정신문화를 회복하는 것 없이는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