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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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디지탈(計數)이란 개념은 근래에 생겨난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디지탈에 집착하여왔다.
일례로 인간은 민족 등 혈연관계를 매우 중요시했다. 피를 나눈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과는 분명한 디지털한 구분이 있을 것으로 알아왔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보아도 혈연관계는 세상의 여러 인연 중의 한가지 일 뿐이지 그것이 여타의 인연에 비하여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한 인간이 혈족 사이의 인연으로 생기는 관계와 여타의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관계를 비교하면 놀랍도록 비슷한 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그 자신의 업보로 말미암은 관계설정임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세습왕조, 가문전통 등 혈족을 중요시했던 과거의 인류역사에서도 비혈족에게 기업(基業)을 넘겨주는 것을 미덕으로 칭송하는 풍토가 동서양에 걸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보다 큰 진리를 따르는 자에 대한 존숭(尊崇)이라 할 것이다.
한 노인의 말에 의하면 그의 친구 내외가 한 여자아이를 '주워' 길렀는데 친구들은 알지만 그 아이 본인에게는 일체 비밀로 했고 시집까지 무사히 보냈다고 한다. 이제는 그 친구 내외도 죽고 비밀을 아는 사람은 남은 몇 친구들 뿐인데 그들이 모두 비밀을 무덤 속으로 가져가면 그 딸은 영원한 친딸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딸도 자라면서 점차 양부모를 닮아가더라는 이야기였다.
이것은 전통(傳統)의 승계가 생물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환경이 영향을 주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또한 생물적인 승계도 실상은 장구한 흐름 속에서 찰나적인 순간에 두드러질 뿐이다. 공자 이후 이천여년이 지났지만 공자의 후손 중에 공자와 같은 인물이 다시 나오지는 않았다. 모차르트 이후 이백여년이 지났지만 그의 후손 중에 모짜르트와 같은 인물이 다시 나오지는 않았다.
이와 같은 혈족승계의 예가 하나이고 다른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의 출생과 삶 그리고 죽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알 수 있는 범위가 그것이기에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일생 또한 그 구분의 중요성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흔히들 업보라고 하면 전생의 업보를 말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많은 업보의 현상을 우리는 볼 수 있게 된다.
결국 한 번의 인생이라는 것도 그 인생 이외의 것들과 크게 구분되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영겁 속에서의 아날로그 분류상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2009년 同名 전자책 수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