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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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어원은 고대 인도이란어 아리아(Arya)로, 아리아인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란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소수민족인 아제르바이잔인은 투르크계로 페르시아인과 사소한 민족 갈등이 있지만 심각한 사태로 비화한 적은 별로 없다. 현재 이란 신정체제의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도 아제르바이잔인으로 알려져 있다. 길라크인, 마잔데란인, 루르인 등은 페르시아인과 가까운 이란계 민족으로 여겨져 크게 구별되지 않고, 역사적으로도 차별이 크지 않았다. 페르시아계 왕조로 분류되기도 하는 잔드 왕조의 창건자 카림 칸 역시 루르인이었고, 팔레비 왕조의 창건자 레자 샤 팔라비도 실은 마잔데란인이었다.

터키 도우베야짓과 연결된 이란고원의 평원 - 과거에 이란 영토였던 지역,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반면 아랍인, 쿠르드인과 발루치인은 분리주의 투쟁을 일으켜 가혹한 진압과 학살을 당한 적이 있고, 2020년대까지도 민족 갈등과 분리주의 움직임이 있지만 세력이 미약하다. 다만 2022년 이란 시위에서는 일시적으로 쿠르드 인들이 일부 국경 도시를 장악했을 때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페쉬메르가에게 개입을 요청하기도 했다. 아르메니아인 아르탁세스는 아르메니아 고원 전체와 여러 인접 지역을 공략했다. 셀레우코스 제국에 의탁했던 한니발 바르카가 자신을 잡으려하는 로마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아르메나 궁정에 망명했을 때 받아주기도 했다.
아르탁세스는 초기엔 아르마비르(Armavir)를 수도로 삼았지만 B.C 166년 아르타샤트(Artashat)를 건설하고 새 수도로 삼았다. 전설에 따르면, 이 도시는 한니발 바르카의 주도로 건설되었기에 '아르메니아 카르타고'라고 불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교차검증할 기록은 없어서 신빙성은 희박하다. 뒤이어 아트로파테네와 이베리아에 종속되었던 지역을 공략하고 이베리아의 파르나드좀(Farnadzhom)을 살해하고 아들을 그곳의 왕위에 올렸다. 또한 소(小) 아르메니아를 공략하고 남쪽으로 확장하다가 셀레우코스 왕조와 무력 출동을 벌였다. 여기에 동쪽으로 진군하여 메데스, 카스피 해, 파우니티다, 바솔로페다를 공략했다. 그는 정복지 주민들이 아르메니아어를 공용어로 쓰도록 권장해 지배력을 강화하려 했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아케메네스 왕조는 파사르가다에(Pasargadae)의 부족의 씨족으로 아마도 파사르가다에의 주변에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들은 B.C 9세기에 다른 페르시아 부족들을 지배했을 수도 있다. 이후 아케메네스의 뒤를 이어 즉위한 다리우스 1세는 하사마니스(Haxāmaniš)에 이름을 따서 명명하고 있었던 알려지지 않은 혈통인 아케메네스로 그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아케메네스라고 불리는 왕에 대한 기록은 상당수 사라지고 없다. 아케메네스는 페르시아 제국을 통치한 아케메네스 왕조의 공통 조상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아케메네스 왕조의 공통 조상이라는 것 외에는 그의 삶에 대해 많은 것들이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아케메네스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시조로만 알려진 실존하지 않는 전설적 존재일 수도 있고, 역사에 존재하는 인물이라면 B.C 8세기 후반과 B.C 7세기 초반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아케메네스가 실존 인물이라는 것에 대해 베히스툰 비문을 비롯하여 헤로도토스, 크테시아스, 크세노폰과 같은 그리스의 역사가들의 기록들을 중심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아케메네스의 뜻을 보자면 유럽에서 쓰이는 명칭인 '아케메네스', 그리고 베히스툰 비문에 표시된 아카드어 Aḫamaniišʾ에서 유래하고 있다. 그의 고대 페르시아어 이름은 전통적으로 “친구”라는 뜻의 Haxā-와 '생각하는 힘'이라는 뜻의 Manah으로부터 유래되어 '친구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최근의 해석은 Haxā-를 '추종자, 지지자'로 해석하며 '추종자들의 영혼이 깃든 사람'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현대 페르시아어로는 هخامنش (Haxâmaneš)로 사용되고 있다. 베히스툰 비문에서 다리우스 1세는 아케네메스를 테이스페스의 아버지, 그리고 키루스 2세와 다리우스 1세의 선조로 묘사하고 있다. B.C 5세기 중반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는 베히스툰 비문과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키루스 2세와 다리우스 1세를 합쳐서 설명한다. 원시적 자료들과 역사적 기록에서는 그에 대한 짧은 설명만 나오며, 그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다.
아케메네스는 역사에 실존하는 인물이 아닌, 신화적인 공통 조상 일수도 있다는 것에 무게를 두는 학자들이 많다. 많은 학자들은 그가 메디아 제국의 속국이였던 파르수아의 군주였으며, 아케메네스는 그곳에서 B.C 681년 군대를 이끌고 아시리아의 왕 센나케립(Senakerib)에 대항했다고 생각한다. 페르시아라는 명칭은 고대부터 서양인들 사이에서 이란 민족, 혹은 이란 민족에 의한 고대 제국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 명칭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란 남서부 해안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파르스(Fars)라고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이것이 라틴어 화(化)하여 페르시아(Persia)로 변화했으며, 이 지역이 아케메네스(Achaemenes) 왕조의 발상지였으므로 아케메네스 제국의 명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1935년 3월 21일 팔레비 왕조의 레자 샤(Reza Shah)가 국호를 공식적으로 이란으로 바꿀 때까지 여러 왕조에 걸쳐 페르시아라는 국호가 사용되었다. B.C 900년에 사카 계통의 종족들이 점차 서진하면서 카스피해 북쪽을 돌아 얌나야 문화를 영위하고 있던 민족들을 밀어내면서 또 다른 대이동의 시작이 이루어진 이후, 카프카스 지역에도 새로운 종족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